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오리 Apr 19. 2024

인생은 순간이다/김성근 지음/다산북스

  -외로울 땐 독서



  80대의 나이에도 아직 선수들을 지도하는 우리나라 최장수 야구 감독 김성근 산문집.


  그는 거대한 산 같다. 너무 강해서 비정하게 느껴질 정도이지만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는 말했다. 자기는 정이 많은 사람이어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행동한다는 거였다.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랬다.

 김성근 감독이 젊었을 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기 위해 영주 귀국을 결정했다. 그때는 한일 국교 정상화가 되기 전이어서 그런 결정은 야구나 가족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평생 가족들과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데, 야구를 선택했다.

 그런 그를 어머니는 반대하는 가족들에게, “이 아이는 여기 있을 아이가 아니다. 보내주자.”라고 하며 허락했다. 한국으로 출발하는 날, 그의 어머니는 딱 집 앞까지만 그를 배웅했다. 그런데 그날 날씨가 궂어 비행기가 뜰 수 없어서, 그는 교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방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어서 그가 그곳에 살았다는 흔적 자체가 없었다. 김성근 감독은 서운해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초지일관! 그를 보면 생각나는 말이다. 그는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말 그대로 야구밖에 모르는 사람 같다. 그는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실패와 고통을 겪으며 나온, 아주 단단해 보이는 행복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거인 같다. 어쩌면 그는 제자들에게 야구가 아니라 인생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는 그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보기 드문 ‘어른’이다.


 

거칠지만 그의 신념이 담겨있는 말들, 흔들리는 마음에 말뚝을 박는 말들을 새겨보고 싶어서 옮겨본다.


 지금 당장 즐겁든 슬프든, 자신이 그 속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운 탓, 남 탓만 하며 비관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자기가 지금 베스트라는 확신이 들 만큼 열심히 하면 기회는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운도 내편이 된다. 매일의 흐름 속에서 자기의 베스트를 다해야 한다.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도록, 이번 공을 칠 수 있도록. 야구도 인생도 그렇다. 살아보니 똑같다. (26쪽)


 인간의 잠재 능력이라는 게 어마어마하다는 걸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식이 커질수록 잠재 능력도 조금씩 깨어나 꽃을 피운다. 그런 어마어마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의 한계를 계속 높여왔다. 누가 봐도 무리라고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며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한계는 저 멀리 내 뒤에 있었다. (31쪽)


사실 힘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한구석에서는 이 길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작부터 목적지에 곧바로 도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는 걷기 쉬운 평야가 있는가 하면 산도 있고 바다도 있다.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오르기 어렵고 그만한 고통이 있다. 시간도 걸린다. 힘든 게 당연하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제일 베스트는, 힘이 들어도 힘이 든다고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다. 힘들 때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44쪽)


 의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극복이란 개념이 없다. 극복이란 힘들다는 의식에서 발생하는데,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니 ‘극복’이라고 할 리가 없다. 의식이 있으면 새로운 길이 보이고 한계도 뛰어넘을 수 있다.(45쪽)


 아무리 험준한 산이라도, 에베레스트 산이라도 길은 있다. 걸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결국 길이 있다는 뜻 아닌가. 단지 큰 산은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 수없이 많은 아이디어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자기의 몫이다.(50~51쪽)


 인간의 인생은 비관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매일, 매번 슬픔과 마주해야 하니 그렇다. 그러나 슬픔과 마주칠 때마다 슬퍼하고 투덜대기만 하면 진전되는 게 없다. 또한 슬픔을 만난다고 해서 좌절할 이유도 없다. 그 속에는 반드시 길이 있어서, 슬픔을 헤치고 가면 길이 생기기 때문이다. (76쪽)


 나는 ‘어차피’ 속에서도 ‘혹시’라는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상상하고 그것들을 ‘반드시’로 만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내는 것, 그게 내가 여태껏 해온 일이었다. (81쪽)


 살아보니 인생에는 그런 게 중요하다. 버리는 것 말이다. 선입견을 버리는 것, 상식을 버리는 것, 과거를 버리는 것.(84쪽)

 

 산이란 건 멀리서 보면 낮지만 가까이 갈수록 높다. 꿈도 똑같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숨이 차고, 힘들고, 괴롭다. 여기쯤에서 그만두거나 쉬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멀리서 보던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디뎌가는 속에 미래가 있다. (93쪽)


 세상살이에는 기댈 곳이란 게 애초에 있지도 않으며, 남에게 기대는 것 자체가 바보다. 길이 없다면 찾아야 하고 모든 건 본인이 만들어가야 한다. 핑계 속으로 도망치는 인생은 언젠가 앞길이 막히게 되어 있다.(140쪽)


 인생의 모든 것이 그렇다. ‘와, 이렇게 어려울 수 있나’ 싶은 문제도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나온다. 어려워질수록 생각은 깊어지고 해결 능력이라는 게 육성되어 간다.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둘씩 생겨난다. 안 되는 것은 세상에 없다 그것을 평생 야구로 배워왔다. 끈덕지게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 한계를 넘어가 있었다. (146쪽)


 힌트란 건 세상 아무 데나 가도 있다. 그 힌트들을 어떻게 붙잡고 느껴서 자기 길을 만들어가느냐의 차이다. 힌트를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과 그걸 보고 순간순간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순간을 잡을 수 있는 집중력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 (166쪽)

 

 세상일은 모두 ‘왜?’라는 퀘스천 마크를 갖고 그 속으로 들어가 깊이 관찰해야 답이 나오는 법이다(...)
관심 속에 있지 않으면 시간이 얼마가 지나든 해결되지 않는다. 관심을 갖다 보면 퀘스천 마크가 생기는 지점이 뭐든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을 찾아 느낌표로 바꾸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야구도, 세상일도 다 그렇다. (172~173쪽)


 이제는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라. 몸에 저절로 새겨질 때까지 정신없이 열중해 본 적 있느냐고, 그만큼 절실했느냐고.(180쪽)

 

 결국 인생이란 수없이 마주하는 위기, 실패를 어떻게 극복해 가고 성공으로 바꿔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회피하고 도망가는 사람은 약하다. 도망간다고 해서 문제가 다시 안 생기나? 아니다. 반드시 또 다음 문제가 생긴다. 기회가 인생에 여러 번 오듯 위기도 여러 번 온다. 그때 위기를 직시하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은 절대 그 위기 너머로 나아가지 못한다(... )
무슨 일이 닥치든 포기하지 않고, 순간순간 재치로 대충 모면하려 하지 않고 그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괴로움을 느낀다.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 새로운 길을 찾는 방법이고, 가야 할 길을 가는 법이다. (191~192쪽)

 

 시간만큼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한순간도 쉴 수 없었다. 시간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오늘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실패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 멈춰 좌절하거나 잠시 쉬어가겠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가. 어딘가 벽에 부딪혔다면 벽에 부딪혔다는 사실 자체에 힘들어할 게 아니라, 막힌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게 힘들게 느껴져야 한다.
 무심코 보낸 하루가 나중에 엄청나게 큰 시련이 된다.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오늘 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이긴다. 그것이 야구가 내게 가르쳐준 인생이다. (193~194쪽)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