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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sophia Aug 24. 2019

4. 필드에서 주니어로 일한다는 것

어휴...


어쩌다 보니 네팔에서 일 년 반 정도 살았다. 처음 육 개월은 KOICA - UNV로 United Nations Information Centre Nepal Office에 파견되었고, 특히 목격한 보건 현황 그리고 실태에 적잖이 많은 것을 느끼고는 현장에서 더 많이 보고 배우고 네팔이라는 그 아름다운 나라에 조금이나마 더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코이카 영 프로페셔널 네팔 사무소에 또 지원했다. 개발 협력 분야를 모르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말들로 왜 네팔에 다시 가냐느니, 여유가 있다느니 대뜸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사실 난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를 참 치열하게 보냈다. 네팔에서 목격한 처참한 의료 보건 환경 실태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고 아직 배울게 많은데 이렇게 돌아가버릴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국가적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이제는 좀 더 심화하여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더불어 국제기구 - 정부 기구 간 관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가진다면 다른 나라로 가는 것보다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Notatarget



중학교 때부터 International Development에서 일하고 싶었고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내내 마음은 바뀌지 않았지만 스스로부터가 이 분야에서 일할 만한 능력 그리고 깜냥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주저하여 대학교에서는 영어영문학 그리고 미디어학/신문방송학 - 생각보다 미디어/신문 방송학과 출신 국제기구 직원들이 정말 많다는 것에 놀랐지만, 특히 우리나라 신방과 학생들은 관련 진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 을 공부했고, 막 학기 직전 여름방학에 몇 날 며칠 고민하여 제출했던 자소서에 첫 기회를 얻었다. 추적추적 늦여름 비가 내리던 제출 마지막 날 학교 앞 한 카페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도 거르고 몇 시간 마무리 작업을 거쳐  자소서를 완성하고 제출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International development 말고 하고 싶은 게 없는데, 해낼 자신이 있는지, 설사 이번에 운 좋게 가게 되더라도 다음 기회가 오긴 올지, 괜한 고집에 평생 인생이 꼬이는 것은 아닌지 처절하게 고민하던 찰나였다. 어렵게 얻은 기회였기에 놓치고 싶지 않아서 네팔에 더 치열하게 매달렸던 것 같다. 치열하게 스스로에 대해 고민했고 주어진 기회와 업무에 집중했고 단계마다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려 그렇게 다음 기회를 만들어내려 애썼다.



심혈을 기울여 (그치만 너무 오래 걸려) 만든 브로슈어


네팔은 사방에 배울 것이 생각할 곳이 널려있는 나라였다. 아주 간단한 진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우고 키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는 것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것을 목격하면서 건강이 삶에 참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한국에선 당연했던 상수도 시설이나 배관 시설조차 미흡한 도시 환경에 물 그리고 관련 체계가 어느 정도로 건강 그리고 생활을 위협할 수 있는지 몸으로 직접 배웠다. 더러운 바그나트 강에서 아무렇지 않게 빨래하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보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배웠고 또 특히 지진 복구 프로젝트 지역 인터뷰를 위해 방문, 수혜자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보건 경제의 중요성에 마주했다. 그렇게 연결고리가 닿고 닿아, 다시 한번 유엔 (유니세프)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고 런던에서의 보건 경제 석사는 학교에 연락해 일 년 입학 연도를 늦춘 상태다. 





필드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직원들을 만나고 얘기하다 보니 내가 참 운이 좋고 UNV라는 제도에 YP 프로그램에 네팔이라는 나라에 두고두고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인정하는 학교에서 공부한 인턴들이 무급으로 일할 때 조금은 저축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엔 다행스러웠지만 갈수록 부끄러운 감정마저 들었다. 한 번은 행사를 준비하는데, 책임자가 나보고 나는 인턴이 아니고 유엔비이기 때문에, 배운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스스로의 몫을 해낸다는 생각을 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제서야 유엔이라는 기관이 모든 개인의 독립성을 나름대로 존중해주려 애쓰는 대신 개개인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당연시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 수 있었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내 몫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해내려고 애썼다. 





계속 기회를 개척할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덕도 컸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네팔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일찌감치 개발협력의 길은 접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네팔 생활에 어떻게 적응할지 몰라 막막했을 테고, 업으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테고, 막연히 동경하거나 혹은 포기했거나, 아직도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테지. 일종의 전우애로 서로서로를 격려해주고, 버팀목에 되어준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나처럼 치열한 고민 끝에 이 분야에 들어왔을 테고 그 책임감에, 더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은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갈 것을 알기에 게으름 피우지 못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하는, 힘든 과정을 스스로 선택한 거고 그래서 어쩌면 서로를 이해해줄 사람은 서로밖에 없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포기하지 못하는 그 이유를 나도 어느새 발견해버린 것 같았다. 






어느 분야가 그렇지 않겠느냐만, 정말 각오 없이 덤빌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일한다는 것은, '유랑'이 아니라 어디서든 통하는 나만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고,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어떤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치열한 고민과 책임감을 수반함을 배웠다. 동정심이나 열정만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 내가 집행한 모자 보건 프로젝트에 투입된 예산으로 백 명을 살릴 수 있었는데 내 역량 부족으로 오십 명 밖에 살리지 못한다면, 그러면서 난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하는 것은 오만이고 게으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 관련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 다시 유쓰 유엔비로 유니세프에 지원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지속 가능한 보건 프로젝트는, youth engagement 그리고 youth empowerment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국제기구 그리고 외국 펀딩에 의존하는 현지 주민의 무기력함을 직접 목격했고 현지인들이 느끼는 그 무기력함이 그 무엇보다 독약이라고 배웠기에., Youth empowerment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보건 경제의 테크니컬하고 날카로운 지식을 배우기 전 마지막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큰 틀을 재정비하는 기회이지 않을까?







요르단에서의 생활이 기대되면서도, 이제는 좀 더 매섭고 확고하게 내 분야를 만들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석사 시작 전 일년 더 일하게 된 것이 정말 큰 행운이 될 텐데. Youth Economic Engagement와 health Economics를 공부하며 두 분야에 공통되는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 그리고 분야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 




출근 길 빼꼼히 보이는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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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음 주면 또다시 출국이다. 일을 시작하면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져 단편적인 글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그렇지만 항상 일기를 쓰고 office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과정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겠다. 아마 한동안은 브런치보다는 블로그에 글을 많이 쓰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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