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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토닥 Feb 13. 2023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죽음편] 죽는다는 건 잊어버리는 게 아니야


나는 왜 괜찮아지지 않는 거지?

2022년 3월, 18년 동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았던 우리 집 강아지가 죽었다.

나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는 누군가 죽음을 맞이한 경우였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살만큼 살다간 애완견이 죽은 거니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는 "펫로스 증후군"을 겪었다.



그야말로 매일이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의 연속이었고, 자다 깨면 나도 모르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 우리 강아지가 아직 살아있구나.'생각하며 그 아이의 죽음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었음에도 마음속 괴로움과 슬픔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고, 그런 내 상태를 지켜보던 남편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직도 많이 힘들어?"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던 난 그의 짤막한 질문에 곧바로 눈물이 터져버렸고, 그동안 숨긴다고 숨긴 내 슬픔의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슬픈 지 모르겠어. 나보다 먼저 죽을 줄 알고 있었고, 막말로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 하나 죽은 건데 왜 난 극복이 안될까? 여보 나 너무 괴로워."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만큼 흐느끼며 말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봐주었고, 내가 어느 정도 진정된 기미를 보이자 말을 이어갔다.


"여보,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사람을 잊는 아니야. 사람의 빈자리를 그대로 비워둔 일상생활 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거지."


남편의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지난 동안 아이의 흔적을 잊고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살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정신과에서는 그걸 '애도'라고 불러.

그런데 당신은 애도 기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많이 슬프고 괴로운 거고."


그렇다. 반려견이 죽었다고 월차를 내고 병원으로 달려가 그 아이의 마지막을 배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린 내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 마음속 슬픔과 괴로움은 채 갈무리되지도 못한 채 계속 내 안에 갇혀 있었고, 제대로 된 '애도'를 하지 못한 채로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당신이 그 아이를 충분히 추억하고, 기억하고, 그리워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아이의 부재를 인정하는 순간이 오면 그 아이를 잊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묻어두고 추억하는 날이 오게 될 거야."


그리워해도 괜찮아요. 울어도 괜찮아요.

그날 저녁, 아이를 재워두고 거실로 나와 나는 곧바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떠나고 번도 밖에 꺼낸 없는 말을 했다.


"나 그 아이가 정말 그리워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너무 슬퍼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부모님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우리도 많이 그리워. 아직도 그 아이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그 아이가 쓰던 물건들만 봐도 어딘가에 그 아이가 살아있을 것만 같아."


그날 밤, 우리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 아이가 얼마나 그리운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과 행복을 선물해 주고 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굳이 그 아이의 이야기를 피하려 하지 않았고, 그와의 소중한 추억이 떠오르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꺼내며 그 아이를 회상하고 그리워하고 눈물 흘리기도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

그렇게 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남편과 차를 타고 이동하던 문득 아이 생각이 떠올랐다.

"여보 벌써 그 아이가 떠난 지 5개월이 넘었어. 시간 참 빠르다 그치?"

"그러게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 여보 요즘에는 좀 괜찮은 거야?"

"응. 여전히 많이 그립지만 슬프다는 생각보단 그 아이와의 추억을 좀 더 많이 떠올리는 거 같아."

"그럼 정말 다행이다."


이런 대화를 이어가다 남편은 내게 죽음을 받아들이는데도 단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

[1단계] 부정(Denial)  
죽음을 맞이할 때 첫 번째 반응. 사람들은 대부분 이 단계에서 죽음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부정한다.

[2단계] 분노(Anger)
"왜 하필 네/내가 죽어야해?"라는 분노와 원망의 감정이 들며 세상을 원망한다.

[3단계] 타협(Bargaining)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정말 착하게 살게요."와 같이 죽음을 다른 무언가와 협상하려고 한다.

[4단계] 우울(Depression)
위 3단계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극심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난다.

[5단계] 수용(Acceptance)
모든 감정이 지나가면 더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우울하지도 활기차지도 않으며,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심슨네 가족들 시즌2]에서 소개된 '심슨 죽음의 5단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진 않겠지만 나 역시 위 단계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괴로웠던 내 감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올바른 '애도'의 자세

어릴 적, 할머니께서 "죽음은 체념하는 것이다."라는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체념[체념]

諦:살필 체, 무언가를 깨닫게 되다.

念:생각 념, 생각이나 마음


내가 사랑했던 존재의 부재를 깨닫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인 것이다.

이는 남편이 말한 '애도의 자세'와 비슷한 개념인 것 같기도 하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인생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보단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 만큼 여전히 죽음은 내게 두려운 존재지만 이제는 '애도의 자세'를 알기에 조금이나마 내가 덜 아프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전히 너의 빈자리는 내게 아프지만
그럼에도 너를 그리워하고 추억할게.

사랑해.


출처 : 비욘드 타임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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