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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Dec 16. 2024

읽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읽는다.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 취업한 곳은 어느 방송국 9시 뉴스팀이었다. 그곳에서 일 년 남짓 비정규직 AD로 일했다. 당시 나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취업준비생이었고,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대신 현장에서 일하는 걸 선택했다. 방송 뉴스를 제작하는 데에는 취재 기자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고, AD는 취재와 편집과 뉴스 제작 사이의 모든 일을 한다. 뉴스 자막을 만들고, 앵커 어깨 위에 올라갈 배너 이미지를 편집하고 CG를 의뢰하고…

그런데 어떤 기자는 AD를 성가셔 했다. 편집실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에게 배너 이미지 제작 용 영상을 달라고 했더니 짜증 섞인 얼굴로 테이프를 던졌다. 내 앞에 떨어진 테이프를 안전하게 CG실에 전달한 뒤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어느 기자는 AD를 자신의 종처럼 취급했다. 배달시킨 자장면이 도착하자, 뒤로 기대앉아서는 ‘이런 비닐 까라고 니들 고용한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이었지? 기자들은 회의에는 AD를 안 부르지만 회식에는 항상 불렀다. 그리고 여자 AD의 허리를 잡고 블루스를 췄다.


기자의 꿈을 접었다.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FBI 요원 케이트는 불투명하고 찜찜하게 흘러가는 임무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그만두자는 파트너 리지에게 “나는 알아야겠다.”라고 말하며 작전의 중심으로 들어가 상황을 직면한다.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케이트였다면 아마 그만두고 다른 ‘더 좋은 일’을 하겠다고 했겠지. 그리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겠지.


이후 한 포털사이트 뉴스팀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하루종일 쏟아지는 각종 언론사의 기사를 취사 선택하고 편집해 포털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올리는 일을 했다. 처음엔 일을 꽤 잘했다. 기사를 빨리 읽었고, 손도 빨랐으며, 실수도 적었다. 이용자들이 어떤 기사를 좋아하는 지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정치 뉴스 편집은 해도 해도 어려웠다. 한 명의 완성된 뉴스 에디터로 성장하려면 정치 기사를 제대로 읽어내는 능력은 필수다. 어느 정치인이 “가는 가다”라고 말하면. ‘응 그렇구나.’ 그대로 이해했다. 말하는 게 곧 그의 생각이라고 여겼다. 사수가 “대리님? 그건 가가 아니고 나라는 뜻이잖아요.”라고 알려주면, ‘아, 그렇구나’ 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한계를 넘기가 어려웠다. 자책하는 한편, 나는 참 단순하고 순수해 정치 뉴스를 잘 읽지 못하는구나 여겼다.


한글을 깨친 후부터 언제나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아름다운 문장, 내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들, 그런 것들에 주로 반응했다. 닥치는 대로 읽고 흡수했다. 그리고 그대로 흘려보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교육받은 일부만 읽을 수 있는 글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언제나 쉽게 쓰기를 지향했다. 쉽게 읽히는 글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어떤 쉬운 글은 쓰는 사람에게도 쉽다. 


12월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서울의 밤, 대통령의 낮’ 편을 보다 알고 싶단 생각조차 한 적 없는 윤석열의 뇌구조를 이해, 아니 알게 되었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1인이 대통령이 되고, 급기야 계엄을 선포하게 되기까지… 의 사연(?)을 따라가다 진짜 어이가 없네 하며 깔깔 웃었다. 그러다 웃음을 뚝 그쳤다. 자칫하다가 나도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보지 않았나? 위험 감지. 마침 읽던 <정희진처럼 읽기> 덕분에 제때 울린 경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고자 애쓰며 살아왔다. 싸우기 보다 피했고 좋아하는 사람에겐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렀다. 내 삶을 힘들게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심지어 나는 읽고있는 책의 작가에게도 마음에 드는 독자가 되고 싶다. 이 독후감은 정희진 선생님 마음에 들까? 나의 독서도 나의 삶도 아주 위험하다. 가장 싫어하는 그 사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큰일이다.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속 야마시타 영애가 쓴 문장에 다시 한번 밑줄을 긋는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복싱장에 가면 우선 줄넘기부터 시킨다. 뜀뛰기와 줄넘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면 그제야 장갑을 끼고 샌드백을 때리는 법을 배운단다. 지금까지의 독서를 뒤엎고 작가의 마음에 드는 독자이기보다는 책과 싸우는 독자가 되고 싶다. 그러면 눈앞의 사람과도 잘 싸울 수 있겠지. 삶을 뒤엎을 수 있겠지. 이겨야지. 말 못해 억울해서 꺼이꺼이 우는 대신에. 그 날을 위해 줄넘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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