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외 연구원들이 모여 혁신적인 차체 기술을 교류하는 무대가 열렸다.
이제 자동차는 첨단 기술을 융합한 ‘지능형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맞춰 기존 자동차 공학의 핵심으로 평가받던 차체 기술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SDV(Software-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화하는 자동차), 자율주행, 전동화 등 주요 키워드로 대표되는 차세대 모빌리티 기술을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강건하면서도 효율적인 차체 구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운행 목적에 따라 폼팩터를 다변화하는 새로운 차종 ‘PBV’의 등장 역시, 진보적인 차체 기술이 차세대 모빌리티의 주요 경쟁력임을 보여준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런 차체 기술에 담긴 가치와 연구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지난 10월 30일 경기도 화성 푸르미르 호텔에서 ‘2025 HMG 카바디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연구개발을 핵심 가치로 삼아온 현대차그룹은 다양한 기술 학술대회와 포럼을 통해 연구 인력의 성장을 지원하고 성과를 격려하는 문화를 이어왔다. 그중 2014년부터 시작한 HMG 카바디 컨퍼런스는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사내외 차체 연구 인력들이 모여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미래 기술 방향을 논의하는 지식교류의 장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올해 행사는 10회를 맞이함으로써, 그 의미를 한층 더했다. 이를 반영하듯 수백 명의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우는 성황을 이뤘다. 당초 운영본부는 참석 인원 300명 규모를 예상했으나, 참석 희망자가 예상치를 훨씬 웃돌면서, 4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행사 규모를 키웠다.
행사장 내외부 전시 공간에는 현대차그룹 및 협력사들이 개발한 최신 차체 기술과 혁신 소재가 전시돼 참석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다. 전시 부스를 둘러본 참석자가 차세대 차체 기술의 진화를 직접 체감하고, 연구원 간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이 곳곳에 펼쳐졌다.
오프닝 무대에서는 현대자동차∙기아 R&D본부를 이끄는 양희원 사장이 차체 기술의 진화 방향과 비전을 공유했다. 양희원 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차체 기술에 담긴 ‘본질적인 가치’를 이야기했다. 그는 “차체 기술이 고객의 안전과 신뢰를 담보하는 기반이며,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에도 그 중요성은 변치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차체를 SDV, 자율주행, 전동화 등 신기술을 담아내는 ‘그릇’에 비유함으로써, 차체 연구원의 역할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이어서 그는 지난 2011년 세계적인 차체 기술 컨퍼런스 ‘유로카바디 어워드(EuroCarBody Award)’에서 현대차 i40가 유럽 현지 자동차 제조사를 제치고 ‘올해의 차체 기술상’을 받았던 경험을 소개하며, 끊임없는 기술 도전의 의미를 되새겼다. 당시 i40는 고장력 강판 확대, 고속 2중 점용접 시스템, 차체 연결 구조 개선 등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차체 기술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행사 주요 발표는 오전 프로그램과 오후 프로그램으로 나눠 진행됐다. 그중 오전 프로그램에서는 차세대 PBV인 ‘더 기아 PV5(이하 PV5)’의 차체 기술을 집중 조명했다. PV5는 고객 요구 사항을 반영해 강성, 경량화, 공간 효율성을 모두 만족하는 차체 구조를 구현했다.
MSV차체설계1팀 유종덕 책임연구원은 PV5 개발 연대기를 중심으로 차체 기술의 주요 장점을 소개했다. 무대에 오른 그는 “PV5의 초기 개발 단계부터 고객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이를 통해 승하차 편의성, 적재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했으며, 교통약자 이동 차량(WAV) 등을 비롯한 바디 타입 대응 전략도 함께 세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바디아키텍처개발팀 강승민 책임연구원이 PV5의 밑바탕이 된 E-GMP.S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E-GMP.S는 PBV의 사용 환경을 고려해 실내 공간 극대화, 최적화된 성능 구현 등을 목표로 개발한 PBV 전용 플랫폼이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IMA, Integrated Modular Architecture)를 기반으로 언더바디, PE 시스템, 고전압 배터리, 서스펜션 등 주요 부품을 모듈화해 차량 개발 및 생산 효율성을 높인 점이 특징이다. 이에 대해 강승민 책임연구원은 “E-GMP.S를 통해 운행 목적과 주행거리, 내구성, 주행 성능 등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기술 경쟁력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MSV차체설계1팀 이해훈 책임연구원이 현대차그룹 최초로 PV5에 적용된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Flexible Body System)’을 소개했다. 이는 차체, 도어, 테일게이트 등 주요 부품을 모듈화한 점이 특징이다. 전면부와 1열 공간은 공용 모듈로 구성해 생산성을 높이고, 1열 이후는 요구 사양에 따라 각 요소를 가변 모듈로 다양하게 조합함으로써 최대 16종의 바디 구성을 지원한다.
