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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트 Aug 22. 2015

영국이야기_1 / 루튼 공항, 날씨 맑음

이리저리 떠도는 리투아니아 교환학생

비행기 창가자리에 앉아야 하는 이유

교환학생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학기가 끝나면 한 달 정도 여행을 하다 돌아올 요량이었다.

세 번째 유럽이었지만 동유럽은 못 가본 곳이 많으니 이번 기회에 정복해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유럽은 다 가보지도 못했고,

심지어 유럽에 머문 기간은 학기 중이었던 4개월에 그쳤다.



코스타 커피를 보니까 영국인가 싶더라

남들은 취업준비를 시작하는 4학년 첫 학기에 굳이굳이 욕심을 부려 오게 된 유럽이건만,

그래서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다 해보고 가려했는데

현실적인 고민과 또 다른 넘치는 욕심,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비행기표를 앞당겼고

언제 또 가볼지 막연해지는 지금에서야 아쉬운 마음이 서리는가 싶다.



그래도 손꼽아 세어보니 4개월 중 한 달이 넘는 기간을 여행했고

그 대부분이 혼자 하던 여행이었다는게 퍽 좋았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에 빠지지 않는 메뉴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 때의 마음과는 달리,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는게 꽤 어려웠는데


금세 적응해버린 카우나스의 공기가 지나치게 상쾌한 탓과

실한 오렌지 한 바구니가 채 1유로도 되지 않는 착하디 착한 마트 물가탓에,

그리고 어지간한 나라는 대충 다 가봤다는 안이한 마음에

설레고 흥분돼야 할 여행 계획 짜는 일이 귀찮게만 느껴져버려서



리투아니아에 있다보니 이만한 것 사는데도 비싸서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 소리지만, 이미 마음가짐이 그러하니 여행에는 큼지막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가보지 않은 나라를 가보자는 결심과는 달리, 세 번째 유럽의 첫 여행지는 영국이 되었다.

영국이야기라고 해야 할 지, 리뚜이야기라고 해야 할 지 한참을 고민했는데 영국이야기가 맞을 것 같더라.

교환학생기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달려 나올 테니.


리투아니아에는 찾기 힘든 스타벅스가 반가워 커피 또 한잔

어찌되었든 동기부여의 시작은 가방이었다.

사이즈도 낙낙하니 등하교 때 노트북 넣어 다니기 좋겠다고 샀던 가방인데, 문제는 수업이 없다는 것.

넣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전공수업을 우겨 넣었는데 한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널럴한 수업 시수 탓에 정기적으로 학교를 가는 일 자체가 적었다. 게다가 노트북까지 이고 다니며 필기할 거리가 많지도 않아 큼지막한 백팩은 등하교 내내 빈 공간으로 일그러져 인상을 팍팍 쓰고 다녔다. 


그렇다고 가방에 딱히 넣고 다닐 만한 것도 없으니 거추장스럽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자유로로 나가 가볍게 들고 다닐만한 크로스백이나 숄더백이 없나 둘러보았다.

별 같지도 않은 이유긴 해도, 새로운 가방을 산다는 마음에 들떠 여기저기 들어가보았는데

얻은 거라곤 찾아보기 힘든 한국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초리뿐이었고 살 만한 건 단 한 개도 없더라.



한국이었으면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이었을텐데, 

실용적인 큼지막한 가방만 판매하는 이 나라덕에

마침 유럽으로 여행 오는 친구 편으로 가방을 받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참 유난이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

명분은 가방이나, 실은 다시 가보고 싶었을지도.



빅토리아역이 '코치 스테이션' 이 있고 '트레인 스테이션' 이 있는데 처음에 두 개가 헷갈려서 엄청 고생했다. 두 역 사이가 꽤 거리가 있으니 잘 알아보고 가야겠더라.

그렇게 영국에 가야 하는 나름의 명분이 생기자 하고 싶은 것들이 점차 많아졌다.

간 김에 빅밴, 런던 브리지, 하이드파크, 해리포터 스튜디오 같은 곳들에 가보고 싶어 졌고

맛 없다고 소문난 피쉬 앤 칩스라던가 잉글리시 풀 브랙퍼스트 같은 것들이 먹고 싶어 졌다.



그리고 하루 정도는 브라이튼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 졌다.



히드로 공항이 아닌 루튼 공항에 내려 런던으로 들어가는 길.

영국의 국내선이나 유럽 국가 간의 비행기가 주로 오가는 루튼 공항은 되려 히드로 공항보다 크고 좋은 느낌이었다. 런던으로 들어가기에는 히드로 공항보다 거리가 꽤 있었지만, 익히 아는 내셔널 익스프레스라던가 이지버스 같은 것들은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런던을 향하고 있었기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날씨가 지멋대로인걸로 유명한 영국이고 런던인데, 머무는 내내 날씨가 화창했다.

혹시나 비행기가 연착될까 하는 걱정에 런던행 티켓을 꽤 시간 여유를 둔 것으로 사두었는데, 티켓 시간 변경을 하느니 새로운 티켓을 사는 게 나을 거라는 직원의 충고에 공항에 머무르며 허기진 배를 달래기로 했다.



럭키가이의 운명이랄까

6년 전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내셔널 익스프레스 버스 티켓을 꽤 시간 여유가 있는 것으로 구매해뒀었고,

어눌한 영어로 친절한 직원에게 부탁하여 시간을 앞당기는 것에 성공했었다.

아니, 그 전에 짐을 찾아 나오며 면세점에서 구매한 담배 세 보루가 혹시나 걸리진 않을까 조마조마했었고

무사히 공항 게이트를 통과하기를 간절히 바랐으며,

빠져나온 공항이 생각보다 어둑어둑한 탓에 살짝 겁에 질렸다.



버스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고, 가는 길 내내 눈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홀로 이국에 던져졌던 게 처음이라 모든 게 조심스럽고 긴장되었다.

로밍이 되어있던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어

손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었다.



신기하게도 그때의 순간순간이 지금까지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난다.



간절함과 긴장감에 잔뜩 휩싸여 어쩔 줄을 몰라하던 자정 즈음의 시간

제 시간에 도착한 버스에, 멈추지 않던 눈을 피하려 공중전화 박스로 숨어 들어가

목에 건 카메라를 꼭 쥐고 입김을 불어보던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버스시간이 되었고, 런던으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버스 창 너머로 지나가는 빅밴이나 런던아이 같은 것들을 보고 있자 하니 정말 영국에 왔구나 싶었다.



런던의 계획은 치열하게 만들어내, 이미 곳곳을 다 둘러보고 온 듯 하지만

Brighten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기억하는 그 곳을 위한 계획은 차표 말곤 아무것도 없다.

아무래도 그 편이 좋을 듯했다.



그 곳에선 보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사실 어디가 어땠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모든 건 그저 그런 배경에 불과했고, 기억하고자 애썼던 것들은 성당이나 가게 따위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굳이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그곳엔 조금이나마 그때가 묻어있을까봐.

절대 잊지않을거라 다짐했던 스스로도

시간에 못 이겨 잊어버린,

그 시간이 남아있을까 해서.



만약 그렇다면,

아직 지워지지 않은 흔적속에서

잠시나마 가만히 서있고 싶었던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참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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