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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Nov 25. 2021

간판

에세이-데이트랜드


간판_밤에 비로소 간판은 실체를 드러낸다.

불야성이라는 단어가 탄생한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밤은 예로부터 빛이 없는 시간이었고 따로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재화가 필요했다.
그 시절 어둠은 단순히 빛의 부재가 아니라 실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빛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어둠은 밝히면 스러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은 커다란 도시가 만들어진 뒤다.
물자가 모이고 사람이 한 곳에서 살며 막대한 면적이 한 목적을 위해 이용되면서 ‘밤’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한낱 한시가 아까운 도시민들에게 밤은 새로운 삶의 시간으로 변모했다.

그때로부터 휘황한 등불이 어둠을 몰아냈고,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에는 간판이 세워져 빛을 반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낮의 간판은 지금도 때로 초라하게 보여 무심코 지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밤이 되면 빛을 내는 도구를 달아 어둠을 몰아내고 자신을 뽐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간판이다.

바꿔 말하면 빛을 뿜어내는 야간의 간판은 어둠과 싸워온 오래된 사람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셈이다.

문득 광공해로 불릴 정도로 너무 눈부신 간판 속에서 천년 전의 이 땅을 돌이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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