여기에 외장 패널 금형을 2종으로 최소화하고, 후측방 변동부는 3분할된 조립형 가니쉬로 구현해 정비 편의성과 비용 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을 결합한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으로 다사양 바디를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개발 및 생산할 수 있다.
차체 제조 기술 부문에서는 기존 레이저 용접의 한계를 극복한 LSS(Laser Seam Stepper) 기술이 발표됐다. 이 역시 PV5 차체에 새로 적용된 기술로 다양한 장점을 지녔다. 기존 비접촉식 레이저 용접은 알루미늄이나 도금 강판처럼 반사율이 높은 소재에서 용접 효율이 떨어지고, 모재(패널) 간 미세 간극으로 인해 용접 불량이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LSS 기술은 레이저 헤드가 패널을 눌러주는 클램핑 동작으로 간극을 조절하고, 표면을 덮는 구조로 반사광을 차단해 레이저 빔을 집중시킨다. 이로써 스팟 용접 수준의 고속·고정밀 접합이 가능하다. 이번 발표를 담당한 제조SI기술개발3팀 임채원 책임연구원은 “패널을 접촉하는 새로운 레이저 용접 기술로 레이저 빔 반사, 패널 간극 등 이슈를 최소화해 생산 안정성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협력사에서는 PV5 카고 모델의 1열 공간과 카고룸을 분리하는 ‘복합재 격벽’ 개발 사례를 발표했다. 기존 스틸 부품을 복합소재로 대체해 경량화 효과가 뛰어나며, 단일 부품 기준으로 상당한 중량 감소를 실현해 참석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다. 협력사의 개발 담당자 임명환 책임연구원은 “복합재 격벽은 소재 강성을 충분히 확보해 차량 충돌 하중 요건을 완벽히 만족한다. 양방향 엠보싱으로 표면을 마감해 보고 만졌을 때의 고급스러움도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PV5 세션 발표 후에는 참석자와 앞서 관련 기술 발표자 5명이 무대에 다시 올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기존 양산차에서 보기 어려운 신개념 차체 기술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 또한 발표자들은 동료 연구원으로서 진정성 있는 답변을 전하며, 현대차그룹만의 협업 문화를 보여줬다. 한편, PV5를 개발하면서 확보한 주요 차체 기술 12건은 〈PBV 개발 백서〉라는 책으로 엮어 동료 연구원들이 참고할 수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이어진 ‘히든 스토리’에서는 선후배 연구원들이 연구 여정과 소회를 나눴다. 먼저 MSV바디설계1실 이영호 상무가 약 30년간 차체 기술 개발에 몸담아 온 선배 연구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현대차그룹의 차체 기술이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에 치열했던 노력들이 오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며, “차체 소재는 강판에서 알루미늄, 그리고 복합재로 진화하고 있다. 어떤 소재에도 대응할 수 있는 차체 연구원으로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영호 상무는 “새로운 모빌리티 패러다임에서도 차체 기술은 여전히 핵심 요소다. 현대차그룹 전체와 협력사가 함께 기술 혁신을 이루며, 기술적 난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아가겠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MZ세대를 대표해 무대에 오른 MLV차체설계2팀 윤륜상 연구원은 대학생 시절 모빌리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번아웃에 빠져 무기력했던 입사 초기를 회상하면서 “선후배, 동료들이 새로운 기술과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요즘은 스스로의 자부심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연구원으로 매순간 성장해왔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는 차체 연구원의 역할이 더욱 커지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후 프로그램에서는 미래 모빌리티, AI & 버추얼, 제조혁신, 챌린지(연구원 주도형 연구 프로젝트) 등의 주제로 4개 세션이 동시에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는 ‘PBV 이지 스왑(Easy Swap)’, ‘알루미늄 주조재·압출재 품질 및 물성 예측 기술’, ‘I3W(I-Mobility I3W) 콘셉트’ 등 실제 연구 성과로 차체 기술의 미래를 폭넓게 조명했다.
