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계에서 마주한 정겨운 동질감

이란에서 마주한 그네들의 정서적 경향

by 이우

낯선 세계에서 마주한 정겨운 동질감




- 이란의 고유한 이슬람 태양력에 대해서

-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

- 종교 못지않게 전통과 민족정신을 중요시하는 이란

- 어째서 이렇게 낯선 세계가 친밀감이 드는 것일까?





좋은 호스트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던 자하라.



숙소 주인 자하라는 내게 안 쓰는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옛날 핸드폰이지만 여전히 잘 작동한다며 여행하다 혹시 모를 비상시에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액정에는 시간과 날짜, 그리고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시간은 맞았지만 연도와 날짜가 이상했다. 지금이 1396년, 5월 8일이라고? “고장 난 거 아니야?” 내가 물었다. “제대로 되어 있는데?” 그녀가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지금은 2017년도인데 여기 1396년이라도 되어 있잖아.” “이거는 이슬람 태양력이라는 거야. 우리는 공식적으로 이 달력을 써.”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곳은 1396년의 세계였다.



이슬람 태양력은 ‘이슬람력’과 다른 역법이다. 이란은 자신들의 고유한 태양력을 이슬람 태양력이라고 하고, 여타 이슬람 국가에서 사용하는 이슬람력을 이슬람 음력이라고 한다.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 1년이나 거주했지만 그들은 이슬람력을 마치 우리가 태음력을 쓰는 것처럼 ‘비공식’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공식적으로는 세계 표준 역법인 그레고리력을 따른다. 하지만 이란은 반대였다. 이슬람력과 그레고리력은 인정은 하되 국가적으로는 이슬람 태양력을 공식적으로 쓰고 있었다. 이란은 ‘1396년’에 머물러 있었다.




택시를 타도, 버스를 타도, 지하철을 타도, 식당엘 가도, 숙소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시계와 달력은 지금이 1396년 5월 10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레고리력은 찾아보기 힘들거나 그저 조그맣게 표기되어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이것이 이슬람 태양력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1396년이란 연도라는 숫자가 주는 야릇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란이 풍기는 짙은 이국적 느낌과 더불어 내게 마치 과거 어느 낯선 세계로 시간 여행을 온 기분마저 들게 했다. 1396년에 사는 이란 사람들. 이란의 역법 속에서 어렴풋이 그네들의 정신세계를 짐작해보았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세계 속의 이란’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인 이란’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신문에는 이슬람 태양력과 함께 이슬람 음력, 그레고리력이 모두 표기되어 있다.



과연 그러했다. 알면 알수록 이란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이란은 서방 세계에 알려진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였지만, 여타 이슬람 국가와는 무척이나 ‘다른’ 나라였다. 다른 역법을 쓰는 것은 물론 종파적으로도 달랐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가 ‘수니파’인 반면 이란은 ‘시아파’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사실 그 뿌리는 같다. 유일한 최후의 예언자를 무함마드로 보고 신의 계시인 코란을 절대적인 성서로 여긴다. 하지만 그 후의 계보가 전혀 다르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한 뿌리의 다른 줄기로 만든 것은 ‘한 인물’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알리 이븐 아부 탈리프’이다.




알리 이분 아비 탈리프는 무려 1,4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인데 이슬람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논쟁의 화두에 오르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살아생전에는 이슬람이 하나의 공동체였다. 문제는 그의 사후에 벌어졌다. 이슬람 공동체를 지도하던 무함마드가 그의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고 죽은 것이었다. 지도자의 자리가 공백이 되었다. 여기서 의견이 갈렸다. 더욱이 무함마드에게는 자신의 지위를 계승할 혈육도 없었다. 공동체의 합의로 후계자를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 수니파였고, 무함마드의 혈육을 후계자로 정하자는 것이 시아파였다. 그렇게 임명된 초대 칼리프(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는 수니파의 의견 대로 아부 바르크였다.




시아파에 의해 즉위한 4대 칼리파 알리의 초상 ©Dewi Kata




아부 바르크의 뒤를 이어 2대 칼리프는 우마르, 3대는 우스만 이븐 아판이었다. 모두 수니파였다. 하지만 4대는 달랐다. 이번에는 시아파가 추대한 인물이 칼리프가 되었다. 그가 바로 앞서 언급했던 알리 이븐 아부 탈리프’였다. 그는 무함마드와 유일하게 혈연관계에 있던 사내였다. 사촌동생이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수니파는 새로 임명된 칼리프를 따르지 않았다. ‘정통’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었다. 머지않아 4대 칼리프 알리가 수니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수니파는 또다시 ‘혈연’을 내세우며 칼리프를 계승하지 못하게 장남 하산을 그의 아내를 사주해 독살 시킨다. 차남 후세인은 수니파와의 전투 중에 전사하고 만다.




