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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n 03. 2024

길을 찾기 위한, 환기


몇 달쯤 전의 일이다. 알려진 만큼이나 내부에서는 높은 노동 강도로 악명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두 달에 한 번씩 내 이름이 걸린 방송이 나가는데, 그러다 보면 내 관심 영역이 아니어도 여러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제작에 돌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내 작품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볼 텐데 대충 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때는 일이 두 배로 힘든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는 그 회차에서는 모처럼 내가 오래 관심을 둔, 학교와 교육에 관한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스텝들도 다 좋았고 섭외도 어렵지 않았으며 아이템 확정도 빠르게 되었다. 순풍을 타고 출발한 범선 같은 기세였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뭔가 에너지가 넘쳐서 제작기간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그때에도 제작 기간 중에는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퇴근은 예외 없이 새벽 두세 시였다. 그것이 문제인지 열정이 고갈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를 버티는 느낌으로 일정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윤간우 선생님


당시는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박모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몇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내가 방송을 만들게 되기까지 한국 사회는 학부모와 학생들에 의한 교권 침해 문제로 떠들썩했다. 자살을 하거나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의 어두운 이야기가 도드라지게 이어지던 시기였다.


내가 만난 그 의사는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과장 윤간우 선생님이었다. 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교사 6천여 명을 조사했다. 윤 선생님이 조사 후 만든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우울증이 있는 교사들의 비율은 일반 성인에 비해 3~4배나 높았고,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도 압도적으로 높았다.


보고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당연하지만 정말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 던졌다.


"돌아가신 박 선생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박 선생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유일한 꿈이었고, 서울교대 진학 후부터 남겨진 기록들을 보면 자신의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부임 2년 차에 자신의 꿈도 삶도 스스로 접게 되었습니다. 오래 간절히 원했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질문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잠시 침묵했다. 아마도 학부모의 갑질을 비롯해 이유로 들 수 있는 수많은 요소들을 마음속으로 저울질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선생님은 하나의 단어를 말했다.


환기


박 선생님을 비롯해서 힘들어하는 많은 선생님들이 ‘환기’를 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말이었다. 환기라고 하면 흔히 탁한 공기를 맑은 공기로 바꾸는 것을 생각한다. 정신적인 의미에서 환기도 마찬가지다. 일하며 쌓인 마음의 독을 해소하는 시간, 일과 독립된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려져 있기로 선생님들은 방학도 있고 오후 4시 정도면 퇴근하기에 업무 시간이 길지 않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적게 낳은 아이가 너무 소중해진 학부모들과,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가 선생님들의 업무시간을 무한정 늘려버렸다. 한 명의 선생님이 책임지는 수십 명의 아이들과 그들의 학부모들로부터 상시 연결된 통로를 통해 의견과 민원이 들어온다. 개중에는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나 이기적인 학부모들이 있기 마련인데, 우연찮게 그들이 여럿 같은 반으로 오면 선생님들은 거의 예외 없이 탈진하게 된다. 부당한 민원이나 과도한 간섭이라 해도 선생님들이 막을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간의 말썽이 있었던 날, 고 박OO 선생님이 인스타그램에 남긴 메시지


극한의 스트레스


서이초 박 선생님 역시 그해 첫 학기가 시작되고 불과 세 달여 시간 동안 굵직한 말썽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밀어 책상에 부딪히거나 가위로 살을 자르는 사고도 있었고, 다른 아이는 옆 친구 얼굴을 연필로 그어 상처가 나는 일도 있었다. 


사람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던 시절에는 이런 말썽이 적당한 훈계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가해/피해 양쪽이 사과의 방법이나 수위를 두고 다투다가, 쉽게 학폭위라는 공식적인 문제해결 기구로 넘어간다. 이름은 멋지지만 학폭위의 설계 자체가 허술하고 별 논의도 없이 만들어졌기에 부작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폭위에 가면 십중팔구 파국인데, 한편에서는 자식한테 나쁜 기록이 남을까 우려하는 부모들이 들고일어나고, 다른 쪽에서는 변호사들이 소송하자고 달려드는데 내가 볼 때 정말 이런 난장판이 없다.


