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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May 28. 2019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영화 얘기는 별로 없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천재 감독 토비의 광고 촬영 현장으로부터 시작한다. 보드카 광고 촬영을 위해 스페인을 찾은 토비는 우연히 그곳에서 자신의 졸업 작품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DVD를 발견한다. 과거 토비는 그곳에서 매우 열정적으로 영화를 찍던 청년이었다. 그는 돈키호테를 꼭 닮은 구둣방 할아버지를 찾아내고, 영화에 쓸 촬영 장소를 발로 뛰며 답사하고, 배우가 아닌 현지 주민들을 섭외하여 영화를 찍는 등 전에 없던 시도와 넘치는 패기로 열정 가득한 영화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일에 대한 열정과 재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 토비는 꿈 많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당시 촬영 장소를 찾아간다.


다시 찾은 그곳은 모든 것이 여전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토비는 여전히 자신을 돈키호테라고 믿는 영감과 함께 '돈키호테'의 여정을 다시금 시작하게 된다. 그간 돈키호테는 '꿈'과 '열정'의 상징으로 여겨져왔지만, 이 영화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가진 기존 메시지를 답습하거나 색다르게 변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야기'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돈키호테를 다룬다. 영화 속 이야기는 실제 현실과 가상을 어지럽고 요란하게 오간다. 그러면서도 은근한 유희적 재미와 긴장 넘치는 이야기 구조를 놓치지 않는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전달하는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화는 영화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마련이다. 덕분에 영화 속 세부적인 디테일보다는, 영화 가장 중심에 깔린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줄곧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대중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영화는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내용의 형식과 유사성을 반복해 왔다. 어제의 영화와 오늘의 영화는 물론 다르지만, 또 완연하게 다르지는 않다. 격변하는 시대상과 각각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르더라도, 반복된 패턴 속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전달하는 소통 방식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가진 '이야기'의 본질과 그 존재 이유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꿈꾸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익힌다. 인간과 이야기의 관계는 수평적이고 또 공존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든,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이든,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를 가졌다. 인류 역사에서 이야기는, 결코 사라질  없는 인류의 유산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인류가 이야기를 통해 배우고,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써왔다면, 자기가 만난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추억하고 기억하는  역시 당연할 테다. 테리 길리엄의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와 영화 속 감독 토비의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역시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사례다. 이 영화가 2018년 칸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꼽히게 된 데는 그만한 공감과 감동이 있기 때문 아닐까.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그리고 앞으로 끝없이 만들어갈  다른 이야기. 그렇게 무수히 덧칠하고 거듭 새겨지며  또렷한 빛을 발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여전하고,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를 거듭 보고, 만들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비록 영화가 ‘먹여주지는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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