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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토닥 Feb 23. 2023

나는 '나'라는 인간이 참 어렵다.

[자아편] 나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나'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존재가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없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를 제일 모르는 사람 또한 '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어렵다.

나는 생각이 많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생각 속에 풍덩 빠져 산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각이 많다.


그래서 내겐 혼자만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들을 정리하고 갈무리한 뒤 그것들을 마음의 서랍장에 봉인해 두어야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생각을 정리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하기 때문에 난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에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곧잘 넉다운 된다.


(Q) 여기서 외부 자극이란?

사람들과의 잦은 만남, 대규모 인원이 모인 자리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안 좋은 일(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아프다거나, 슬퍼한다거나, 괴로워하는 상황 등)

큰 소음, 너무 밝은 조명, 어수선한 분위기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 마음속 에너지를 겨우겨우 충전하고 하루하루를 씩씩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나지만 에너지 암배 실패로 더 이상 끌어다쓸 힘이 없어진 날이 오면 그때부터 한없기 가라앉기 시작한다.


완전히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그 시간 동안 그간 애써 묻어둔 진짜 내 감정을 직접 마주하게 되고,

나를 괴롭히던 우울함, 불안함, 초조함, 미움, 화 같은 감정들이 한 번에 문을 열고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그때부터 나의 폭주가 시작되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시크한 염세주의자로 변한다.

모든 것이 부질없고, 무슨 의미인가 싶고, 그냥 어딘가에 처박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

그런 날엔 여태껏 폭풍 감동받아하며 잘 보던 드라마나 책도 도통 집중할 수 없고 그저 따분하게만 느껴진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한 사람

20대의 난 이런 내가 정말 싫었다.

나는 왜 이런 인간인가. 왜 다른 이들처럼 별일 없듯 편하게 살지 못하는가.
도대체 생각은 어떻게 멈추는 건가.

하는 생각들이 가라앉은 나를 더욱 깊게 짓눌렀다.


하지만 30대의 내 곁엔 감사하게도 그가 있다.

내가 누구인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찌하면 이런 생각들을 멈출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


학생인 시절엔 남편도 이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남편의 감정은 평행선에 가깝다. 고요한 바다처럼.)

그래서 그의 눈에 난 감정기복이 심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예민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이런 내 모습에 그가 날 떠나면 어쩌지?'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의 걱정과 달리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의 감정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하고 경험한 남편은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이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고, 나라는 사람을 나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수용해 주었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염세주의자가 될라치면 먼저 그때를 알아차리고 내게 몇 가지 행동들을 해볼 것을 권유한다.


아내가 헐크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남편의 극약처방


[1] 특정시간을 잡아 그 시간 동안 내가 가진 고민에 미친 듯이 파고들어라.

>> 가이드 

주어진 시간 동안 제 풀에 지칠 때까지 치열하게 고민해라.

시간이 끝나면 그 고민을 마음의 방 깊숙이에 넣고 자물쇠를 꼭 잠가라.

그 시간 외에는 더 이상 고민하지 말아라.

>> 기대효과

과도한 생각으로 인해 계속해서 새어 나가는 에너지 고갈을 방지할 수 있다.


[2] '나는 왜 이런 인간이지?'가 아니라 '나는 그냥 이런 인간이다.'를 받아들여라.

>> 가이드

나라는 인간의 특징을 이해하고, 내게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을 찾아서 해라.

내 마음속 감정들을 하나하나 다 쪼개어 정리해 봐라. (끌을 써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다.)

그리고 그 쪼개진 감정들의 원인을 각각 찾아보고, 그것들 간의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봐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인지를 결정하라.

바꿀 수 있는 건 당장 바꾸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은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넘겨버려라.

>>기대효과

내 마음속 돌덩이 같은 고민, 걱정들의 크기가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다.


[3] 내 감정을 기분 나쁘지 않고 담백하게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라.

>>가이드

내가 왜 이런 행동, 이런 표정을 짓는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내 컨디션과 현재 상황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해라.

솔루션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해라. 그저 내 말을 누군가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효과

설령 상대가 해결책을 내주지 못하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의 크기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4] 운동해라 그리고 잘 자라.

>>가이드

자꾸 몸을 써야 몸이 쓸 때 없는 곳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말을 무시해선 안된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그 생각에 휩싸여 뒤척이거나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휴대폰을 보는 멍청한 짓을 하지 말아라.

힘이 들고 에너지가 고갈되었으면 자라.

>>기대효과

몸을 쓰고 운동을 하다 보면 거기서 얻는 에너지로부터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잘 자고 나면 내가 했던 고민의 상당 부분은 없었던 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와 같은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말

그의 조언은 내가 염세주의에서 빠르게 벗어나는데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나는 메모장을 꺼내 그곳에 내 고민과 걱정들을 주욱 나열했고, 그 감정들 간의 연결고리도 지어보며 내가 느끼는 이 더럽고 불쾌한 감정의 싹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싹을 빨리 잘라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정해놓은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미친 듯이 분석하듯 파고들면 어느새 별일 아 것처럼 그 일이 변해 있음을 경험할 수 있다.  


나만의 특급 처방전

'헐크화' 되어가는 나를 되돌리려고 노력하다 보니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5] 다른 때보다 나를 더 소중히 대하려고 노력한다.

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열심히 운동해 내 몸에 활력을 만들어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내 감정에 질타보다는 이해의 행동들을 취한다.

그리고 밤이 되어 피곤이 몰려오면 이어폰을 빼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그저 나의 꿀잠에만 집중한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빠른 시간 내 염세주의자에서 다시 '선의의 옹호자'로 돌아온 나를 발견한다.

이제는 인정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렇기에 늘 한결같이 똑같은 상태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누구든 헐크화&염세주의화 되는 시기를 겪게 될 것이니,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위의 것들을 실천해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 마음이 괴롭다는 건
'스스로를 최선을 다해 돌봐야 할 타이밍이 되었다.'는
신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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