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편견의 안개를 헤치고

'테러 국가'라는 편견에 둘러싸인 이란, 그 심장인 테헤란으로 가다

by 이우

이란, 편견의 안개를 헤치고




- 이란 여행 에세이, 그 첫번째 이야기

- '테러 위험 국가'라는 편견에 둘러싸인 이란

- 이란의 심장 테헤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저자가 마주했던 테헤란의 첫인상에 대하여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어느 지하철역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테헤란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곧바로 입국은 할 수 없었다. 비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공항에서 체류 기간에 맞춰 관광 비자를 구입할 수 있다. 새벽이라 그런지 야근을 하는 직원은 졸고 있었다. 인기척을 내며 그를 깨웠다. 별 어려움 없이 1개월짜리 비자를 구입했다. 여권에 입국 도장이 찍혔다. 이로써 낯선 세계로 여겨졌던 이란 땅에 자유로이 발 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다. 이제 여권에 이란 도장이 찍혀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가는데 제제 혹은 제한이 가해지게 되었다.





이란 관광 비자. 여권에 스티커를 부착하고 도장을 쿵 찍어준다. 이 여권으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갈 수 없다.




여권에 찍힌 도장이 바로 이란이 어떤 세계인지 극명히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2006년 무렵,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를 어긴 채 자체적으로 우라늄 농축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국제 사회는 ‘유엔 안보리 결의 1696’을 통해 이란을 국제 무대에서 고립시켜버렸다. 이때부터 이란은 핵무장 가능성이 농후한 국가로 낙인찍혀버렸다. 여기에 2001년 9.11 테러로부터 확산된 이슬람포비아(이슬람공포증)도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 부정적 이미지를 더했다. 국제 사회에서 이란은 '핵무기'와 ‘테러 위험 국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게 되었다.




이란의 수장 호메이니와 '그들의 정부'가 자랑하는 미사일 ©nypost.com
테헤란의 어느 건물에 있던 벽화. 그림 속 인물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란의 영웅이라고 한다.




덕분에 이란은 2006년부터 경제 제재를 받게 되었다. 물론 2016년 미국은 핵 협상을 체결하고 경제 제재를 전면 해지했지만, 그 여파는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2018년 5월 트럼프는 핵 협상을 전면 백지화하고 사상 유례없는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방인인 나도 그 경제 제재라는 것이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갖고 있던 VISA 카드와 MASTER 카드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 많은 나라를 여행해보았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카드를 쓸 수 없는 곳은 이란이 처음이었다. 대신 이란은 세계경제와 연동되지 않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금융 체계를 쓰고 있었다. 때문에 이란을 여행하려면 달러나 유로를 소지하고 환전소에서 이란 화폐인 ‘리알’로 환전해야만 한다.





편견의 안개를 헤치고 마주한 이란.
인구 1,200만이 거주하는 활기 넘치는 도시 테헤란.




이란은 그야말로 ‘고립된 세계’였다. 그동안 그 부정적인 ‘핵무기’와 ‘이슬람’ 그리고 ‘테러 위험 국가’라는 안갯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테헤란으로 향했다. 드디어 안개를 뚫고 ‘위험한 세계’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처음 마주한 테헤란. 놀라고 말았다. 막연하게 이란을 낙후된 세계일 것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생각과는 달리 테헤란은 생각보다 현대적인 대도시였다.빌딩 숲 사이사이를 8차선과 4차선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최신식 설비를 자랑하는 지하철은 복잡한 거미줄처럼 도시를 연결하고 있었다. 유럽처럼 ‘우버’앱을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합리적인가격에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여행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최신식 설비를 자랑하는 지하철은 복잡한 거미줄처럼 도시를 연결하고 있었다.




게다가 테헤란은 인구만으로도 세계의 여타 대도시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인구 850만의 뉴욕보다도, 1,000만의 서울보다도 훨씬 많은 1,200만이 거주하는 활력 넘치는 대도시였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고, 지하철과 버스도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시의 활력에 취한 나는 서둘러 숙소에 여정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테헤란 구석구석을 활보했다. 인파를 헤치며 활기찬 에너지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내가 느낀 것은 그동안 알던 이란은 정말 안개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편견처럼 보수적인이슬람 국가도 아니었다. 여타 이슬람 국가에서는 히잡으로 완벽하게 머리카락을 가리거나 심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부르카라는 전통 복장으로 눈만 빼꼼히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쓰되 머리에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대충' 걸쳐 쓴다. 거리에서는 서구 세계의 유행가요가 흘러나온다. 독재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젊은이들이 자유분방하다. 거리에는 게이 커플도 눈에 띄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세심히 관찰하며 수첩에 기록해놓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란에서 나를 가이드 해준 친구 자하라. 홈스테이 주인이자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 저녁을 먹으니 금세 어두운 밤이 되었다.



저녁에는 홈스테이로 머무는 숙소 주인 자하라와 만나 동행했다. 미술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그녀는 내게 젊은 이란인의 눈으로 자신의 도시를 이모저모를 소개해주었다. 그녀의 시선은 젊은 한국인인 나와 어딘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어 잘 통했다. 그녀는 함께 저녁을 먹곤 테헤란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영화 박물관인 페르도우 정원으로 데려가 주었다. 차분히 내려앉은 어스름 속에서 그리스식 건축물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이란 사람들은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혹은 연인들끼리 오손도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40도를 육박하던 한낮의 더위도 거짓말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란은 건조해서 해가 지기만해도 제법 선선해진다. 정원의 행복한 분위기와 포근한 여름밤의 분위기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정원을 거닐다가 우연히 어느 노부부를 마주했다. 그들은 테헤란의 야경을 함께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나 로멘틱했다. 친구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여기가 바로 행복이 도처에 있는 지상낙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나는 문득 이란에 대한 편견의 안개가 어느새 걷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마주한 이란의 심장, 테헤란의 첫인상은 활기 넘치는 사랑의 도시였다.





테헤란에는 꽃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예쁜 정원이 많았다. 페르도우 정원의 전경.
내게 이란의 심장, 테헤란의 첫 이미지는 활기 넘치는 사랑의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