여기서부터 수니파와 시아파는 돌이킬 수 없는 원수가 되고 말았다. 수니파는 무함마드가 유일한 예언자이며 이후의 이슬람 세계는 단순히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인 칼리프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수니파는 오직 유일한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후손이 칼리프가 되어야만 한다고 여겼다. 때문에 전자는 4대 칼리프를 알리를 그저 ‘칼리프 중 한 명’이라고만 여겼고, 후자는 알리를 ‘유일한 정통’ 칼리프로 여겼다. 바로 그 관점의 차이로부터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와 시아파로 영원히 갈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수니파의 맹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의 맹주는 이란이 되었다.




혈연적, 가문적 계보를 칼리프의 정통으로 여기는 이란. 이것 또한 이란의 민족적 정체성에서도 짙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은 여타 이슬람 국가처럼 종교적 언어인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아랍어는 그저 종교적 언어로만 못 박아 둔 채, 그네들만의 고유한 언어인 페르시아어를 고수하고 있다. 인종적으로도 페르시안들이라 아랍인과 동일시 혹은 비교되는 것을 싫어한다. 또한 이슬람 태양력을 따르면서도, 2천 년이 넘게 명맥을 이어온 페르시안의 전통적 명절도 중요시한다. 노루즈 Nowruz는 이란의 설날이자 최대의 명절(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에서도 같은 명절을 보내는데 이것은 페르시안의 민족적 전통이다)로 이슬람 명절인 이드와 라마단보다도 중요한 명절로 꼽히고 있다.





이란의 야즈드에 있는 조로아스터교 신전.


일체의 우상을 파괴했던 수니파 이슬람과는 다른 시아파 이슬람.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이슬람답지 않은 면모마저 보이고 있다. 수니파는 오직 코란과 무함마드의 언행이 적힌 하디스, 그리고 이슬람 법인 샤리아의 원리 원칙만을 따른다. 그래서 국가의 토대가 신화적 민족적인 여타 국가와는 달리 오직 종교적일 뿐이다. 전통과 관습을 미신의 이름으로, 전통 신앙을 우상숭배로 여겨 배척했다. 종교적 토대 위에 국가가 탄생했다. 반면 이란은 민족적 문화적 전통 위에 이슬람을 종교로서 받아들였다. 때문에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페르시아의 신화 세계와, 서사시인 샤니메 쿠쉬나메 등을 종교라는 굴레에 구애받지 않고 지켜왔다.




쿠쉬나메의 주인공 쿠쉬의 영웅담을 새긴 부조. 이란의 지하철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쿠쉬나메에서 쿠쉬는 페르시아어로 영웅의 이름을, 나메는 책을 의미한다.


쿠쉬의 어느 일화를 새긴 듯한 장식




사실 이슬람 교인들의 90%를 차지하는 것은 수니파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자칫 우상 숭배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각 예술마저 금기시하고 있다.(이 대목에서는 이슬람은 전체주의적인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이슬람 정부의 대부분이 전제적인 독재로 치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원인도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그 흔한 위인들의 동상도 세우지 않는다. 때문에 그 예술적 욕망은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수니파의 세계에 가보면 공항부터 모스크, 그리고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무늬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의 거리는 달랐다. 거리 곳곳에는 이란인들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신화 이야기가 벽화와 부조 그리고 동상으로 꾸며져 있었다.




기하학적인 문양의 정수를 보여주는 페르시안 카페트. 바라보고 있으면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빨려들어갈 것 같다.



이란을 이렇게 형용하기로 했다. ‘2,5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고유한 역사와 언어에 뿌리내린 단일 민족이자 단일 국가’, ‘민족적 자긍심으로 가득 찬 민족’ 그런데 이토록 낯선 세계인 이란과 마주할수록 이상하게도 점점 친근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딘가 나의 정체성이 속한 대한민국과, 한민족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이란에 붙여본 수식어가 대한민국을 수식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문득 낯선 시간, 낯선 세계의 이란이 정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여행했던 어느 나라보다도 흥미와 호기심이 생겼다. 모험가를 자처한 나는 어딘가 정겨운 이란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란의 근원적인 정서적 민족적 코드가 한민족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