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콤팩트 전기 SUV, ‘EV3’를 내놓으며 전원 제어를 다듬었다.
시동 버튼이 일반적인 장치로 자리잡기 이전, 우리는 ‘이그니션 키’라는 열쇠로 시동 스위치를 돌려 자동차를 깨웠다. 이때 열쇠를 돌리는 시동 스위치의 위치에 따라 IG OFF - ACC – IG ON – START 순으로 작동하며, 각 상태에 해당하는 차량용 배터리의 활용 범위가 달라지곤 했다. 쉽게 말하면 시동 상황에 가까워질수록 소모하는 전력의 크기가 커지는 셈이다.
그러나 전기차의 시대에 들어서 이러한 체계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전기차는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어 편의장비 사용에 따른 차량용 배터리나 전력 소모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 라인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축 중인 기아의 행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기아는 콤팩트 전기 SUV ‘EV3’를 개발하며 기존 전기차가 가진 단계별 전원 구성을 단순하게 다듬고, 고전압 배터리의 활용 범위를 크게 늘려 전기차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대폭 향상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연구하고 개발한 전자전력제어개발팀의 오홍민 책임연구원으로부터 새로운 전원 제어와 함께 넓어질 전기차의 활용성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Q, 자동차에서 ‘전원’이란 어떤 개념을 의미하나?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슬립 버튼을 눌러 켜기만 하면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자동차는 전원이 단계별로 구분되어 있고, 다음 단계로 갈수록 사용 가능한 기능들이 많아진다. 따라서 단계적으로 전원을 구성한 것은 불필요한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함이며, 이러한 전원 구성과 관련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술을 엮어 ‘전원 제어’라고 칭할 수 있다.
Q. 이전까지의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과 동일한 전원 제어 설계를 갖췄던 이유는 무엇인가?
전기차 개발 초기에는 1회 충전 시의 주행 가능 거리나 전비의 향상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내연기관 차량의 단계적인 전원 구조가 전력 소모를 줄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전기차에도 이를 동일하게 적용했었다. 그러나 전기차의 전체 전력량과 비교하면 이는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전기차를 거주 목적으로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편의성 중심의 전원 제어로 변경하게 되었다.
Q. 전원 제어 방식의 변경으로 인해 배터리 사용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전원 제어를 개선하면서 차량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고전압 배터리의 사용 영역이 더 넓어졌다. 전원 OFF 상태를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고전압 배터리를 상시 사용해 컴프레서나 PTC 히터를 가동으로 냉난방 기능을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LDC(Low Voltage DC-DC Converter, 저전압 직류 변환 장치)를 통해서 저전압 전원을 공급하여 보조배터리(12V) 방전 우려 없이 차량을 사용할 수 있다.
Q. 사용자의 편의성 측면에서는 어떤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까?
기존의 전기차는 ‘주행 준비(DRIVE READY)’ 상태가 아니면 공조장치를 비롯한 차량의 편의장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는 고전압 배터리를 주행 준비 상태에서만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원 제어에서 작동하는 전기차는 전원이 꺼진 상태(POWER OFF)만 아니면 고전압 배터리의 전력 공급으로 각종 편의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정차 상태에서 편의장비를 사용하기 위해 주행 준비 상태로 전환했을 때, 조작 실수로 차량이 움직이는 안전사고의 염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Q. 전원이 꺼진 상태 이외에는 모두 고전압 배터리를 사용하는데, POWER ON과 DRIVE READY 상태의 시스템적 차이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상태 모두 고전압 배터리를 사용하기에 공조장치와 주행과 무관한 편의장비는 사용 가능하나, 안전을 위해 PE 등의 전동화 부품과 샤시는 DRIVE READY 상태에서만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반면 정차 중에만 사용해야 하는 고전압 배터리 충전이나 실외 V2L 기능은 POWER ON 상태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Q. 전기차의 전원 제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전원 제어의 변경이란 차량의 모든 제어기가 동작하는 물리적인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량 내 기능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전원 판단 기준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적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 차량 내 적용되어 있는 모든 제어기의 전원 회로와 모든 기능들의 전원 상태를 분석했으며, 변경된 전원 제어에서 정상적인 작동이 이뤄지는지 검증도 진행했다. 이렇게 대대적인 작업을 관련 개발자들의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할 수 있었다.
