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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Jun 26. 2019

가능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브런치X넷플릭스 :: 블랙 미러 <스미더린>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기업의 마케팅 컨퍼런스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무대 위의 연사는 ‘좋아요’와 같은 간편하고 단순한 기능을 통해 발신-수신의 과정이 '덜 번거로워지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번거롭다]
1. 일의 갈피가 어수선하고 복잡한 데가 있다. 번쇄하다.

2. 조용하지 못하고 좀 수선스러운 데가 있다.

3. 귀찮고 짜증스럽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어느 누구도 연사의 말에 개의치 않은 듯했다. 연사는 어떤 의미로 번거롭다는 표현을 썼는가 곰곰 생각했다. 아무래도 기존의 소통 방식은 복잡하고, 수선스럽고, 그래서 귀찮고 짜증스럽다고, 그래서 이는 더욱더 단순해져야 한다는 뉘앙스였다. 현재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에서 발신과 수신 과정을 지금보다 더 단순화시키겠다고? 지금 그나마 있는 소통 방식도 번거롭다는 의미인가?




실제로 얼마 안 되어 해당 기업은 게시글의 답장 기능에 말 대신 이모션을 먼저 제안하는 기능을 구현했다. 내가 생각했던 소통과 세상이 원하는 소통이 다른 것 같다는 기분에 괜히 암울해졌고 끝없이 외로워졌다. 공공연하게 소통의 가치를 번거로움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시대에서, 과연 우리는 진짜 소통할 수 있을까. 앞으로 더 얼마나 소통할 수 있을까.




미디어 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맥루한은 미디어를 곧 "인간 몸의 확장"으로 정의한다. 과거 하나의 정보를 얻기 위해 먼 길을 떠나고,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거쳤다면, 이제는 손가락 하나 만으로도 정보를 얻고, 또 쉽게 글을 기록한다. 인간 몸의 능력이 더욱 강해지고 커졌다는 것이다. 애써 손짓 발짓하지 않아도, 아주 작은 몸짓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정보를 접하고 다룰 수 있다.


또한 미디어는 곧 몸 그 자체이기도 하다. <스미더린>의 인턴 제이든이 자신의 직장 번호를 구태여 외우지 않는다. 아무도 누군가의 번호, 이메일, 크고 작은 정보들을 적어두거나 외워두지 않는다. 굳이 기억해두지 않아도 손 안의 휴대폰이 이를 모두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에서 필요한 정보를 꺼내 사용하는 것처럼, 미디어와 기기는 몸의 연장이 되어 인간 주변에 존재한다.




<스미더린>의 CEO 빌리 바우어를 묘사하는 장면은 이런 몸의 확장을 더욱 강조하여 표현한다. 스미더린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빌리 바우어는 첫 등장부터 마치 신비로운 장소에서 수행을 하는 성인 혹은 신을 연상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손가락 한 방으로 개인의 모든 정보를 알아낸다. 경찰보다, 연방수사국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 손가락 하나만으로.




가오나시는 얼굴 없는 요괴입니다.
얼굴 없는 존재가
욕망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흉내 내기입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욕망은
없다고 할 수 있죠.
다들 사금을 좋아하니까
자신도 사금으로 타인을 지배하려 들죠.

몸의 덩치는 점점 커지잖아요?
모방 욕망이란 게 그렇죠.
불어날 수밖에 없어요.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시네샹떼 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등장하는 가오나시. 얼굴이 없다는 뜻의 가오나시는 남들이 좋아하는 금으로 치히로를 유혹한다. 남들이 좋아하니까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한다는 욕망 없는 욕망이 가오나시의 공식이다.



그런 가오나시의 모습은 현대인들의 삶을 연상시킨다. 비슷한 꿈, 비슷한 섭취, 비슷한 여가, 비슷한 생각, 비슷한 생활. 근거 없는 욕망으로 얼룩진 이들의 삶에는 소통이 없고, 얼굴이 없고 개성이 없다. 자기의 진짜 모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손 안의 삶을 구축하기에만 바쁘다.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기 위해, 보상과 위로, 개인의 주체를 증명하는 하트의 개수를 쌓아가기 위해.


몸의 덩치가 커짐에 따라 욕망 역시 확장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욕망이 생리적인 욕구에 국한되어 있다면, 지금의 욕망은 랜선을 타고, 해시태그를 건너, 시공간을 초월하여 계속해서 부풀어 오른다. 자극은 중독을 낳고, 중독은 영원한 불만족을 낳는다. 커져버린 인간의 몸만큼, 만나고 접촉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많아지지만, 거기에는 영원한 만족을 주는 것이 없다. 아무리 맛있고 거대하더래도, 언젠가는 분명 녹아 없어져 버릴 아이스크림처럼.


조금씩이라도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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