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 마담!
존중의 의미, 마담 Madame
‘Bonjour madame, 봉쥬 마담’ 프랑스에서 사는 여성들이라면 생활 속에서 늘 듣는 호칭 마담, Madame.
한국 국어사전에는 ‘마담’이 ‘술집이나 다방, 보석 가게 따위의 여주인’(네이버 국어사전)이라고 나와있다. 국어사전까지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는지는 몰랐다. -정말 충격이다.-
하지만 마담은 프랑스에서 대통령 영부인을 칭할 때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을 칭해야 할 때도 모두 동일하게 쓰이는 여성을 존중하여 칭하는 말이다. 단순히 예전 귀족부인들만을 지칭하는 호칭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늘 쓰이는 호칭이다.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나를 마담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 많은 여성 취급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를 슈퍼에서든, 은행에서든 마담으로 불러줄 때에는 이제 존중의 의미로 쓰는 것을 안다.
‘아가씨’ 정도의 뜻으로 부르는 마드모아젤은 요새는 많이 들리지 않는다.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와 상관없이 성인 여성을 부를 때는 마드모아젤보다는 마담이 더 존중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한국에서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부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여성이라면, 아가씨, 학생, 어머니, 할머니 정도가 아닐까? 몇 년 전 동네 아파트에서 매달 열리는 장에서 파는 돈가스를 사러 간 적이 있는데, 어떤 30대 정도의 남성분이 돈가스를 팔고 계셨다. 돈가스를 사러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들이 많았고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주문을 했다. 나를 어머님으로 지칭하는 그에게 그 당시 결혼도 하지 않았던 나는 “ 저 어머니 아닌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저씨 이거 주세요’라고 하는 내게 그 남성분은 “ 저 아저씨 아닌데요.”라며 정색을 했다.
‘아저씨’라는 뉘앙스가 받는 충격이 그렇게 센 줄은 솔직히 잘 몰랐고 왠지 미안해지기도 했다. 서로가 원하지 않는 호칭을 우리는 골라서 써야 한다니 참 쉽지 않다.
중년의 여성분들 중에서도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녀 분들이 없을 수도 있고, 혈연관계가 전혀 아닌데 왜 어머니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내시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방송에서 80세 정도의 여성분과 인터뷰를 하고 인물 설명에 ‘할머니’라고 쓰인 것을 보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친근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 분을 나타내는 정체성이 '할머니'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이 주제로 얘기를 나눴는데 이전에 가족끼리 함께 모여살던 씨족사회문화가 내려온 호칭문화일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의 관계 속에서 '가족 같은' 이런 표현들은 이제 때로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는 요새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한국에서 뭐라고 불러야 하냐는 질문에 솔직히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아직도 망설인다.
‘저기요.’ ‘여기요’ 꼭 지칭해야 한다면 차라리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줬다.
‘아줌마’는 절대 쓰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도 쓰지 말라고 해야겠다.)
불어는 정말 편하다. 여성이면 마담 Madame, 남성이면 무슈 Monsieur.
우리에게도 이렇게 통일된 ‘호칭’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마담, 남편의 성
마담으로 사는 얘기 또 하나는 남편 성을 따르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것이다.
프랑스에 와서 은행에 계좌를 만들러 갔는데 우리는 부부라고 얘기를 했더니 자연스럽게 나를 남편 성으로 불렀다. 예를 들어 마담 최.( 마담 뒤에 보통 성을 붙여 부른다) 한국에서는 여성이 결혼해도 성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하니, 바로 고쳐서 불렀다.
이런 일은 행정적인 것을 처리할 때마다 늘 있었는데, 내가 내 성을 바로 써서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나에게 오는 편지에는 한동안 ‘마담. 남편의 성’으로 쓰여있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은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매번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늘 난 먼저 설명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결혼해도 성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 프랑스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한국이 프랑스보다 낫네.’라고 했다.
이것을 남녀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하나의 가족이라면 하나의 ‘성’을 쓰는 문화가 있는 프랑스에서는 또 다를 수도 있다. 또 다른 내 프랑스 친구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했는데 카톡 프로필에 ‘까미유 권’(가명)이라고 쓰고 너무 행복해 보이는 결혼사진을 올려놓은 걸 보고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문화 때문인지 내 프랑스 체류증에는 우리가 부부라는 것을 증명하듯 내 이름 옆에 ‘배우자: 남편 이름’이 쓰여있다. 남편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출국할 때 이런 서류가 없는 한국인 어머니들이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성이 아닌데 어떻게 어머니일 수 있냐며 의심을 했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성을 바꿔야 한다니.. 갑자기 엄청나게 느린 프랑스 행정시스템 속에서 성까지 바꿔야 하는 프랑스 여성들이 안쓰러워졌다. 이혼하면 또 바꿔야 한다는 말이지 않은가… 하지만 여성이 성을 바꾸는 건 의무사항은 아니고 선택사항이라고 하니, 하나의 ‘성’을 가진 가족을 가진다는 의미를 택할 것인지는 그녀들의 몫일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인 나는 온전히 내 이름과 성으로 살고 싶다.
암튼. 프랑스에서 마담으로 불리는 것은 나쁘지 않다. 아니 꽤 괜찮다. 나의 사회적 지위나 나의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한국어에도 이런 공통된 호칭 단어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 요새 서로 부르기 애매할 때 ‘님’을 쓰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은데 이름을 모르더라도 서로를 ‘님’이라고 부르는 세상이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