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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경 Aug 09. 2019

오렌지 국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


어렸을 적, 엄마는 소고기 뭇국을 자주 해주셨다. 숭덩숭덩 썰어 넣은 소고기, 큼직하게 삐져 넣은 무, 아낌없이 넣은 콩나물과 고춧가루로 칼칼한 맛을 낸 매콤한 국물.


소고기 뭇국 한 대접에 밥을 폭폭 말아 먹으면, 밥이 훌렁훌렁 넘어갔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소고기 뭇국이 싫었다. 가끔 사례가 걸리면 목구멍과 코가 아렸다. 한 솥 끓이면 소고기 뭇국만 질리도록 먹어야 했다. 


동생은 소고기 뭇국을 오렌지 국이라고 불렀다. 고춧가루를 풀어 푹 끓인 소고기 뭇국은 고운 주황색이었다. 나와 달리 동생은 이 칼칼한 국물을 좋아했다. 동생이 소고기 뭇국을 오렌지 국이라 부른 후, 우리 가족은 소고기 뭇국을 오렌지 국이라 불렀다.


대학을 서울로 왔다. 서울 생활을 몇 년이나 하고서야 내가 먹던 소고기 뭇국이 경상도식이라는 걸 알았다. 서울 사람들은 오렌지색 뭇국은 먹지 않았다. 식당에서 소고기 뭇국을 시키면 맑은 국물이 나왔다. 내가 먹던 것과 사뭇 달랐다. 


자취하면서 항상 맑은 소고기 뭇국을 끓여 먹었다. 맑은국은 소고기와 무만 있으면 끓일 수 있다. 경상도 식은 필요한 재료가 많다. 콩나물도 있어야 하고 고춧가루도 필요하다. 자취생은 지갑이 좁았다. 재료를 한 번에 많이 살 수 없다. 조금씩만 사도 냉장고에는 항상 썩은 야채들이 굴러다녔다. 내가 끓인 맑은 소고기 뭇국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일이 바쁜 날은, 피곤함에 잠겨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날은, 종종 엄마가 끓인 소고기 뭇국이 생각난다. 푹 끓인 소고기 뭇국에 밥 한 그릇 말아먹고 싶다. 뜨거운 국물 후후 불어 기름지고도 칼칼한 그 맛 한 입 삼키고 싶다. 땀 뻘뻘 흘리며, 콧물 들이키며 정신없이 먹고싶다.


피로가 날아가는 그 맛. 못내 든든해지는 그 맛.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의 맛.


이번에 집에 내려가면 말해야지.


“엄마, 나 오렌지국 먹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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