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서 받은 편지에 답장을 하다
- 소설가로서 받은 편지에 답장을 하다
OO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참 멋지고 아름다운 가을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미루어왔던 답장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 진심이 담긴 장문의 편지, 덕분에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소설을 썼던 것일까 하고 말이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지스탕스를 썼던 것은 ‘대화의 결핍’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저는 소설을 썼던 20대 시절, 그 누구에게도 고민(생각 혹은 관념)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진중한 고민을 너무나도 쉽게 ‘재단'하고 ‘진단'까지 해주니 말입니다. "네 생각은 잘못됐어.”, “이제 너는 이렇게 하면 돼.”, “너는 철 좀 들어야 돼.” 세상에는 왜 이렇게 의사가 많은 것일까요. 이러한 ‘재단’과 ‘진단’은 때론 고민을 갖고 있는 이에게 확실한 ‘처방전’이 되기보단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차라리 경청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저는 항상 침묵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결핍에 갈증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대화의 결핍에 시달렸던 저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차용해 기나긴 이야기로 고민을 토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기나긴 고민 혹은 소설은 세상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당신의 편지를 받고 크나큰 위로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게 첫 경험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처음으로 제게 귀 기울여준 것만 같았지요. 세상이 처음으로 ‘재단’하지도 않고, ‘진단’하지도 않고, 묵묵히 경청해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편지 한 장. 저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고, 모종의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이야기 속에 숨겨 전하고자 했던 것을 알아차린 당신, 당신의 편지는 제게 따스하고 포근하기 그지없는 포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동안 극심한 갈증처럼 느껴지던 ‘대화의 결핍’이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편지에 담긴 짤막한 자기소개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미술을 공부하는 아직은 어린 예술가. 소설 속 민재가 떠올라서였을까요. 저도 아직 당신과 같은 ‘과정’이라는 길 위에 있어서 ‘작가답게’ 멋들어진 조언은 할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다만 건투를 빈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머니까요. 이 길 어디에선가 만난다면 반가운 인사와 편지에서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도록 해요. 다음에는 제가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를 담아. 2018년 9월5일, 어느 멋진 가을 날에. 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