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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Jul 08. 2020

맛의 원리

우리는 맛을 어떻게 느끼고 탐미하는가

우리가 맛을 느끼고 지각하는 원리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인문적 성찰이 담긴 책.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내 생각에 대중을 위한 뇌과학 교양서는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딱 이 정도 수준의 균형을 취하는 것이 미덕인 것 같다. 물론 이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이자 뛰어난 이야기꾼이어야 하겠지만.


저자는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후 제과회사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2000년부터 향료회사 연구소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연구를 진행했다. 2013년부터 (주)시아스에서 근무했고 현재 편한식품정보 대표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저자가 책을 쓴 의도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해 인용해본다.


...그래서 나는 주변의 자연과학을 이용하여 좀 더 포괄적인 맛의 이론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신경과학, 생리학 등에서 맛의 인지와 쾌락의 원리를 찾고, 맛의 심리 중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진화심리학에서 답을 찾고자 하였다. 질병마저 진화적 이유가 있다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에 마땅한 진화적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의 즐거움(Food Pleasure)'을 식품학, 생리학, 뇌과학, 음식의 역사,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풀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맛을 아는 것이 단순히 즐거움의 수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를 기대한다. 맛을 알려면 단순히 식품 재료와 성분 그리고 우리 몸의 감각기관을 아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몸과 뇌 그리고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혹은 그전부터 뇌과학 공부를 꽤 많이 해온 듯싶다. 376페이지라는 가벼운 분량의 책에서 대중적인 내용으로 맛의 원리를 전달하면서, 상당한 분량을 뇌의 작동 기제를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예시를 위해 저자의 설명 중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짠맛. 나트륨은 칼륨과의 전위 차가 뉴런의 시냅스 과정으로 환원되는 뇌의 정보 처리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우리 몸이 나트륨 농도를 항상 높게 유지하며 99%를 재흡수하여 사용하지만, 아주 미량만 부족해져도 생명 유지에 치명적이 될 수 있으며, 우리 몸은 짠맛에 매우 예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금은 아마도 인류 최초의 식품첨가물이자 최후의 첨가물일 것이다.
쓴맛. 본래 쓴맛은 동물에게 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지표였다. 이렇게 생존을 위한 기능을 담당하다 보니 쓴맛을 싫어하는 성향은 아이나 유인원에게서 선천적으로 관찰된다.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모두 25종으로 다른 네 가지 맛 수용체를 모두 합친 5종에 비해 5배나 많다. 성인이 되며 학습을 통해 쓴맛이 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즐기게 되지만, 성인 여성들은 임신기에 쓴맛에 대한 민감도가 극도로 높아진다. 모성 본능 때문이다.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대중들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쓴 에세이에 가깝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 소개나 요약은 무의미할 듯싶다. 책 소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읽으며 생각하고 메모한 내용들을 가볍게 적어본다.



1. 밤늦게 읽으면 위험한 책이다


우리가 맛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상상하며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내 기억 속의 맛들이 다양한 오감과 향과 리듬과 스토리로 떠올라 침샘을 고이게 한다. 시간 내에 독후감을 쓰기 위해 급하게 저녁에 몰아 읽던 중, 마지막 장에서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초콜릿, 콜라, 피자,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을 만났다. 아이스크림은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초콜릿 부분을 다 읽은 뒤에는 냉동실 문을 열고 초콜릿을 꺼내먹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다시 한 조각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카톡을 보니 필라테스 선생님이 내일 수업 때 보자고 하신다. 사실 휴가 복귀 후 오랜만에 다이어트 식단을 재개하기로 했건만, 오늘 사진을 찍어 보내지 않은 것을 선생님은 언급하지 않으셨다. 조용히 죄책감이 밀려든다.



2. 위장으로 느끼는 맛, 진동으로 듣는 음악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미각뿐 아닌 다양한 감각, 심지어 위와 장으로부터 맛을 느낀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로콕이 아닌 오리지널 콜라를 선호하는 부분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mp3가 생각났다. mp3는 인간의 가청주파수 대역을 알뜰하게 잘라내고 나머지를 제거해 저장용량을 10분의 1 수준으로 압축한 기술이지만, 오늘날 스트리밍 시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무손실 FLAC 음원을 고집할 것이다. 한편 난 과거에 개인용 스피커에 몇 억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허세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오랜 친구와 통화하다가 생각이 트이는 경험을 했다. 친구는 밤늦게 아이 잠들면 혼자 차 안에 들어가서 맥주 마시면서 음악 듣는 게 낙이라는 얘길 했는데, 이 친구의 말은 '앰비언스가 달라. 이어폰이랑은 다르지'였다. 


맞다. 음악은 청각뿐 아니라 몸으로 듣는 것이기도 하다. 한 유명한 마림바 연주자의 사례는 청각이 안 들리지만 맨발로 서서 진동을 느끼면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연장이나 클럽, 합주실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춤추고 연주하는 행위는 몸으로 진동을 느끼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쩜 이번 코로나19 정국에서도 잠깐 숨통이 트이자 수많은 클러버들이 숨 좀 쉬겠다고 이태원 클럽으로 달려갔다 집단 감염이 나온 것도,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그 진동과 조명이 아니면 '느낄' 수가 없는 경험일 테니.


