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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Jan 16. 2024

'파'를 마시라니요...
대파크림 감자라떼

#오프너_빽다방 '대파크림 감자라떼'

인파가 가득한 카페를 혼자 들어온다. 누구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 잔의 커피. '어... 그런데 왜 키오스크에 이게 없지?' 당황하는 나에게 직원은 묻는다. 


"찾으시는 음료가 있으세요?"

"대파...가 들어간 커피..."


그는 특이한 음료를 찾아 헤매는 음료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카페 음료에 대파라니. 여러분, 참을 수 있어요?

 


10년 간의 커피 생활을 부정하는 문제작 

음료계의 거목 마시즘에게 커피란 '맥심' 과 '스페셜티커피' 중 하나를 고르는 삶이었다. 그 가운데 있는 커피들은 내 일상을 두근거리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요즘 늘어난 가성비(라고 말하고 양산형이라고 읽는다) 카페들은 뭐랄까... 잠을 깨우는 대신 꿈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하지만 커피에 '대파'가 들어갔다면 말이 다르지. 파맛 첵스를 먹어본 후 누군가 꼭 내줬으면 하는 꿈의 제품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네의 작은 빽다방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 혹시 대파 커피 파나요?"

"아, 그 신메뉴 말씀이시죠?"


바리스타의 대답과 동시에 외투를 입었다. 올해의 첫 임팩트는 네 녀석이다.



백 선생님은 왜 대파 크림과 감자를 택했을까?

'대파'만 들어간 커피라고 생각했는데, '대파 크림'이 들어간 커피였다. 거기에 '감자'까지 추가되었다. 날카롭고 화끈한 대파의 열기가 느껴지는 지옥의 커피를 기다렸는데, 제법 폭신한 크림이 쌓인 라떼가 나왔다. 물론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맛있어 보인다는 말은 아니었다. 라떼에서 살짝 초록빛이 감돌거든.


하지만 그래도 마실 수 있다. 백 선생님의 빽다방에서 나온 커피니까. 한국에서 '백종원'이라는 이름 3글자는 적어도 맛으로 장난은 치지 않는다는 보증수표 같은 것이 아니던가... 라지만 내심 이상한 맛이 나오길 바랐다. 선생님도 매번 모두에게 맛있는 맛을 찾아줘야만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는 제품이었으면 했다. 


봉인된 흑종원의 첫 번째 음료. 바로 '대파크림 감자라떼'! 


... 라기엔 역시 괜찮은 맛을 내고 말았다. 눈물 콧물 나오는 파맛이 아닌 음료에서 부드러운 수프맛이 난다.

 


커피인가 식사 대용 수프인가, 대파크림 감자라떼의 맛

이 녀석을 완벽하게 맛보기 위해 '뜨거운 버전'과 '차가운 버전' 2개를 샀다. 가격은 각각 4,500원. 먼저 따뜻한 대파크림 감자라떼를 맛봤다. 따뜻한 김과 부드러운 우유와 파향이 솔솔 나는데. 마셔보니 파가 강하게 도드라지진 않았다. 


이건 약간 '경양식 집에서 식전에 나오는 스프 같은 맛이랄까? 근데 이제 대파를 곁들인.'


아침 대용식으로 마실 수 있는 스프 음료 같은 맛과 질감이었다. 문제는 첫 입은 안심하고 마셨는데 점점 파향이 입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 정도다. 흠. 차갑게 마시면 이 부담감이 좀 덜어질까?


아니었다. 차가운 대파크림 감자라떼는 더욱 강력한 파향을 내뿜고 있었다. 엄마가 아침에 줬는데 남겨버린 수프가 복수심에 불타 냉장고를 견디고 나온 맛이다. 포근함은 사라지고 시원함과 화끈한 파향이 입안에 겹겹이 쌓였다. 입안에 있는 게 혀인지 대파밭인지 모를 때쯤에도 여전히 음료는 남아있었다.


아... 백 선생님 다방은 음료 용량이 많구나. 가성비가 좋네요, 선생님.



오가는 파 향의 정을 나누는 음료

하지만 대파크림 감자라떼가 예상치 못한 게 있다면 나에게는 이 고통, 아니 음료를 함께 나눌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음료는 적어도 세 입 정도는 흥미롭고 맛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잔을 오가며 마시면 독특하면서도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화를 넘어 개별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이런 나눔의 정을 실천할 수 있는 음료가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백종원 선생님이 요식업계를 넘어서 정치계로 진출할 수 있는 핵심키가 될 사건이 아닌가(아니다).


마셔본 사람들은 재미있고, 생각보다 맛있는 이 음료의 컨셉에 칭찬을 주렁주렁 달아주었다. 역시 백종원이라느니, 음식을 하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창의력 넘치는 시그니처라느니. 특히 소개팅에 할 말이 없으면 이런 특별한 시그니처를 시켜서 대화를 할 수도 있다는 스몰토크형 음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런데 입에서 파 냄새가 날 텐데요?"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부엌칼에 잘린 대파처럼 절단 나고 말았다. 새해 초장부터 소개팅이냐, 새로운 미식의 세계냐를 골라야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꿈꾼다. 아무리 보기에 무섭고, 어려워 보일지라도 실제로 맛보면 굉장히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대파크림 감자라떼처럼...


... 그래도 궁금한 사람들은 사서 마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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