고 박OO 선생님 역시 비슷한 류의 여러 연락들로 고통받던 중이었다. 학부모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나 연락의 건수가 그 학기에 이미 1천 건을 넘었다. 나는 취재 중 고인이 남긴 수많은 기록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의 흔적을 보았다.


게다가 박 선생님은 ‘나이스’ 관리 담당자였다. 아이들의 성적과 출결 등을 입력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 6세대가 그쯤 새로 도입되었는데, 역시나 온갖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교사들은 박 선생님에게 급히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담임으로 맡은 2년 차 교사가 왜 그것까지 해야 했을까? 누구에게나 기피업무였다. 정신적인 휴식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나의 '환기'


이 말을 듣고 또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진 뒤에 인터뷰를 마쳤다. 녹색병원 의사 선생님답게 직업 노동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충에 대한 깊은 이해가 느껴지는 알찬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환기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맴돌었다.


사실 나는 그 과로로 유명한 프로그램을 3년째 만들면서 점점 지쳐 가는 중이었다. 그 지친다는 감각은 나에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내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내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난 이 일을 하면 당연히 내가 즐겁고 에너지가 넘칠 줄 알았다. 에너지가 넘쳐서 잠을 자지 않아도, 퇴근을 못 해도 보람과 의미로 버티며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낼 줄 알았다. 영화 속 사명감 넘치는 저널리스트들처럼 밤이 새도록 자료를 검토하고, 취재 중 윽박지르는 사람들을 만나도 당당하고 흔들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 멋있는 척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기빨리고 있었다. 아주 중요한 취재를 하러 가는 순간인데도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적도 있었다. 매 회차마다 이명, 대상포진, 편두통, 안면경련, 원형탈모 등 스트레스성 질병들이 번갈아 몰려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혹시 내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또한 진지하게 해보게 되었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그저 방송국의 화려함에 취해 이 일을 꿈꾸며 허상을 좇아 온 것에 불과하다면?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짓는 이 일의 속성과 긴 과정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다 정상에 오른 나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라면? 


진짜라고 믿어왔던 하나의 세계관이 직접 만져보는 순간 '바삭'하고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 annie spratt


안개일까?


윤 선생님은 환기의 기준을 주 40시간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주 40시간 노동을 표준으로 정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매일매일 일하다 한두 주를 몰아쉬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고, 인간에게는 매일 적당한 노동과 휴식이 주기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짧은 제작기간의 특성상 그런 주기적 환기가 절대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또 하나의 가능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지친 것이 이 일을 싫어하거나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환기를 할 수 없어서였다면? 그래서 에너지가 고갈되어 내가 좋아하는 것조차 좋아할 수 없게 된 거라면...? 제 길을 걷고 있지만 잠시 안개가 낀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정하게 되었다. 이제 도착했다고 생각했던 지점, 그래서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충분히 남길 때까지 계속하고자 했던 그 프로그램을 잠시 그만 두기로 말이다. 알고 싶었다. 안개가 걷히고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게 된 후에, 내 색깔이 어떤 것인지를 좀 더 정확하게 살펴보고 싶었다.


막상 팀을 떠나겠다고 결정한 후의 감정은....


이후 나는 몇 달 더 팀에 머물다가 떠났다. 사람들이 의외라고, 왜 갑자기 그만두냐고 할 정도로 갑자기. 이제는 장기 다큐멘터리 기획팀으로 옮겨 저녁이 있는 삶을 아주 오랜만에 (비록 한두 달 정도 지났지만) 살고 있다.


약간은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일을 시작한 이래 거의 이런 주기적인 삶을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발견되는 새로운 나의 모습들이 있다. 무엇보다 예전보다 많은 좋은 습관을 삶에 들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가장 놀라운 것은, 내가 의지박약이라 못한다고 믿었던 운동이나 독서 같은 것들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휴식이 매일 주어지는 삶을 사는 것만으로 의지력이 주기적으로 풀충전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그간의 작업들을 돌아보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환기'라는 단어는 박 선생님의 죽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마음에 깊이 남은 후에, 내 삶을 조금 바꿔놓았다. 그 후 자기 일에 대해 고민하거나 힘들어하는 동료들을 만나면 항상 환기라는 말을 알려준다. 안개가 끼어있을 수도 있다고, 일 바깥에서 공기를 바꾸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Q 파일 : 이 글을 시작으로,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1379회를 돌아보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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