그나저나, 오미오감이 아니라 내장으로 느끼는 맛이라니. 내장 감각이야말로 식스센스인 것인가. 하긴 그러고 보니 미국 심리학의 선구자 윌리엄 제임스도 초기 정서 이론에서 내장 반응이 정서 경험의 출발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었다.



3. 내장기관의 감각보다 강력한 것이 세포마다 느끼는 맛이다. 


저자에 따르면 허기가 최고의 반찬이라고 말할 때, 허기는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한편으로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1년에 800KG을 먹는 사람이 400KG을 먹는 사람보다 400KG, 혹은 40KG도 살이 더 찌지는 않는다. 이 놀라운 체중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에 여러 가지 호르몬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음은 본문 발췌


예를 들어 렙틴은 지방세포가 분비하는 호르몬으로, 정상보다 커지면 렙틴 분비량이 많아져 허기를 덜 느끼고, 다이어트 결과 지방세포가 적어지면 렙틴 분비량이 적어지고 허기를 느끼는 것이다. 기존의 다이어트 방법으로는 이런 지방 세포의 감각까지 속일 수 없고, 다이어트가 지속되어 지방세포가 지방이 고갈될수록 강력한 신호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욕망을 억제하는 다이어트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끝나버린다.


최근 아킬레스건염이라는 질환을 판정받았다. 발목 근처가 부어있고 조금 많이 구부리면 쑤시는 통증이 온다. 살면서 아파서 병원에 가본 적이 별로 없다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버티고 살다가 몇 달째 낫지를 않아 병원엘 다니고 약도 먹는(그러면서 술도 먹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약간의 서글픔과 이제 몸 살살 쓰고 살아야겠구나라는 자조를 하던 중, 이 대목을 읽으면서 '혹시 이 질환도 내 몸이 나에게 주는 항상성 기제와 같은 것일까. 체중을 줄이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체중을 줄이지 않고 술을 줄이지 않으면 이 질환이 오래갈 것임은 아마도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최소 이번 달, 길게는 이 질환이 나을 때까지 금주를 하기로 초유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금주에 성공해 이 질환이 나을 때쯤이 되면 아마도 내 몸은 조금 더 건강해져 있을 것이다. 이게 만일 나의 뇌가 나에게 고통이라는 자극(벌)을 주어 뇌의 생존 기간과 유기체의 생명력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종의 생존과 번식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피드백 루프일 것이다.



4.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뇌에 새겨진 본성이라면, 다이어트와 금주 금연은 거의 불가능한 것 아닌가?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면 도파민 회로의 보상을 받는다. 그래서 수많은 다이어트 제품이 실패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음으로 다시는 술을 이렇게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꽐라가 되기를 반복한다. 물론 푸드나무처럼 훌륭한 맛과 영양을 제공하는 다이어트 제품을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닭가슴살 제품만으로는 내장에게 지방 맛을 선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랭킹닭컴의 다양한 제품 군을 번갈아 가면서 먹는 것이 소극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식당과 그 음식과 그 사람과의 기억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저자에 따르면 맛을 통섭하는 것은 뇌, 뇌가 저장하고 인출하고 범주화하는 기억들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금주나 금연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전역 이래 사상 최장 기간의 금주기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나로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명제가 될 테지만. 그나마 금연에 성공한 기억을 돌이켜 보는 것이 심적으로 위안이 될 듯하다.


금연은 나로서도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9년 전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합정동에서 곱창에 소주를 들이켜고 만취해 택시를 타기 전 마일드세븐 LSS를 사서 한 가치를 피운 뒤 '아 너무 맛이 없다. 이제 끊어야겠다'라고 생각한 뒤, 그 담배곽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도 대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면서도 담배곽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한 달 즈음 뒤에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줘서 보낼 때까지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를 아주 막연하게 말해보자면, '피우고 싶은데 억지로 참은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을 비웠다'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불가나 도가의 가르침과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억지로 참아서 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면 된다.


이 마음으로 당분간 발목이 나을 때까지 부디 금주를 성공하기를. 아자.



5. 음식과 음악


저자는 음식의 맛을 표현하고 느끼는 원리는 음악에서 화성, 편곡, 리듬, 음색을 섞어 조화시키고 대조시키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든다. 아주 전달력이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김동률이 라디오에 나와 유학 시절 후배들을 집에 초대해 요리해 먹이는 것을 좋아했었다는 일화를 얘기하며, 음악과 요리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도 꽤나 많이 공감했었다.


작편곡은 요소를 환원하고 붙이고 조합하는 작업이다. 리듬, 화성, 멜로디의 조합과 악기의 배치, 벌스와 브릿지와 사비를 조합한 멜로디 라인의 전개, 톤의 베리에이션 등. 셰프가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조리해 플레이팅을 해 손님 상에 올리는 일련의 과정, 그 과정에서 손님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식당의 인테리어와 조명, 음악, 이 모든 것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유추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사고의 본질은 유추인 것인가.

(끼워 팔기 링크) https://brunch.co.kr/@seungwhanlee83/94



생각을 마무리하며


간만에 아주 가볍고 편하게 즐거이 읽은 책이었고, 독후감도 아주 편하고 즐거이 물 흐르듯 적어냈다. 역시 가끔 이렇게 가벼운 책도 읽어주는 것이 삶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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