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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Apr 18. 2024

기술의 진보와 인테리어 디자인 폼팩터의 변화

자동차 디자인의 변화는 늘 기술의 발전이 주도해왔다.


생물은 살아남고자 환경에 알맞게 진화한다. 긴 세월을 거치며 서서히 형태를 바꿔 나간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로 다른 종인데도 진화를 거듭하며 유사한 생김새를 띠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라고 부른다. 그 모습이 생존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인테리어가 최근 제조사를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탑승자에게 최적의 편의와 이동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진화의 형태인 까닭이다.



최신 자동차 인테리어는 대형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와이드하고 심플한 설계를 보인다


최근 자동차의 인테리어에서 도드라지는 트렌드는 ‘단순화’와 ‘디스플레이의 대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제조사들의 설계 철학에 따라 각자의 개성을 드러냈던 과거와는 달리, 미니멀리즘 트렌드에 입각하여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의 디자인 획일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는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과 인간 공학 기반의 설계가 영향을 끼친 결과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즐기는 미디어의 도입


과거 자동차 인테리어는 센터페시아의 구성 요소 배치가 비교적 자유로웠다


자동차 인테리어의 핵심 구성 요소로 자리매김한 차량용 디스플레이는 미디어의 발달과 발맞춰 진화했다. 가령 제조사들은 자동차에 ‘보는 미디어’가 반영되기 이전, 센터페시아의 구성 요소를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자동차의 오디오는 인테리어 *폼팩터(form factor)를 좌우하는 요소는 아니었다. 집 안에서 라디오를 틀어 두고 뜨개질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청각 중심의 미디어는 내비게이션처럼 수시로 작동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디오 유닛의 위치가 대시보드 상단이나 센터페시아 최하단부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흔했던 이유다.


*폼팩터 : 제품의 구조화된 형태나 크기, 물리적 배열


정보량의 증가와 시인성 확보를 위해 멀티미디어 디스플레이는 꾸준히 크기를 키워왔다


1930년대 처음 장착되기 시작한 차량용 라디오는 자동차 최초의 미디어 장치였다. 라디오 주파수 결정을 위한 아날로그 표시 및 조작계는 FM 스테레오 튜너의 적용 이후인 1970년대에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바뀌었다. 이후 해당 디스플레이는 주행 거리 등의 자동차의 운행 정보까지 표기하기 시작했다. 숫자나 간단한 알파벳 정도만 띄울 수 있었던 ‘디짓 디스플레이(Digit Display)’가 바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효시인 셈이다. 


이후 라디오는 카세트 테이프에 이어 컴팩트 디스크(CD)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까지 다룰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디짓 디스플레이는 다양한 미디어 정보를 표현하는 데에 기술적 한계에 부딪쳤고, 결국 단색의 LCD(Liquid Crystal Display)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픽셀 기반의 디스플레이는 보다 세밀한 표현이 가능했고, 이런 장점을 인정받아 점점 표시 면적을 넓혀 나갔다. 




시각 중심의 멀티미디어가 바꾼 인테리어 트렌드


내비게이션의 도입으로 컬러 디스플레이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최초로 개발된 차량용 내비게이션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LCD 기반의 컬러 디스플레이로 경로 정보를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은 혁신의 결정체였다. 기술 도입 초기에는 오디오와 별도로 구성되어 지도 정보만 제공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존 미디어 장치와 연동을 시도했다. 결국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라는 명칭의 통합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 진화한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곧 자동차의 주요 정보를 표기하는 메인 디스플레이로 자리 잡았다. 



제조사들은 시각 중심의 콘텐츠가 등장하자 시선 이동을 최소화하고 조작성을 높일 수 있도록 모니터를 상단에 배치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라디오와 달리 운전 중 수시로 확인이 필요하다. 게다가 기능의 다양화로 인해 조작 빈도가 늘어남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들은 모니터와 조작계를 시선 이동이 가장 적은 센터페시아 상단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중심의 인테리어 구성은 이처럼 인간 공학을 고려한 결과로, 현재까지도 그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기술의 진화가 일으킨 인테리어의 변화



이후 디스플레이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며 인테리어 폼팩터 변화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터치스크린 기술의 적용은 버튼 수를 크게 줄이는 인터페이스의 혁신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터치 레이어의 일체화와 모듈 단위 설계 등, 부품 수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들이 순차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인테리어 폼팩터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회로집적도의 향상과 함께 최근에는 커브드 디스플레이나 OLED 패널이 차량용 기술로 상용화되어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각종 조작계의 설계 자유도가 높아졌다. 덕분에 센터페시아와 같은 인테리어 핵심 요소들을 이전보다 컴팩트하게 구성하여, 단순하고 개방감을 강조한 디자인을 추구하기 수월해졌다.



