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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Sep 13. 2023

농심 고구마깡 -5

-소설가가 요양보호사가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르신 물을 드리고 어르신 요구르트를 챙겨드리고 어르신 귤을 까드리고 어르신 요플레를 떠먹여 주었다. 푹신하고 아늑한 소파에 어르신을 앉혀놓고 다시 다리를 팔을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EBS에서 테마기행을 시작하면 나는 부엌으로 갔다. 


어르신의 부엌은 정갈했다. 럭셔리하게 리모델링한 주방은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수납공간이 있었고 아일랜드 식탁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싱크대 곳곳에는 전골냄비와 프라이팬을 포함한 고급 제품이 몇 세트나 잘 정돈되어 있었고 포트 메리온 같은 명품 그릇도 잘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늘 사용하는 식기는 투박한 접시 두어 개와 수저통이 헐렁하게 꼽아놓은 딱 세 벌의 수저와 젓가락과 몇 개의 국그릇과 밥그릇이 전부였다. 팔 개월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아름답고 멋진 그릇이 식탁에 오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느낌이다.

부엌만 자세히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어르신의 딸은 평생 다이어트를 하기 때문인지(본인이 그렇게 말했다) 무엇을 먹는다거나 음식을 조리한다거나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적게 먹고 운동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문제는 자신이 먹지 않는다고 어르신의 음식을 만드는 것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아니 오히려 너무 넘칠 정도의 조리기구와 그릇이 구비되어 있음에도 맛있고 따뜻하고 정겨운 음식 냄새는 나지 않는 이상한 부엌이었다. 나는 먼지 하나 없는 거실에서, 부엌에서 어르신을 모시고 그림 속의 초상화처럼 소리 없이 조용히 할 일을 했다. 어르신은 그러한 나를 보고 참 말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 말을 하는 어르신도 거의 입을 떼지 않았다. 나는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


  국을 데우고 어르신 전용 냉장고를 열고 몇 가지 반찬을 꺼내고 밥을 펐다. 육중한 대리석 식탁 앞에서의 어르신은 더 작아 보였다. 야윈 손가락은 수저를 들 힘조차 없어 보였지만 용케 수저를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밥 위에 반찬을 얹어주고 어르신이 힘겹게 넘길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잘게 썬 김치조차 제대로 씹을 수 없어 힘겨워하는 아흔 살이 넘은 어르신 옆에서 식사 시중을 들면서 ‘나는 아흔 살 까지는 절대 살지 않을 거야’를 끝없이 다짐했다. 날이 갈수록 다짐은 결심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에게 맹세까지 하고 있었다. 노인은 슬펐다. 


  어르신 어깨너머로 EBS의 화면은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배낭을 멘 젊고 아름다운 처녀가 지도를 들고 에메랄드 빛 바다가 출렁이는 지중해의 해변을 걷고 있기도 하고 구레나룻이 멋진 중년 작가(내가 모르는)는 스타일리시한 차림으로 머플러를 휘날리며 완만한 구릉 위에 서서 고풍스러운 옛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필시 꽃향기가 섞여 있을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아름답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꿈결처럼 바람에 날아온 구라파의 꽃향기를 맡으며. 

나는 나의 일생에서 저런 곳을 여행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그곳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저 아름다움 속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저곳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도 알았지만.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그 무엇도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예정된 운명이 나의 가슴 어딘가를 찌르르 울리며 스쳐 지났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식사를 하고 계신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감옥에 있는 죄수나 간수나 무엇이 다른가. 아무도 모르게 나는 나를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팔 개월을 보냈다.   




요양보호사에서 다시 소설가로 돌아온 어느 날

  며칠 이런 글을 쓰며 보내다가 오늘은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책만 들입다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어쩐지 편안하지 않은 하루였다. 이거 혹시 너무 안일한 삶이 아닌가, 하는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면서 농심 고구마깡을 아삭거린다. 


 갑자기 나의 자유가 부자유스럽게 느껴진다. 

 부자유스러운 기분으로 농심 고구마깡을 아삭거린다.

  아삭아삭

  요양원으로 가신 어르신은 지금 잘 계실까

  아삭아삭

  잘 계시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건 그냥 내가 편하기 위해 하는 의미 없는 말

  아삭아삭

  잘 계시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계속 아삭아삭

  농심 고구마깡을 먹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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