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선의와 열정은 세상의 공공재가 아닙니다.
얼마 전 한 유튜브 채널에 섭외되었는데 촬영 일정이 당일 취소된 일이 있었다. 주최 측에서 촬영 한 시간 전에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었다. 무려 무통보 파기였다. 일정에 맞춰 출발하기 전 주차 문자 때문에 촬영 장소에 전화를 하게 되면서 취소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비록 무보수 계약이었지만 나는 소설가인 나를 누군가가 불러주었다는 사실에 진심 어린 촬영 준비를 했고,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하루의 스케줄을 비웠다. 화가 났고 허탈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화가 난 건 유튜브 채널의 대응 방식이었다. 해당 채널은 법인을 통해 운영되고 있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대표인 피디는 촬영 당일 잠을 자고 있었고, 섭외를 하고 내부적으로 일정도 잡지 않았다. 유튜버인 공동대표는 다른 대표가 벌인 일이라며 사과할 수 없다고 했고, 돈을 줄 테니 일을 끝내자고 했다.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강요했다. 하지만 정중한 사과를 받고 싶었던 나는 내용증명을 통해 회사 입장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회사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사과는 돈 밖에 없다는 걸 이해했다. 그렇다면 ‘귀 법인’이 수 차례 주겠다고 회유하던 돈을 사과로 받아들일 테니 달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법률 자문을 구한 결과 내게는 애초 무보수로 섭외했으므로 아무 비용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번 촬영 계약 일방적 파기에 있어 책임을 다 했으니 더 이상의 항의는 영업 방해이며 법적인 증거로 활용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들에게 사과하라고 물고 늘어진다고 내가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을 통해 나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다. 나를 헐값 취급한 사람과 손을 잡으면, 결국 헐값 취급을 받게 된다는 것. 사실 나는 그동안 누군가 소설가로 나를 불러주면 늘 감사히 여겨왔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임했다. 소설가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감사하기 그지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작가로서 나 자신의 가치를 정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무보수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동료 작가들에게는 기꺼이 추천사를 써줄 수도 있고, 학생들을 위해 좋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걸음 할 수도, 또 뜻깊은 재능 기부를 할 수 있는 곳이면 기꺼이 나를 헌신할 것이다. 다만 나를 활용하고 싶어 하는 곳에,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곳에, 헐값으로 취급하는 곳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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