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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Feb 27. 2024

손님의 사소한 한마디도 언제쯤 웃어넘길 수 있을까요?

-이젠 무덤덤하고 싶다.

 월화 마감 근무 시간에 일할 새로 뽑은 아르바이트 생 교육을 위해 평소 근무시간이 아닌 마감 시간에 와플 가게에 출근했다. 보통 마감 시간대 아르바이트 교육은 매니저의 몫이긴 한데,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매니저라 부득이하게 내가 마감 업무 교육을 당분간 맡게 되었다. 


 출근시간보다 20분 일찍 가게에 도착했다.

오후/저녁 시간엔 늘 주문이 밀리고 설거지할 틈조차 없을 만큼 바쁘다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전쟁터가 따로 없다. 아직 모든 업무가 손에 익지 않은 매니저 혼자 허둥대며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교육할 아르바이트 생도 아직 출근 전이라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매니저를 도와 와플을 만들었다. 열심히 주문을 쳐내는 속도만큼 새로운 주문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러던 와중에 아르바이트 생이 출근했고, 바로 교육에 들어갈 여건이 되지 않아 설거지와 테이블 정리를 부탁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며칠 동안 내 기분을 흐리게 만든 바로 그 사소한 일이 발생했다.


 "1033번 손님, 주문하신 와플 두 개 나왔습니다."

 "자기야, 자기가 가서 들고 와."

 아내 손님이 툭치며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편 손님에게 말했다. 아내의 지령을 받고 남편 손님이 카운터로 다가와 두 개의 와플을 전해 받았다.

 참고로 우리 가게는 와플을 낱개로 종이봉투에 담아 드리고 있다. 낱개 포장된 와플을 담을 비닐봉지가 필요할 경우는 여느 가게들처럼 100원을 내고 구입해야 한다.

 "맛있게 드세요."

 전해받은 와플을 들고 매장을 나가려던 남편 손님에게 아내 손님이 물었다.

 "봉투는?"

 "그냥 이렇게 주던데?"

 "두 개를 어떻게 들고 가? 봉투에 담아줘야지."

 살짝 화가 난 듯 격앙된 목소리라 내가 있는 카운터까지 아내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봉투 없어요? 이거 어떻게 들고 가요?" 

 "비닐봉지는 100원입니다."

 "네? 무슨 비닐봉지를 돈 받고 팔아요?"

 "네?"

 "아니~ 무슨 봉투값을 받냐고요!"

 가게에서 물건 구입 시 봉투값을 지불하는 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봉투값을 지불하며 살아온 지 꽤 됐는데, 이 손님은 생전처음 듣는다는 듯 왜 돈을 내야 하냐며 화를 냈다.


 "환경부담금으로 100원 지불하셔야 비닐봉지가 제공되세요."

 "아니 그럼 이걸 어떻게 들고 가라고요?"

 '지금 남자 손님이 클러치 들 듯이 두 개 딱 들고 가기 편하게 잘 잡고 계신대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걸 나도 안다.

 "아... 죄송합니다만, 저희도 무상으로 제공해 드릴 순 없어서요."

 "아니 그럼, 아까 와플 주문할 때 봉투값 계산을 하라고 하던가요."

 "키오스크 왼쪽 상단에 봉투값 100원이라고 항목이 있긴 합니다만, 잘 안 보이셨나 봐요. 죄송합니다."

 왜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죄송하다 하고 얼른 이 손님들을 보내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 됐어요!"

 홱 돌아서 나가는 그 부부손님은 매장을 나가는 내내 "무슨 봉투값을 받아?"라며 투덜댔다.

 이럴 일인가? 봉투값 결제를 깜박한 손님들 대부분 "봉투값 100원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면 흔쾌히 100원을 내어 주시거나 "아이고, 잔돈이 없네. 그냥 들고 갈게요."라고 하셨다. 이처럼 왜 봉투에 가격이 붙은 건지를 물어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봉투값 때문에 손님과 실랑이를 한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지만, 여운은 꽤 오래 남았다.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 순간에도,

다음 날 아침 유산균을 털어 넣는 순간에도,

필라테스를 마치고 커피 사러 걸어가는 순간에도,

계속 기분 나빠하며 따지듯 물어댔던 손님의 목소리와 눈빛이 생각나 며칠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다, 내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 채 며칠을 보낸 것이 단지 그 손님들과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언제까지 사소한 한마디에 상처받고, 흐린 기분으로 다음 날의 일상들까지 망칠 것인지...

나란 인간은 훌훌 털어내거나 흘려버릴 수는 없는 건인지...

그저 나란 인간이 더없이 싫어서였던 것이다.


신경 끄고 살려고 읽은 책도 소용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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