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중견 소설가에게 보내는 어느 젊은 소설가의 편지

by 이우

레지스탕스의 첫 비평가가 되어주신 고모께.



- 진심을 전하다...



마음을 담아 전하다. ©2018, leewoo




안녕하세요. 고모. 이제서야 소식을 전하네요. 그날의 만남 이후로, 아버지를 통해 전해 들었던 소식에 몹시 실망하고 안타까워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타이밍이 어긋나버렸다는 것뿐입니다.



사실 고모를 만나고 몹시 아팠습니다. 그날, 고모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명확히도 이해했습니다. 제가 쓰고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던 게 그저 공중누각에 불과했다는 걸 인식시켜주려 했던 것이었겠지요. 공중누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요소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당위성도 없는 것인지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쏟아부은 애정과 노력에 눈이 멀어 그것이 그저 온전하다고만 여겨왔던 것이었지요. 모두 뼈아픈 말이었지만 정말 어렵게도 인정하고 수긍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는 도저히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공중누각을 철회하라는 말 말입니다.



매일 밤 가슴이 벌떡 거려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호흡이 가빠져 간신히 숨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건축물의 요소요소가 형편없다면 보수하면 되는 거였지만, 그것이 결국 공중누각이라면 이야기가 다른 것이지요. 공중누각은 형용모순이 드러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니까요. 본의 아니게 저의 젊은 시절을 모조리 쏟아부었던 공중누각을 형용모순을 인정한 채 신기루처럼 떠나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저 공중누각이었다고 해도 그대로 남겨두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만 하자 진단을 받은 부분을 완벽하게 고치기로 했지요.



그건 맞고, 그건 틀리다. 고모의 의견에 그렇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고모의 진단과 조언은 ‘고모’이기에, 또한 애정(혹은 연민이었을까요)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는 걸 말입니다. 그건 한편으로 제겐 너무나 크나큰 상처였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에 더 큰 상처였지요. 저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습니다. 그때의 감정을 단 한 사람, 당시 사랑했던 여인에게 털어놓았지요. 고모가 밉냐는 그녀의 물음에 저는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오히려 고모가 너무나 고맙다고 했지요. 그동안 제가 자아도취의 조그마한,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세계에 갇혀 살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으니까요.



고모도 아시다시피 인쇄만을 남기고 있던 원고-제가 온전한 소설이라 여겼던-였는데 정말 처음부터 뜯어고쳤습니다. 중단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터무니없는 일을 함께해준 북 디자이너에게도, 표지를 그려준 화가에게도, 출판의 과정에서 만난 조력자들에게도 몹쓸 짓이었지요. 사실 주위에 떠벌리고 다녀서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모로 중단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보다 온전한 공중누각을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벌렁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첫 장은 다시 썼고, 결말도 바꾸었으며, 유치해서 견딜 수 없는 부분도, 형편없는 부분도, 찢어발기고 싶은 부분도 다 뜯어고쳤습니다.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리하여 편법으로 소설을 출판했습니다. 물론 고모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소설을 철회하지 못했지만, 모두 고쳐냈다고, 그래도 출판해야만 했다고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파주에서 인쇄를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던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아버지는 고모와 통화를 했다며 저의 소설이 그야말로 자기 일대기에 지나지 않는 형편없는 것이며, 그것이 결국 제게 독이 될 거라고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인 양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듣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죠. 다시 한 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의 걱정에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멈춰야만 했던 것이었을까요. 출판을 하고도 책장에 꽂혀 있던 고모의 책은 정말 꺼내보지도 못했습니다. 고모가 제 조악한 원고를 읽어주었던 수고를 생각하면 백 번 읽어야 마땅했지만,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책장 위에서 마치 권위적인 존재처럼 저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리고 간신히 추스른 두 번의 가슴 아픈 상처들이 책장을 건드리기만 해도 다시금 전해질 것 같아 손조차 뻗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두 번째 아픔이 없었다면 어리석었던 절차들을 웃으면서 고모에게 전하기라도 했을 텐데, 그저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만을 가슴에 품은 채 언제 어떻게 이야기할지 머뭇거리기만 해왔습니다.



