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다는 것
잔잔한 음악, 모바일이 아닌 모니터로 보신다면 이 곳에 직접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거라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헛웃음이 나올 만큼 경이로웠던 이스트본의 바다를 뒤로 하고 세븐 시스터즈로 향하려는 찰나,
맑았던 이스트본의 하늘에 먹구름이 피어 올랐다.
안 그래도 나가려던 참이긴 했지만, 장애물 하나 없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먹구름의 속도는 꽤 빨라서
물방울을 한두개씩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이스트본에서 버스로 1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하얀색의 절벽.
런던에서 이스트본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부랴부랴 버스를 알아봤었다.
버스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도 있고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는 것 같아 그저 안심했는데,
막상 버스 정류장에서 시도해보니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카드는 가려 받는 듯했고 결제가 된다 하더라도, 하루 전에 해놓지 않으면 사용할 수가 없다는
안내 메시지가 더 이상의 시도를 가로막았다.
먹구름은 속도를 더해 정류장까지 스멀스멀 덮쳐왔고, 아무 티켓이나 끊고 타는 수밖에 없었다.
큼지막한 2층짜리 버스. 서울로 치면 빨간색의 광역버스 정도 되려나.
동양인을 바라보는 경계의 눈초리를 피해 2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올라온 김에 이왕이면 풍경도 보고 싶은 맘이 들어 맨 앞자리로 향했지만 왼쪽에는 다정한 오누이가,
오른쪽에는 수염이 희끗하게 난 할아버지 한 분이 저만치 먼 곳을 응시하며 앉아 계셨다.
아주 잠깐 할아버지의 옆 자리에 앉을까 고민하다, 그 뒷자리에 짐을 내려놓았다.
이어폰을 꺼내 들었고, 먹구름으로부터 멀어지며 맑디 맑은 하늘을 향해 다가가는 2층 버스의 전망을
천천히 눈에 담기 시작했다.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어반자카파의 ‘재회’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버스의 덜컹거리는 소음.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강한 햇살을 살짝 가려주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그 시선이, 꽤 좋았다.
그래서 혹시나 이 곳에 다시 온다면,
지금 듣고 있는 노래와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으로 이 시간을 회상하겠구나 싶었다.
몇 정거장쯤 지났을까, 익숙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영국에서 교환학생 내지는 어학연수를 하는 것 같아 보이는 한국인 대학생들 네다섯.
버스에 올라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이 끊이질 않더라.
혼자라 쓸쓸했다기보다는, 다른 이로써 그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물론 혼자 하는 여행만큼 즐거운 것이 없지만,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즐거움이 더해가는 일.
같은 곳을,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걸어도
서로가 기억하는 순간과 느낌은 꽤 많이 다르더라.
“여기 우리 같이 갔던 곳이네, 그때 우리 그 이야기 했었잖아”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
“아 그때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한 마디 하려다가 참았다니까”
따위의 이야기들로,
시간이 지나 빈 공간이 조금씩 생겨가던 추억을 꺼내놓고,
자신의 기억들을 내보이며 다시금 벅찼던 '그때'를 가득이 채워가는 것.
홀로는 할 수 없는 거니까.
리투아니아에 남아 있는 동생들이 문득 보고 싶어질 때 즈음, 다음 정류장이 세븐 시스터즈라는 방송이 울렸고
벗어놓았던 외투와 가방을 황급히 챙겨 1층으로 내려왔다.
광활한 대자연을 만나리라는 기대에 차서 내린 것도 잠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정류장임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와 덩그러니 서 있어야 했다. 분명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했는데.
저만치서 풀을 뜯어 먹는 양들 말고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어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곳을 다 보고 나면 브라이튼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는 있을지.
바람이 거세게 불기는 했지만 날씨가 그렇게 좋고 밝았는데, 숲 한복판에 버려진 미아가 된 듯했다.
허가받은 차량만 들어올 수 있다는 안내문이 아예 이 곳에 들어오지 말라는 위협적인 경고로 느껴져
입구에서 뒷걸음질을 쳤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십 여분이 지나서야 울타리를 열고 들어설 용기가 났다.
끝도 없이 펼쳐진 길을 한 시간 남짓 하염없이 걸으니, 이제는 그 끝없음을 바다가 이어 받았다.
쉬지 않고 불어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바람은 차갑기 보다는 시원했고,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걷기 힘들었던 것 말고는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자갈들을 앉기 좋게 다듬고 그 위에서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배경을 실제보다 더 잘 묘사한 문학작품의 한 끄트머리 어딘가에 들어와 있는듯했다.
문학작품에서 펼쳐지는 비극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 훌륭한 몰입도는,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두고는 제 기능을 하질 못하는 경향이 있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비련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그 과정은
신기하게도 그 영화가 만들어진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더 강해진다.
활자와 그림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에 흠뻑 젖어 들어선,
마치 그 모든 일들이 나의 일인 것처럼 같이 울고 웃지만,
역설적이게도 직접 발 붙이고 있는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다른 이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기 쉽지 않더라.
만들어진 다른 세계에서는 나를 둘 곳이 없지만
숨 쉬고 있는 현실의 공간에는 그 자아가 굳건히, 그리고 끊임없이 심장박동질을 해대기 때문인가 싶었다.
그래서 겪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기승전결을 이뤄가며 각색된, 사실은 실제에 기반을 둔 그 비극들이
이 세상의 주인공들에게 사실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원래 다 그런 걸 테다.
내가 들고 있지 않은 것의 무게는 어림 짐작할 뿐.
타지에 나와있으니 더 그랬었다. 모든 게 남의 일이었고, None of my business 라는 말이 새삼 뜨끔했다.
저물대로 저물어 발갛게 물든 노을을 보며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언젠가 나의 일이 될지도 몰라서가 아니라,
주변을 살피고 미흡하나마 그 감정의 추세선에 내 것을 얹는 일.
누누이 들어왔던 인간 이라는 단어의 조성과정.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의미를 실천하는 삶의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