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어느 날 저녁,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다짐
- 초여름의 어느 날 저녁,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다짐에 대하여
출판을 앞둔 어느 초여름 밤이었다. 친구는 조촐하게 축하를 하자며 맥주를 사 왔다. 인적 없는 골목길에 앉아 잔을 기울였다. 내가 말했다. “나는 출판하면 과감하게 오백 권 정도를 지인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이야. 독자를 갖고 싶거든.” 어차피 출판해 큰돈을 벌지도 못할 거 과감하게 독자를 구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친구는 고갤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반대야.” “왜?” “사람이란 자신이 가치를 부여한 것에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마련이야.”
“음... 그런가?” “공짜면 절대 읽지 않아. 공짜 영화야 앉아서 그냥 보면 되는데 책은 능동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의 말이 맞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우리는 다른 것을 할 수도 있다. 낮잠을 잘 수도, 커피 한 잔을 할 수도, 누군가를 만나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제한적인 자원을 우리가 과연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무언가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을까.
그동안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지인들로부터 많은 책들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책장을 펼치지 않았다. 심지어 유명 소설가인 이기호와 박순원으로부터 직접 책을 선물 받았는데도 읽지 않았다. 그것들은 내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책장은 읽고 싶은 것들과 읽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굳이 시간과 노력을 다른 곳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 나조차도 하지 않는걸, 타인으로부터 기대한 단 말인가.
그날 밤, 나는 친구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책을 읽어줄 진실한 독자를 찾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여라. 선물로 나누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누어주지 않은 책은 팔리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과연 누가 전문가의 평론과 추천사를 등에 업지도 못한 책에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을까. 나는 똥만 싸도 박수를 받는 유명인도 아니니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세상에 부딪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