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유정 Sep 22. 2022

불행한 마음을 데리고 사는 몸에는 이렇게 공황이 온다

불행은 하필 연달아 온다. 마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속을 지나려다 걷는 내내 나뭇가지에 쓸려 온몸에 생채기가 나는 것 같다. '모든 것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믿고 싶다. 내게 할당된 불행 총량을 다 채우고 나면 더 이상 불행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럼에도 대형 불행 앞에선 그나마도 자신이 없어진다. 대체 내가 채워야 하는 불행 총량은 얼마나 큰 걸까,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과연 죽기 전에 끝이 날까 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지푸라기 같은 미신도 무용지물이다.


꿈을 잃고 절망했던 날, 원치 않는 이별을 했던 날,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후회했던 날, 누군가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마음이 정통으로 맞은 날,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 찾아오는 우울함.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연달아 덮쳐오면 깊은 바다에 잠긴 기분이 든다. 숨은 점점 가빠오는데 아무리 발을 굴러도 위로 올라갈 수 없고, 발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듯하다.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지 않으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다. 머리에 피가 쏠리고 구역질이 난다. 불행한 마음을 데리고 사는 몸에는 이렇게 공황이 온다.


공황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혼자 버텨내야 하는 게 너무 무섭다. 겉으론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속으론 어린애처럼 울어버리고 싶었는데 눈물을 삼켰다.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리고 가까운 한강에 갔다. 얼마나 깊을지 가늠할 수 없는 밤의 한강을 내려다본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한강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다. 이렇게 무서운데 수많은 불행한 이들이 저 높은 다리 위에서 저 깊은 강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얼마나 깊을까, 저 물속엔 뭐가 있을까,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너무 두려운데, 이런 두려움을 다 이기고도 그들로 하여금 몸을 던지게 만든 삶의 무게를 감히 헤아려본다. 남의 불행이 나의 평안에 보탬이 되는 게 부끄럽지만 나는 아주 조금 괜찮아진다. 아직 강이 무섭잖아. 뛰어내릴 용기가 조금도 나지 않잖아. 아직 살고 싶잖아, 하면서 숨을 쉰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어떨까. 나는 좋은 딸도, 좋은 친구도 아니었기에 부지런히 하루짜리 효도를 하고 하루짜리 사랑을 건네야 한다. 할 게 많아서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웃기다. 조건 없이 내어주신 부모님의 그늘과,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의 애정 어린 손길, 나를 응원하던 목소리와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이 귀한 것들을 상자에 담아두고 삶이 버거울 때마다 들여다볼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불행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텐데.


연쇄적으로 밀려오는 이번 불행도 결국 지나가겠지. 제발. 나 아직 행복 총량 채우려면 멀었단 말이에요. 머지않아 행복이 찾아올 거야. 초대형 행복이.

작가의 이전글 연애 인사이트 메일링 서비스 [남의 연애] OPE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