출판한지 어언 세 달. 천 부 중에서 칠백 부가 독자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가 백 부를 구입해 일가친척과 지인들에게 배부한 것을 모두 합쳐서 말입니다. 예기치 못하게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출판사로 전화(물론 1인 출판사이기에 제게 연락이 왔지요)해 작가가 누군지 묻는 사람도 있었고, SNS 계정과 이메일을 통해 장문의 편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고 투고 문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도, 기윤이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민재가 쓴 시들이 궁금하다는, 민재를 안아주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지요. 물론 비판도 있었습니다. 유치해서 아슬아슬했다고, 그저 에세이를 쓴 것 아니냐고, 소설 같지 않다는, 첫 장을 읽고 덮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세 달간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절감한 것은 책은 대중이라는 독자와의 만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소설은 권위자들이 심사하고 평가하는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제가 의도했던 바가 무엇이든 간에 독자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할 뿐이었습니다. 다들 각양각색의 시선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동창들은 제가 어렴풋이 보인다고 했고, 어린 친구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했으며, 어른들은 어른 동화라며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마음이 아프다며 동정과 연민을, 민재라는 캐릭터에 영감을 준 친구는 자신이 그런 식으로 사용된 것에 불쾌감 표했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오늘에서야 뒤돌아봅니다. 무엇을 위해 출판했던 것인지 말입니다. 큰돈을 벌지도 못했습니다. 세 달 동안 어디서 알바를 했더라도 이것보다 많이 벌었을 것입니다. 출판으로 등단하지 못한 한을 풀었냐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손에 꼽히는 칭찬들과 찬사들에 만족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썼다는 것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언제나 레지스탕스가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고모의 말이 예언처럼 귓가를 맴돌 뿐입니다. 저는 무엇 때문에 출판을 했을까요. 그래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가오는 연말, 또다시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권위자들의 후광인지, 많은 독자인지, 돈인지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레지스탕스의 출판은 제게 아직까지는 독보다는 득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을 진단할 수 있었고, 갇혀있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합니다. 레지스탕스로 우연찮게 두 명의 젊은 작가들을 알게 되어 친분을 쌓았습니다. 일부러 한국의 신인 작가들의 책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라는 곳에서는 저의 에세이를 매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영풍문고에서는 조그마한 이벤트를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다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공중누각을 발판 삼아 조금씩 나아가야겠다고 말이지요. 고모가 보시기엔 우습겠지만 벌써 삼십 년을 산 저입니다. 결코 완전히 새로운 것은 할 수 없습니다. 해온 게 이것뿐이니 그저 기껏해야 여기서 조금 더 나아지거나, 조금 더 나아갈 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목표를 레지스탕스를 극복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평생의 목표가 될지도 모르지요….



고모께 정말로 고개 숙여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날의 상처로 인해 그나마 온전한 출판을 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부끄러워 죽을 지경인데, 만약 고모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할 따름입니다. 문득 출판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출판을 너무나 하고 싶어 발품을 팔던 어느 날, 어느 출판사의 에디터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비 출판이나 셀프 출판은, 거기에 소설이라는 장르라면 돈과 정력만 낭비하게 되는 꼴이 될 거라고 슬픈 예언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병에 걸려도 이 정도 돈은 쓰는데, 저 역시 병에 걸려 스스로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출판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이제 레지스탕스도 세상에 어느 정도 있어야 할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묻히고 또 잊히겠죠. 정말 다행입니다.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크나큰 소득은 레지스탕스로부터 벗어난 것뿐이라고.(물론 이제 꼬리표처럼 따라붙겠지만요….)



이제서야 이런 방식으로 밖에 연락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편지가 최선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고모와의 인연, 정말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뵐 때는 정말이지 꼭 고모의 저작들을 읽고 가겠습니다. 이제 두려움에 손을 뻗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카, 아니 이우 올림.





그저 기껏해야 여기서 조금 더 나아지거나, 조금 더 나아갈 뿐일 것입니다. ©2017, lee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