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은 처음이라서... 02
어릴 때 저는 세상이 다 아는 잠귀신이었습니다. 엄마의 기억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눕혀 놓으면 누운 자세 그대로 미동도 않고 쿨쿨 자던 순둥이였다고 합니다. 주로 자거나, 졸거나, 자다 깨서 노나보다 하면 이내 또 자는 잠꾸러기였던 것 이외에 저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엄마는 머쓱해하며 종종 덧붙이시곤 했습니다. “그래 순하니까 혼자 넷이나 키웠지, 말썽 부렸으면 니까지 못 키웠다.” 타고난 제 잠보가 저를 구원한 셈입니다.
고3 야간자율학습이 11시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책 한번 펴보지 않고 12시가 되기도 전에 불 끄고 자는 저를 보고 엄마는 ‘쟈는 속이 참 편한갑다’ 하고 내심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제일 일찍 자놓고 아침에도 좀만 더 자겠다고 밥 안 먹겠다고 했다가 등짝을 후두려 맞는 일도 많았습니다. 제가 서울대에 갔을 때 엄마는 정말 깜짝 놀라셨다고 합니다. 책상에 앉아 있는 건 한 번을 본 적이 없고 집에선 잠만 자던 애가 어찌된 일이지, 믿기지 않으셨다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마감이 있는 월간지 기자로 일하기 시작한 때가 제 잠만보 시절 첫 위기였습니다. 한 달에 일주일은 12시가 넘도록 야근하고 그중 이삼일은 거의 사무실에서 밤을 새야 하는 생활이 이어졌으니까요. 군기 바짝 들었던 1년 차에 잠을 이기지 못해 화장실에 앉아서 졸다가 팀에서 어딘가로 사라진 저를 찾아 나선 일도 있었습니다. 연차가 좀 쌓여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락받은 뒤에는 야근하다 말고 침까지 흘리며 너무 달게 자는 저를 보고 옆 자리 사수 선배가 어이없어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이 “너처럼 많이 자는 애는 진짜 처음 본다” 였던가요.
아무리 피곤해도, 감기에 걸려도, 슬픈 일이 있거나 열이 받아도 저의 기본값은 늘 “일단 자자”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무슨 일이든 좀 나아져 있곤 했습니다. 잠이 안 와서 고생해 본 적도, 잠이 부족해 힘들어 본 적도 없었던 건 축복이었지요.
시작은 출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임신 주수보다 유독 배가 무거워 후기에는 제대로 눕지도 자지도 못했던 저는 산후조리원에서도 수면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수유와 유축 텀을 지키느라 푹 젖은 솜덩어리 같은 몸을 쥐어짜서 일어나는 일은 세상 심각한 노동이었습니다. 배터리에 빨간 불이 켜진 채로 자고 있어도 자고 싶었습니다. 잠 못잔 자에게 잠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건지 물리적으로 느꼈던 날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