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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망 Apr 25. 2024

아시아인 ‘미세공격’

얼마 전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미세공격’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김지윤의 지식 play_ ‘잘못된 단어’가 민주주의를 침묵시킨다? 르네 피스터)


미세공격 : 소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는 작은 차별과 편견 등 개인 단위의 소소한 불관용 경험


해외에서 소수자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었다. 인터뷰에 나온 르네 피스터 작가(저서: 잘못된 단어)가 이 미세공격으로 예를 든 것은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이다.  


나는 다행히(?) 나는 프랑스에서 이 질문은 많이 받지 않는다. 이러한 질문은 프랑스사람들이 민감하게 생각해서 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끔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쓰냐고 돌려서 묻기도 한다. 여기에서 태어난 혹은 한국계 입양인들이 겉모습만 보고 이 질문을 매번 받는다면 정말 힘들 거 같긴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인 입장에서는 차라리 물어봐주는 게 편할 때도 있다. 어차피 겉모습으로는 내가 어디 나라 사람인지 알기 힘들고 동양인은 모두 중국인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보통 동양인 차별은 중국과 관련된 것이 많다. 갑자기 뜬금없이 니하오를 하면서 비아냥대거나 중국인 관련한 욕을 퍼붓는 것 등이다.  


유학생활 초반에 놀러 오신 부모님과 프랑스의 리옹이라는 도시에서 여행 중에 벤치에 앉아있는데 프랑스 젊은애들이 큰 소리로 “ 중국인들! 너희 나라로 돌아가! “라고 큰소리를 지르고 갔다. 정말 불쾌한 경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리옹은 특히 지역폐쇄주의가 강한 동네라 인종차별이 프랑스에서도 좀 심한 곳이었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다. 내 친한 프랑스 친구들도 리옹출신이다.)


또한 한국 친구들과 파리를 걷다가 티베트 독립시위를 하고 있는 프랑스인 무리를 만났는데 그중 흥분한 시위대 한 명이 우리에게 갑자기 달려와 중국에 대한 욕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정말이지 무지에서 오는 그 무례함이 역겨웠다. 본인은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멋지고 깨어있는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솔직히 그가 길거리에서 티베트인과 중국인조차도 구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르게 보면 오히려 ‘어디 출신인지’ 묻지 않고 '마음대로 상대방의 출신을 판단하는 것’ 또한 하나의 미세공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 남을 공격하는 부류들은 그들이 진짜 누군지 어디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외부인에 대한 적개심과 무시뿐인 감정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있다. 프랑스인 유튜버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자리에 우연찮게 가게 됐었는데 프랑스인 백인 여성 유튜버가 한국여행 중에 러시아 창녀라는 욕을 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어디에나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생각들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해외에서 특히 유럽에서 아시아인으로 살다 보면 이게 ‘미세공격’인 건가 하는 생각들이 불쑥불쑥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너무 민감한 인종차별 레이더는 내 삶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거 같다.  그리고 사실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될 때도 많다.


식당 직원들이 친절하지 않았다면 사실 내가 프랑스 식당문화를 몰라서 그들에게 내가 먼저 무례하게 했기 때문이거나 그냥 원래 모두에게 안 친절한 직원이었을 수도 있고. 슈퍼에서 가방검사를 하길래 인종차별인가 했더니 프랑스는 소매치기가 하도 많아서 가방검사가 일상이었고.  오토바이 타고 나한테 소리 지르고 가는 애들 때문에 인종차별이라고 화를 냈지만, 알고 봤더니  그러한 일은 나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걸어가는 프랑스의 모든 젊은 여성들에게 운나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앞서 말한 유튜브 영상에서 ‘미세공격’의 개념을 소개한 르네 피스터 작가도 ‘미세 공격’이라고 사회적으로 ‘정의’해버리는 것들이 오히려 건강한 토론을 저해하고 다문화사회에서 서로를 알아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서로 어디 출신인지 묻는 것을 터부시 여기기만 한다면 결국 유럽의 모든 동양인들은 중국인일 거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긴 더 힘들 것이다. 또한 진심으로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에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사람조차도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질문을 스스로 차단시켜 버릴 수도 있다.


그냥 서로에 대해 알고 싶은 순수해야 할 질문이 변질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 사회나 차별은 존재하고, 너무 긴장을 하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에 대한 미세공격이라며 날을 세우기만 해서는 함께 살아갈 수 없다. 한국인들 모두를 같은 종류의 사람들로 일반화할 수 없듯이 ‘프랑스인들’ 모두를 소수의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동일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긴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매번 긴장 속에서 다른 이들을 경계하기만 한다면 내 삶 또한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은 나 또한 코로나로 한창 아시아인 차별이 심할 때 겪었다.


한동안 웅크려져 있고 극도로 예민해졌던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내 주위의 평범한 프랑스 이웃들의  따뜻함과 친절함 때문이었다. 또한 나와 가까운 프랑스 친구들에게는 속얘기를 했다. 너희 나라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고.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아시아인 차별의 존재에 대해서 감각이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 주위의 프랑스 사람들에게라도 먼저 말을 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아시아인 차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좀 더 표현하기 시작했다. 최근 프랑스 공영방송에서 아시아인 차별에 대한 다큐가 방영됐다. 이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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