PBV 이지 스왑은 모듈형 플랫폼으로 손쉽게 교체함으로써 자가용, 승객 이송, 물류 운송, 비즈니스 등 다양한 운행 목적에 대응하는 차체 구조 혁신 기술이다. 이는 차체를 고정부(Driving Module)와 변동부(Life Module)로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며, 교환·장착 설비에서 운행 목적에 적합한 변동부로 교체할 수 있다.
즉, 한 대의 PBV로 여러 대의 PBV처럼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차체 기술인 셈이다. 발표를 맡은 바디융합선행개발팀 박대명 책임연구원은 “현재 활발하게 연구 중이며, 최근 실제 차량에 기반한 기술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터 기반 예측 모델로 차체 품질을 향상하는 기술도 공개됐다. 그중 공정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알루미늄 주조재·압출재 품질 및 물성 예측 기술이 참가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금형에 용융한 알루미늄을 고압으로 주입해(주조) 차체 부품을 제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품질 이슈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금형 내 용융 알루미늄의 유동성을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해 적은 샘플로도 주조품 품질(물성)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기술로, 차체 품질 및 금형 개발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것이다. 버추얼재료연구팀 윤형섭 책임연구원은 “해당 기술을 하이퍼 캐스팅, 충돌 안전 대응 차체 성능 강화 부품 제작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차체 품질 강화, 신속한 차량 개발 등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챌린지 세션에서는 현대차인도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인도 시장 전용 마이크로 모빌리티 콘셉트 I3W의 차체 기술이 주목을 받았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모빌리티 시장으로 3륜차를 비롯한 초소형 모빌리티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I3W는 바로 이러한 현지 특성을 반영해 개발된 전동화 솔루션이다.
I3W에는 미래 소형 모빌리티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복잡한 현지 도로 상황에 적합한 콤팩트한 크기, 평탄한 바닥, 긴 휠베이스를 통해 탑승객의 이동 편의를 강화한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저속 충돌 안전성 확보 구조, 안전벨트, 휠체어 탑재 설계 등으로 안전성까지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접이식 좌석, 견인고리, 폭염 대비 설계, 열전도 감소 페인트 등 다채로운 현지화 기능으로 인도 도로 환경에 최적화된 요소를 마련했다. 이에 대해 레칼라 시바 쿠마르 레디(Lekkala Siva Kumar Reddy) 책임연구원은 “인도 도로 환경을 고려한 차체 기술로 현지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하겠다”고 이야기했다.
10회째 이어진 HMG 카바디 컨퍼런스는 기술 컨퍼런스를 넘어서, 차체 기술의 본질과 가치를 지켜온 연구자들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조 공학, 소재 공학, 여기에 연구원들의 열정까지 결합한 오늘날 차체 기술 개발 성과는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안전과 고객 신뢰, 그리고 기술 혁신의 근간을 더욱 단단히 다져왔다.
MSV바디설계1실 이영호 상무는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HMG 카바디 컨퍼런스에 참석한 소회를 전했다. 그는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에는 달라진 환경에 부응하는 혁신적인 차체 기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 연구 조직과 협력사가 함께 모여 토론하고 화합하는 이번 행사를 통해 첨단 차체 기술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새로운 변화를 가속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매년 새로운 연구와 도전을 선보인 HMG 카바디 컨퍼런스는 이제 현대차그룹의 R&D 정체성과 기술 유산을 잇는 상징적인 무대로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현대차그룹은 HMG 카바디 컨퍼런스를 비롯한 다양한 지식공유 플랫폼을 마련해 연구자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기술의 경계를 허물며,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사진. 민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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