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
가방 하나 받아보자고 비행기표를 끊긴 했는데 막상 가자니 어딜 가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래도 나름 세번째 가는건데, 겉만 슥 훑어보고 온다거나 누구나 다 가는 그런곳만 가는건 성에 차지 않았다.
SNS를 이럴 때 안쓰면 언제 쓰겠나 싶어 도움 요청.
본인이 가는 것이 아님에도 이리저리 자세히 설명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잠깐이나마 자신들이 갔다온 그때를 회상하며 써줬으려나
황량하면서도 평화로운 카우나스에 있다와보니
런던은 마치 서울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런던이라고 하면 고풍스러운 건물들 틈에 있는 빨간 우체통, 빨간 버스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이게 다 의도적으로 빨간색을 돋보이게 하고자 의도된 것이라 한다
유럽에 살면서 다른 유럽국가를 여행하는 가장 큰 장점으로는
캐리어 하나 없이 백팩만 하나 메고 출발해도 된다는 것.
여행이야 일정을 길게 잡아야 열흘 남짓이니,
신중히 골라 건네봤자 그 사려깊음을 알아주지 않는
선물 따위만 별로 사지 않는다면 질질 끌어야 하는 캐리어는 크게 필요가 없다.
덕분에 항상 두 손이 자유롭고, 그로 인해 느끼는 해방감은 생각보다 꽤 크다.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길을 가다가도 눈에 들어온 것은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탓에
한 손이라도 묶여있으면 답답하더라.
그래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숄더백보다는 안정적인 백팩이 좀 더 편하고,
목이나 어깨에 거는 것은 DSLR 하나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스백을 고집하는 건,
덜 관광객스럽고 싶어서
두 번째로 유럽에 왔을 때는 어렸던 만큼 겁도 많아 하얀색 복대를 항상 차고 다녔었다.
복대에는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될 여권이라던가 유레일패스, 그리고 여행자금 절반 등이 두둑히 들어있었고 덕분인지 너무나 추웠던 유럽의 겨울에서도 아랫배 만큼은 견딜만치 따뜻했었다.
지금 와서야 생각해보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살 때도
Just a moment를 읊조리고서는 바지춤을 뒤적거렸던 모습이
민망하기도 하고, 어렸을 적이라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게 하나 있다면,
사진에 이쁘게 나오고 싶은 마음에 부렸던 옷 욕심.
다른 친구들은 유럽의 추운 겨울 날씨를 걱정하며
오리털 가득히 부풀어오른 패딩이라던가 점퍼같은 것들을 챙겨 갔지만,
내 외투라고는 검은색 코트가 전부였고 도저히 못견딜것 같으면
안의 옷을 껴입자는 생각으로 검은색 두터운 내복을 챙겨갔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제외하고는 지독히도 추웠던 날씨에,
가져갔던 내복은 돌아와보니 엉덩이와 허벅지에 보풀이 가득할만큼 제 기능을 다하고 명을 다했다.
그래도 그 때의 사진을 들춰보면 다른 이들보다는
'저 관광객입니다'라고 말하는 정도가 흐리니 잘한 선택이었구나 싶다.
실은, 찍혀진 사진이 어떻다기보다
덜 여행객스러운 모습과 마음으로 잠시나마 머무는 곳곳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싶었던 것 같다.
인종이야 다르지만 다른 이들의 일상에
관광객이라는 명목으로 침입해 일그러트리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의 일상을 소박하게 담아내고 싶은 것 뿐이라서.
설령 그때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더라도 지금이 그렇다.
런던 아이와 빅 벤의 야경이라거나 루브르의 피라미드 같은 것들은
이미 한 차례 셔터를 거쳐간지 오래고,
그것들이 다른 이들의 것을 답습해보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오롯이 내 것일 수 있는 기억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니까.
한 손으로 들기에는 살짝 버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관광객이라는 이유와
사진을 찍으려 한다는 이유로
놓쳐야만 하는 순간들이 생기는데
렌즈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인지하는 순간
행동에는 어색함이 끼어들고,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리는 일이 다반사이기에.
그래서 한 번은 눈에 장착하는 카메라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꽤 오래 해본 적도 있다.
물론 허락도 받지 않고 다른 이들의 시간을 잡아대는 것이 당당하기만 한 일은 아니지만서도,
기왕하는 도둑질이라면 왔다갔다는 아무런 흔적 없이 해내고 싶은 욕심 같은 것.
카메라야 접어서 다닐 수도 없으니 체념하고
겉모습이라도 덜 관광객스럽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
패딩대신 코트를 입고 형형색색의 운동화 대신에 부츠를 신어 버릇한다.
그래봤자 얼굴이 전형적인 동양인임을 숨길 수 없지만,
시절이 좋은 덕에 모든 인종이 얽혀 살아가니 관광객으로 인식하지 말아달라 슬며시 바라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