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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Jun 26. 2019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살고 있어요.

브런치X넷플릭스 :: 블랙미러 <공주와 돼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 까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언어 학자다. 그는 전자 및 통신 기술의 발전을 통해 세계는  하나의 마을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개념처럼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작아지고 있다. 한 나라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채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한 정보가 지금은 지구 반대편의 사건이 해당 공간에 있는 사람이든 먼 곳에 있는 사람이든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물리적 공간은 멀지언정 정보가 가진 시간과 공간은 공존한다.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해질 때, 정보는 포화 상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러 자극적인 습을 띤다. 끊이지 않는 자극적인 정보들. 이를 접하는 현대인들은 감정 과잉의 시대를 앓아야만 한다. 어쩌면 평생을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어떠한 사건 때문에 잠자리를 시달리거나 정신을 팔린다. 일본의 대지진, 인도의 대학살, 시리아의 난민,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까지. 머나먼 곳의 슬픔이 손안의 작은 화면을 통해 전해져 오고, 알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끊이지 않는 애도를 나눈다. 평생 만날 일조차 없었을 이의 비극이 여기 이곳의 나의 감정을 빠르고 강하게 흔든다. 사람들은 같은 감정을 앓고,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


블랙미러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 <공주와 돼지>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지구촌'에 관한 개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어느 날 밤 영국 공주는 정체 모를 이에게 납치당한다. 이어 공주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총리가 돼지와 수간 할 것을 협박하는 영상이 전달된다. 총리에게 전달됐던 '총리의 비극'은 영국 전체로, 유럽 전체로, 그리고 세계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총리가 수간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총체적 난국의 고민은, 죽을 때까지 영국의 총리를 알지 못했을 모르는 지구 반대편의 학생들에게까지 전달된다. 미디어는 빠르게 자극을 만들고, 개인의 생각을 옭아매고, 대중의 시선을 옮긴다. 정보가 계속해서 업데이트될 때마다, 사람들은 자극 속에서 허우적대기 바쁘다.


총리와 돼지가 수간을 하기도 전에 공주는 풀려나지만, 본질을 잃어버린 대중에게 이 사실은 전달되지 않는다. 해당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화목해 보이는 총리 부부의 모습을 비춘다. 정보는 교묘하게 자취를 감추고, 위태로운 검열과 삭제의 과정을 견딘다.


맥루한은 '지구촌'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 마을이 어떤 마을인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재밌는 이야기와 맛있는 먹거리, 즐거운 오락 거리가 가득한 마을일까, 행복과 웃음이 정말 끊이지 않는 마을일까.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만이 가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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