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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Jan 11. 2023

나의 이십 대를 바꿔놓은 스포츠, 탁구 01. 첫 레슨

"코치님, 저 지금부터 학교 안 가고 탁구만 치면 선수할 수 있어요?"

  중학생 때였으니 약 15년 전이다. 나는 스트레스성 복통을 달고 살아 밥 한 공기를 비우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였다. 그렇다고 땀 흘려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아서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약골 그 자체였다. 엄마는 밥도 안 먹고 힘없이 이불속에 파묻힌 나를 보고 한숨을 푸욱 쉬고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다. 덜컥 탁구장을 등록해 버린 거다. 축구나 농구라면 몰라도 탁구라는 스포츠는 정말 생소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오케이 했다. 친구들은 영어, 수학 학원 다니기 바쁜데 나만 특별한 수업을 받는 기분이 들었달까. 특히 "선생님!" 대신 "코치님!"하고 부르는 게 괜히 멋졌다.


그렇게 주 2회, 한 번에 20분.
생애 첫 탁구 레슨이 시작됐다.



  처음 탁구장에 들어선 날엔 솔직히 좀 실망했다. 내 또래는 단 한 명도 없었고 대신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득했다. 속으로 '이거 완전 시시한 운동 아니야?' 하면서 만만히 봤다. 탁구가 정! 말! 어려운 스포츠란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한겨울에도 단 20분 만에 땀을 뻘뻘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생각보다 탁구공은 작고 빨라서 첫날엔 코치님이 던져주는 공을 라켓으로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간신히 맞춘다 해도 테이블 밖으로 나가거나 네트에 걸리기 일쑤. 겨우 포핸드 스윙과 백핸드 스윙, 그리고 커트를 배우는 데에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어느 날 레슨을 받다 말고 코치님께 물었다.

"코치님, 저 지금부터 학교 안 가고 탁구만 치면 선수할 수 있어요?"

실제로 선수들은 3, 4살 때부터 탁구채를 잡기 시작한다는데 똑딱이나 겨우 하면서 그런 질문을 하다니. 스포츠의 세계를 하나도 몰랐던 머글*이었으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코치님은 단번에 고개를 내저으셨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덕분에 나는 공부에 전념했고, 그렇게 탁구와의 인연은 한 달짜리 레슨으로 끝나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됐다. 교내 방송국이라는 제일 빡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친구들, 농구 코트에서 공을 던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도 운동하고 싶은데...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여학생이 같이 할 수 있는 운동 동아리는 없었다. 대개 남학생 중심의 운동 동아리에서 여학생들은 매니저 역할을 할 뿐이었다. 반쯤 포기했을 그때, 운명처럼 학교 대숲**에 '탁구 동아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탁구...? 거의 10년이 흘렀는데도 나는 또렷하게 기억했다. 입구에서부터 들리는 똑딱똑딱 소리. 탁구공을 라켓으로 정확히 맞춰 넘겼을 때의 쾌감.


  떨리는 마음을 겨우 가다듬고 공고 내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신문방송학과 14학번 양유정입니다. 탁구 동아리 가입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때만 해도 몰랐다. 이 메시지가 내 이십 대를 완전히 바꿔놓게 될 거란 사실을.



*머글 : 평범한 사람을 이르는 말.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마법 능력이 없는 보통 인간을 이르는 말에서 비롯됐다.

** 대숲 : '대나무숲'의 줄임말. 당시 페이스북에 학생들의 사연이나 의견을 익명으로 올려주는 학교별 계정이 유행이었다.




양유정 / 4년 차 탁구병아리

탁구를 만나고 내 일상이, 아니 인생이 바뀌었다. 제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며.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그건 이 시리즈를 통해 천천히 공개하겠다.

탁구장 예절부터, 탁구 게임의 재미, 탁구의 기술, 동호회의 묘미까지. 탁구를 두고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를 펼쳐나갈 예정이다. 스포츠 동호인이거나 혹은 푹 빠져 있는 취미가 있는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다. 내 글을 읽고 단 1명이라도 탁구에 관심이 생긴다면 이 시리즈는 성공! 본격 탁구 영업 에세이, 많이 기대해 주세요!


 • 간간이 올리는 탁구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yang_k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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