근래의 자동차 인테리어는 공간의 효율을 중시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발전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된 기술도 적지 않다. 가령 카세트 플레이어와 CD 체인저는 플래시 드라이브의 보급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정착으로 인해 현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장비가 되었다. 아울러 SBW(Shift By Wire)를 비롯한 전자 장비 기술이 기존의 기계 장치를 하나둘 대체하면서 한정된 공간을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돕고 있다. 



계기판은 바늘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최근 그래픽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혁신을 거쳤다


하드웨어 기술 발전의 특혜를 누리고 있는 또 다른 곳은 바로 계기판이다. 윈드실드 너머의 전방 상황 다음으로 운전자의 시선이 많이 가는 계기판은 과거 주행 속도와 엔진회전수, 잔여 연료량 등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기했다. 이후 주행 가능 거리나 누적 주행 거리 등을 디짓 디스플레이 또는 LCD로 표기하는 트립 컴퓨터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전자장비가 증가하고 전동화 파워트레인 및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등이 신규 적용되며 계기판이 표기해야 할 정보가 한층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기존의 트립 컴퓨터만으로 정보를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계기판의 디스플레이는 컬러화와 함께 꾸준히 그 크기를 키웠고, 결국 클러스터 자체를 하나의 컬러 디스플레이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슬림한 패널 설계와 하우징이 없는 상태에서도 구현되는 우수한 시인성 등으로 차량 실내의 개방감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최고의 이동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인테리어 설계


현대차그룹은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를 인터페이스와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와 같은 인테리어 트렌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제조사 중 하나다. 현대차그룹 산하 모델들의 최신 인테리어가 담고 있는 키워드는 와이드한 대시보드와 슬림한 센터페시아, 그리고 개방감과 고급스러운 조형이 돋보이는 ‘파노라믹 디스플레이(Panoramic Display)’로 요약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모니터는 인간 공학에 기반한 설계로, 디스플레이로 대체된 계기판과 평행한 공간에 놓여 자연스러운 시선 이동과 조작성을 의도하고 있다. 또한 동일한 크기의 디스플레이들을 하나의 패널로 묶은 파노라믹 설계로 심리스한 조형을 구현해 인테리어 디자인의 새로운 키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브랜드 간 기본 설계 철학은 공유하면서, 타깃 고객과 차종 특성에 따른 다양한 색채를 구현하고 있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트렌드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는 간직하면서, 브랜드 및 모델 고유의 색깔을 더한 인테리어 설계를 지향하고 있다. 고객에게 일관된 사용 경험을 제공하면서 각 브랜드 및 모델의 성격을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예컨대 현대차의 경우, 체스의 기물(piece)에 비유한 ‘현대 룩’을 디자인 방향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기물들은 각자의 역할과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승리를 거머쥐기 위한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차그룹은 브랜드 및 차종(차급)의 주요 고객 특성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세부적으로 인테리어를 설계 중이다. 가령 현대차는 5세대 싼타페 개발 당시, 주요 고객층과 관련된 빅데이터 분석을 거쳐 아웃도어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콘셉트를 도출한 바 있다. 러기지 공간을 우선 고려하는 파격적인 시도로 핵심 폼팩터는 유지하면서 모델 고유의 캐릭터를 입힐 수 있었다.




예측하기 힘든 미래의 인테리어 트렌드


기술의 변화에 따라 인테리어 폼팩터 역시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날지도 모른다


현대차그룹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 자동차의 인테리어가 서로 닮아가는 과정은 최신 기술의 반영과 함께 가장 쓸모 있고,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추구한 결과다. 따라서 ‘디스플레이 대형화’라는 트렌드가 식지 않는 이상 당분간 자동차 인테리어 폼팩터에는 큰 변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기술은 변하지만 최고의 이동 경험을 지향하는 설계 철학만큼은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기술의 혁신을 앞두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 기술의 실현으로 인한 모빌리티 조작 체계의 혁신과 보이스 컨트롤이 가져올 인터페이스의 혁신, 그리고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을 접목한 콘텐츠에서 비롯될 혁신 등 예상할 수 있는 인테리어의 변수가 무궁무진하다. 수많은 콘셉트카를 보고 당연하게 상상했던 모빌리티의 인테리어가 송두리째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이는 기술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별로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기술의 내용과 형태가 달라질 뿐, 탑승자가 가장 편안하고 즐겁게 이동하게끔 만드는 제조사들의 설계 철학은 변치 않을 것이다. 탑승자 안전과 편의를 굳건히 지향해 온 현대차그룹 역시 같은 목표다. 미래 모빌리티가 선사할 새로운 인테리어가 더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글. 윤현수 

도움말. 서동영 연구원(현대제네시스디자인 전략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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