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아틀라스가 휴머노이드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지난 2021년, 미국의 로봇 전문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가 현대자동차그룹의 품에 안겼다. 미래 모빌리티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려는 현대차그룹 전략의 일환이었다.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그룹의 로보틱스 기술 고도화와 더불어 모빌리티 기술 연계를 목표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로봇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단연 이족보행 설계와 인공지능을 탑재한 휴머노이드다. 생성형 AI의 고도화와 함께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예고 중이다. 국제로봇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24.3억 달러(한화 약 3조 4,027억 원)를 기록했으며, 2032년에는 660억 달러(한화 약 92조 4,600억 원) 규모로 크게 부풀어 연평균 성장률이 45%에 달할 전망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아틀라스(Atlas)’를 내세워 일찍이 휴머노이드 시장을 이끌어 왔다. 2013년 처음 공개된 아틀라스는 로보틱스 기술의 고도화를 목표로 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마스코트이자 기술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끊임없는 노력과 개선 끝에 아틀라스는 혁신적이면서 가장 앞서 나간 휴머노이드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리고 지난 4월,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초대 아틀라스의 역사적 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담은 은퇴 영상(Farewell to HD Atlas)을 공개했다. 영상을 통해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약 10년의 세월을 거친 아틀라스를 두고 “로보틱스 분야의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는 성과를 이뤘다”고 언급하며 경의를 표했다. 조회수 수천만을 기록한 아틀라스의 여러 영상들은 소설 속 이야기로만 남아 있던 휴머노이드의 실현을 꿈꾸게 만들었으며, 아틀라스의 특기였던 백 플립(공중제비)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아틀라스의 은퇴를 향한 아쉬움이 채 가시지 않은 이튿날,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차세대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새로운 아틀라스는 보다 정밀한 제어를 위해 기존의 유압식 기술에서 벗어나 완전 전기 구동식으로 탈바꿈했다. 2세대 모델의 공개와 동시에 업로드된 영상에서 이러한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바닥에 누워있던 새로운 아틀라스는 어떠한 지지대나 보조 없이 유연하게 관절을 비틀어 스스로 일어났으며, 한층 가벼워 보이는 몸놀림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지난 8월에는 아틀라스가 팔 굽혀 펴기를 안정적으로 해내는 숏폼 영상이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 아틀라스는 마치 사람처럼 바닥을 짚고 능숙하게 자세를 낮췄으며, 이윽고 다리를 한껏 오므려 단번에 몸 전체를 일으켜 세웠다. 20초 내외의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해당 영상으로 새로운 아틀라스의 동작이 한층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변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앞서 공개한 두 개의 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 설계한 2세대 아틀라스가 뛰어난 하드웨어 성능을 갖췄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30일 영상을 하나 더 공개해 정확한 인지와 판단을 위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어떤 수준까지 도달했는지 보여줬다.
영상 속, 작업장 한가운데 서 있는 아틀라스는 머리 부분의 카메라를 활용한 머신러닝 기반의 비전 시스템으로 시야 속의 공간과 물체를 정확히 인식했다. 뒤이어 매니퓰레이터(manipulator, 로봇 손)를 정교하게 움직여 엔진 커버 부품을 정확히 집은 후, 매니퓰레이터의 모양을 바꿔 부품을 확실히 꺼내는 모습까지 선보였다. 아틀라스는 부품을 집은 채로 목표 위치인 반대편의 부품 보관함으로 이동해 비좁은 공간에 부품을 정확히 꽂아 넣었다. 이 일련의 운반 과정은 인간에게는 그저 사소한 작업이지만, 로봇 공학 영역에서는 매우 정교한 기술력을 요하는 고난도의 업무다.
특히 완벽하게 사물을 인지하고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는 수준 높은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함께, 세밀함이 다소 떨어졌던 매니퓰레이터 기술이 눈에 띄게 개선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물건을 집는다는 기본 목적에는 부합했으나, 유압식 설계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다소 거칠게 물체를 다룰 수밖에 없었던 단점을 말끔히 해결한 것이다. 실제로 영상에서 2세대 아틀라스가 부품을 매우 섬세하게 다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핼러윈 시즌을 맞아 또 다른 영상을 공개했다. 아틀라스는 익살스러운 핫도그 모양의 의상을 입고 다시 한번 고난도의 작업을 수행했으며, 이번에는 기술 시연 도중 부품 보관함의 위치를 바꾸는 돌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려졌다. 아틀라스는 작업 수행 중 보관함의 위치가 바뀌자 곧장 동선을 수정했고, 별다른 이상 없이 부품 수납을 계속했다.
아틀라스가 미리 설정된 프로그래밍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보스턴 다이내믹스 측은 영상 속 아틀라스의 모든 행동은 원격 조작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졌으며, 인지와 판단, 그리고 제어 전 영역은 로봇의 자율적인 결정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강조했다.
재미있는 건 그간 제품의 시행착오를 꾸밈없이 보여주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이번에도 아틀라스의 작은 실수를 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엔진 커버 가장자리의 돌기가 좁은 벽면에 걸려 보관함에 한 번에 넣지 못한 사소한 실수였다. 한 번에 부품을 수납하지 못한 아틀라스는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인 뒤 곧장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후 부품을 반듯이 세워 제대로 보관함에 끼워 넣었다.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실수였기 때문에 이를 본 네티즌의 반응도 꽤 호의적이었다. 오히려 더 사람다워서 재미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첫 공개 이후 2세대 아틀라스의 면모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이번 영상은 꽤 큰 파급력을 보였다. 주요 매체들도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영상을 비중 있게 다루며 새로운 아틀라스의 경쟁력에 주목했다. 미국 뉴욕주 기반의 일간지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는 “로봇이 사람의 도움 없이도 기계적, 물리적 작업을 쉽게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아틀라스의 앞선 기술력을 호평했다.
또한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과학 잡지 ‘파퓰러 사이언스(Popular Science)’도 아틀라스의 활약에 대한 평가를 남겼다. 해당 잡지는 기사를 통해 “엔진 커버를 옮기는 작업은 자동차 공장에서 일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는 멘트를 남겨 현대차그룹과의 관계성과 더불어 생산 플랜트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되짚기도 했다.
영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2세대 아틀라스는 정교한 움직임을 통해 실제 산업현장에서 인간과 상호 작용하며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생성형 AI, 강화학습 등을 활용하여 인지, 판단 및 제어 성능을 향상시켜 로봇의 임무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다. 또한 다양한 로봇에 적용 가능한 클라우드 기반 통합 관제 솔루션 ‘오빗(Orbit)’ 을 출시했으며 사족보행 로봇 스팟(Spot)을 시작으로 향후 물류 로봇 스트레치(Stretch) 와 아틀라스 등에도 적용할 것이라 밝혔다.
“로봇은 인간을 보호하고 지원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보틱스 기술에 담긴 철학이다. 실제로 휴머노이드가 인간과 닮게 디자인된 이유는 인간을 위해 설계된 세상에서 일하기 위함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십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틀라스를 개발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 더욱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보틱스 기술 축적을 향한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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