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 Dec 11. 2023

무정) 은행원의 잔인한 말실수.

-안 그래도 속상한데 그러기 있어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커피 브루잉 수업을  듣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자격증 시험도 치며 취미를 넘어 기술을 익히고 있다는 생각에 학원 가는 길이 즐겁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나와 잘 맞는 선생님 때문이기도 하다.

12월 첫째 주 화요일, 평소와 달리 선생님 눈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례일까 싶어 왜 기분이 좋지 않느냐며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는데 전화 한 통만 받고 오겠다며 후다닥 나갔다 오더니 "저 어떡해요~ 400만 원 사기당했어요!"라며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선생님이 말문을 열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중고 제빵기를 사려고 중고 거래 사이트를 뒤지다 저렴한 가격의 매물이 있어 판매자에게 빠르게 연락해 송금을 했는데 판매자가 연락두절되었다 한다.

이 사기꾼 판매자는 어떤 보안을 핑계로 한 번에 400만 원 다 송금하지 말고 40만 원, 50만 원씩 나눠 송금해 달라했고 그때 이상함을 감지했어야 하는데 당시엔 아무런 의심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날이 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저지르지 않을 실수인데 이상하게 뭔가 홀린 듯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이게 되는 그런 날.


 바로 경찰서로 가서 고소장을 접수하고, 해킹으로 본인 명의의 계좌가 모두 털려버리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통장들을 해지하기 위해 출근 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과 증권사를 차례로 다녀왔다고 한다.

그중 한 은행의 은행원이 "얼른 회사에 들어가야 하니 그냥 해지해 주세요."라며  몇 번이나 거절하는 선생님을 붙들고 통장 해지보다는 '입출금 제한'을 해놓는 게 낫지 않냐며 순순히 통장 해지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불안해서 다 해지하고 싶은데 계좌개설 새로 하려면 불편하 다해서 결국 그 은행 계좌만 해지 못했어요."

 "선생님 마음 편한 대로 하세요. 불편해도 내가 불편하지 뭐, 안 그래요? 그 은행원 도 참."


 결혼을 앞두고 목돈 나갈 일이 많아 생활비도 아껴 써야 한다던 선생님은 4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잃고 안 그래도 속상한데 통장 해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그 은행원을 원망했다.

더욱이나 그 은행의 계좌로 사기꾼 판매자에게 송금했었기에 제일 해지하고 싶었던 계좌라 했다.

결국 시간에 쫓겨 포기하고 학원으로 복귀했지만 실랑이하느라 수업시간에도 늦었단다.


 그다음 주 수업일, 인사는 자체 생략하고 다짜고짜 계좌 해지했느냐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좌 해지를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굳게 결심하고 다시 은행에 갔다고 했다. 그 은행원만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대기하고 있는데 운 없게도 그 은행원의 안내판에서 선생님의 대기 번호가 떠버렸다고 한다.

 걱정인지 오지랖인지 경찰서에서 연락은 왔는지, 범인은 파악되었는지 물어대던 은행원에게 "아직요. 계좌 해지 빨리 부탁드려요."라며 더 이상 관심 끄라는 듯 냉담히 대답했고, 분위기를 읽은 은행원도 이번엔 순순히 계좌해지를 해줬다고 한다.


"저 사람이에요? 사기?"

무사히 계좌 해지를 끝내고 일어서는데 담당 은행원에게 건네는 옆자리 은행원의 예상치 못 한 한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고 한다.


"한 마디 시원하게 갈기고 오지 그러셨어요! 왜 남 얘기를 그렇게 지들끼리 하고 난리야!"

듣자마자 화가 난 나는 강의실 떠나가라 소리치며 흥분했다.

"화낸 들 뭐 하겠어요. 그럴 힘도 없었어요. 지쳐서."

그저 빨리 범인을 잡아 돈을 되찾았음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은행에 가면 은행원의 자리마다 쳐져있는 파티션을 쉽게 볼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 파티션은 내 개인정보 누설을 방지하기 위한 보안의 역할도 조금은 해준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믿음에 부합하려면 은행원도 업무 처리함에 있어 고객과 오간 서류와 말들은 최대한 그 파티션을 넘지 않도록 주의해줘야 하지 않을까?

당사자는 얼른 해결해서 잊고 싶은 나쁜 일을 자기들끼리 가십거리로 나눈 것도 모자라 그 사실을 그렇게 들켜야 했을까?


 사기꾼 판매자에게 사기당했다는 것만큼 나의 불행이 남에겐 대화 소재거리가 될 뿐이라는 사실이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한다.  

이럴 때 보면 인간이란 한없이 따뜻하다가도 잔인한 동물이다 싶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잔인한 동물인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게 더 잔인하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미안해서 세스코 직원에게 커피를 건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