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 Jun 28. 2024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지 않았다

방송 출연 후 찾아온 기회를 떠나보내다


방송에 출연하고 책이 품절됐다. 소설가로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방송 주제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였던지라 나의 첫 책이었던 『레지스탕스』가 6년 만에 재주목을 받게 됐다. 레지스탕스가 3쇄를 끝으로 점점 세상으로부터 잊혀져 갈 줄 알았는데, 예기치 못한 역주행을 하게 된 것이다. 주문량이 갑자기 늘어났다. 3쇄의 재고가 모두 소진되어 갈 때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선택지는 세 가지가 있었다. 재인쇄와 절판, 혹은 개정판. 사업적으로 보자면 빠르게 재인쇄를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기우는 건 절판과 개정판이었다. 레지스탕스는 나의 첫 출간 작품이었다. 6년 전 작품이었기에 마음 한편 늘 아쉬움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미숙했고, 조급했으며, 거칠었다. 물론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 해 모든 걸 쏟아 넣었다. 부족해도 레지스탕스는 나의 문학적 초석이었다. 때문에 나의 시작점을 부정하거나 철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절판'은 선택지에서 배제되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가득한 작품을 계속해서 세상에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레지스탕스는 대대적인 수정을 거쳐 개정판으로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과감하게 초판 레지스탕스는 절판 처리를 했다.


원고를 손 보는데 세 달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의 계획은 부족한 문장들을 고치고, 인물들의 아이덴티티를 보다 짙게 만들고, 서사를 더 유기적으로 손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수정을 결정한 이상 퇴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거의 절반 이상의 원고를 다시 집필했다. 큰 줄기의 스토리 라인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이야기를 새로이 썼다. 부족했던 에피소드는 교체되었고, 불필요한 인물은 삭제되었으며, 희미했던 인물은 더 짙어졌다. 퇴고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그 당시의 나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뜨겁게 분투했던 그 시절의 애처로운 나를 계속해서 보듬어주어야만 했다.


드디어 원고가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아쉬움 없이 레지스탕스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됐다. 새로운 마음을 담아 북디자인도 새롭게 진행했다. 레지스탕스의 투쟁의 의지, 자기실현의 열망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도록 강렬한 레드 컬러를 채택했다. 6년 전 처음으로 레지스탕스를 인쇄했던 건 7월 18일이었다. 이 날짜에 맞춰 4쇄이자 개정판을 인쇄하기로 했다. 사실 원고를 집필하던 세 달의 시간 동안 방송 덕분에 들어왔던 물은 모두 빠져나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문학적 여정에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후회는 없다. 이제 초석을 다시 손 봤으니 저 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겠다.





소설가 이우 : iam@theleewoo.com

https://www.instagram.com/leewoo.sseia

매거진의 이전글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