Q. ACC 모드가 존재하던 기존의 전원 제어에서의 유틸리티 모드에서 배터리 충전과 V2L 기능을 동시 사용할 수 없었던 현상에는 어떤 시스템적 원인이 있었나?
기존의 유틸리티 모드는 주행을 제외한 다양한 차량 사용 상황에서 모든 전장 부품을 활용하는 시나리오를 고려했다. 당시에는 시스템 설계상 고전압 배터리의 사용이 가능한 ‘주행 준비’ 상태에서 유틸리티 모드를 실행할 수 있었다. 반면 고전압 배터리의 충전과 실외 V2L 기능은 안전을 위한 법규상 시동 상태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전원 제어의 특성으로 인한 기능 사이의 충돌이 일어났으나, EV3는 유틸리티 모드에서 차량 충전이 가능해지는 등, 자유롭게 고전압 배터리를 활용 가능하게 되었다.
Q. 유틸리티 모드 편의성이 많이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실 생활 속에서 소비자들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대용량 배터리를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만큼, 캠핑을 포함해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배터리 소모를 걱정할 필요 없이 충전과 동시에 V2L 기능을 사용하거나, 차량 내부의 편의 장비도 마음껏 사용이 가능하다. 한결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틸리티 모드 덕분에 다양한 가전과 외부 기기 활용이 가능해진 만큼, 다채로운 야외활동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Q, 유틸리티 모드는 어떻게 개선했는지 궁금하다.
비교적 설정이 번거로웠던 기능 작동 프로세스를 다양하게 구성하고 UX 측면에서도 단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를테면 전원만 들어오면 유틸리티 모드를 작동할 수 있고, 해당 기능을 자주 사용하는 운전자를 위해 퀵 컨트롤 메뉴에 유틸리티 모드를 더할 수 있게 손봤다. 또한 시동 버튼 뿐만 아니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상의 소프트웨어 버튼으로도 유틸리티 모드를 끌 수 있도록 구성했다. 유틸리티 모드 사용 중에 브레이크와 시동 버튼을 누르면 곧장 주행 준비 상태로 전환하도록 개선하기도 했다.
Q. 이러한 전원 제어 방식의 구축을 위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어떤 변화를 거쳤나?
고객의 요구 사항을 토대로 전기차 전원 제어 개선에 대한 콘셉트를 수립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후 관련 제어기 담당자들과 변경 내용을 검토했고 새로운 기능과 개선이 필요한 기능, 필요 없는 기능으로 분류하여 제어 사양을 개발했다. 또한 기존 전원 제어 방식은 각 제어기들이 독립적으로 전원 상태를 판단했다. 그러나 새로운 전원 제어 방식은 전원 상태를 판정하는 제어기가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를 기반으로 차량 내 제어기들이 협조 제어를 통해 동작하도록 소프트웨어를 구성했다.
Q. 추후 전기차의 전원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 것으로 생각하나?
전원 제어 방식의 꾸준한 개선은 편의성 향상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스마트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기아는 차량 내 제어기의 공용화를 토대로 각 차량에 적합한 전원 제어의 개발 작업에 매진해 왔다. 결과적으로 EV3는 전원 제어 개선으로 기존 전기차 대비 사용 편의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향후에는 고객이 차량을 사용하는 패턴에 맞춰 별도의 조작 없이도 자동으로 전원을 켜고 끄는 전원 제어 기술을 예상하고 있다. 또한 목적지의 이동 뿐만 아니라 휴식이나 캠핑과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안전하고 간단하게 차량의 전원과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전기차의 대중화를 코앞에 둔 시대, 상품성의 상향평준화는 더욱 거센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는 작은 차이가 큰 격차를 만든다는 의미다. 기아가 EV3의 전원 제어 방식을 개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겉으로 보기엔 큰 차이가 아니지만, 이 전원 제어의 변화가 사용자의 편의성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성 개선을 목표로 이와 같이 전기차의 근본부터 다듬은 연구원들의 섬세한 고민처럼, 기아의 기술적 혁신도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사진. 최대일, 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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