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우울증 척도를 통해서 우울증이 의심되는 경우를 선별할 수 있는데 5점 이상일 경우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음
출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신건강이야기-노년기 우울증에 대하여 편
할머니를 되돌린 마법의 주문
그날 이후, 할머니는 하루 두 알 아침저녁으로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드셨고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상담을 다니셨다. 처음에는 '속이 안 좋다. 어지럽다.' 하시며 약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셨지만 정신과 의사인 남편의 자세한 설명 덕분인지 한 달 넘게 꾸준히 약을 복용하셨고 정말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증세는 하루하루 호전되어 갔다.
그동안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잖이 맘 고생했던 가족들도 할머니의 회복에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갔고, 마치 할머니가 '끔직한 저주에서 풀려난' 느낌마저 들었다.
몇 달이 지나 예전 내 기억 속 있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온 할머니를 보며 난 남편에게 "요즘 약 정말 효과가 좋은 것 같다."고 얘기했고, 그런 내 말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OO아. 할머니가 물론 약과 상담의 도움으로 많이 좋아지신 것도 맞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건 가족들의 관심이었을 거야. 너 요즘 매일 할머니께 전화드리고 좋은 말만 하지. 장인어른, 장모님도 할머니 모시고 외출도 자주 하시는 것 같던데. 그게 할머니를 살리는 힘이 되었을 거야."
그랬다. 이전에는 할머니 전화만 걸려와도 숨이 턱 막히면서 '어후... 또 무슨 짜증을 내시려나.' 했는데 할머니의 상황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내가 먼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할머니 오늘도 약 잘 챙겨드셨어요? 어지러울 수도 있는데 정말 잘하셨어요. 그동안 너무 고생하셔서 잠깐 마음에 병이 찾아온 거고, 100% 완치가능하고 큰 문제없는 병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씀드렸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한 통의 전화가 우리 할머니를 살리는 힘이 된다니…. 할머니께 그저 죄송스러웠다.
할머니 다시 아파도 괜찮아요 우리가 지켜드릴게요
이 일이 있은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어제는 간만에 할머니를 모시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핫플레이스에 갔다.
평소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주문해 대접해 드렸고 한창 수다를 떨다가 우연찮게 그때 이야기가 나왔다.
"할머니 요즘은 예전처럼 힘들거나 한 건 없으셔?
"내 나이 되면 몸이야 안 아플 수 없고 다른 건 다 괜차녀. 요즘 바쁘게 사니까 우울할 틈도 없어."
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되었던 구민센터가 다시 운영을 시작하면서 할머니도 다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러 다니셨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목요일에는 노래교실도 가야 해서 아무 일도 없는 날은 화요일 밖에 없어."
"아이고 우리 할머니 나보다 더 바쁘네! 좀 쉬셔! 몸살 나."
"난 집에 들어박혀 있음 안 돼. 뭐라고 하고 움직여야지. 그래서 쉬는 날엔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든 버스 타고 시장에라도 다녀올라고 혀."
"아이고 잘하고 계시네. 훌륭해 우리할매."
"OO아. 너는 내가 왜 만날 운동하고 뻔질나게 건강검진받고 병원 다니는지 아냐?"
"음... 건강하게 오래 사시려고?"
"아니여.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건 아프지 않고 잘 살다가 느그들한테 피해 안 주고 가고 싶어서여."
"그런 게 어딨어 가족끼리."
"가족은 사람 아니냐. 느그도 내가 아프다고 골골거리고 병원에 드러누워있음 을마나 지칠겨. 난 그 꼴로는 안 살란다. 내 꿈은 잘 자다가 하루아침에 꼴까닥 하는 거여. 깔끔하게."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표정 뒤에 자식들을 향한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 쓰였다.
"그려 할머니 훌륭한 생각이네. 그러니까 지금처럼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친구들이랑 카페 가서 차도 한 잔씩 하시고. 그렇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셔요. 우리 자식들은 그거 말고는 할머니한테 바라는 게 한 개도 없으니까."
할머니와 나의 인생 네 컷
할머니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요즘 유행하는 인생네컷 사진관이 보여 무작정 할머니를 끌고 들어갔다.
"야야 이런 건 뭐 하러 찍는다니. 늙어서 예쁘지도 않아. 요즘은 사진 찍기도 싫어."
"그런 게 어딨어! 나랑 둘이 찍은 사진 몇 장이나 된다고! 얼른 찍어보자!"
"이거 얼만디. 엄청 비싼 거 아니여?"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할머니와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었고, 처음엔 뭘 이런 걸 찍냐고 했던 할머니는 마지막 사진 찍을 때가 되자 뒤에서 나를 꼭 껴안고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포옹한 사진을 제일 먼저 선택해 인화해달라 하셨고 사진은 잃어버리면 안된다며 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이게 뭐 어려운 거라고 그 긴 시간 동안 사진 한 장을 한 번 안 찍었는지….
그날 집에 돌아간 할머니는 부모님께 나와 찍은 사진을 자랑하시며 무척이나 행복해하셨다고 한다.
할머니. 다시 아파도 괜찮아요. 할머니가 우리를 지켜주셨듯 이제는 우리가 할머니를 지켜드릴게요. 사랑해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