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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Oct 16. 2018

우리는 올드 타운에서 자요

후안 말대로 메데인, 마약과 범죄의 도시 


에스 무이 깔리엔떼!


메데인은 산힐만큼이나 더웠다. 이 날씨에 삼십분이고 한 시간이고 걸어 다녔다가는 금방 녹초가 될 것이 뻔했다. 아니, 이미 녹초가 된 우리였다. 아우성치는 종아리와 발바닥의 아픔을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거다. 



포블라도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지도를 점검하고 있을 때였다. 막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 방향에서 타는 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급한대로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남자를 붙잡고 물었다. 


“올라! 혹시 영어 사용하시나요?”

“네, 물론이죠. 무슨 일이에요?”

“이 역으로 가고 싶은데 지금 들어오는 거 타면 되는건지 헷갈려서요.”

“이거 맞아요!”


퇴근길 지하철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만원인가 보다. 사람들 틈에 끼어 서서 어깨를 잔뜩 굽히고 양 다리에 힘을 줬다. 서울에서 왔다는 우리에게 남자는 서울의 지하철은 어떻냐 물었다. 몸소 문과 사람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취해 보이자, 남자는 양 손을 올려 그 모양새를 따라하며 뉴욕도 그렇다고 말했다. 


“어디에서 묵어요?”

“음, 어디냐면요 여기요! 빠르께 베리오 역 근처.”

“빠르께 베리오 역 이라고요?”


어째서인지 잔뜩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그의 반응에 우리는 덩달아 당황했고,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거기 엄청 위험한 곳이에요! 몰랐어요?”

“네?”

“엄청 위험해요. 메데인에서 아마 제일 위험할 거예요.”

“네? 센트럴이 그렇게 위험하다고요? 중앙이라서 거기에서 자는 건데…”

“여기에서는 깔리엔떼(Caliente)라는 말을 위험한 곳이나 뭐, 그런 곳을 가리킬 때 써요. 거기 진짜 깔리엔떼한 곳이에요. 엄청 엄청 깔리엔떼라고요. 못 믿겠죠? 기다려봐요.”


속사포처럼 무시무시한 말을 잔뜩 쏟아낸 그는 곧이어 뒤의 여자에게 빠르께 베리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그녀는 도리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씨, 에스 무이 깔리엔떼.(네, 엄청 위험해요.)” 




메데인의 올드 타운


황당함과 분함에 지하철에서 만난 남자에 대한 욕을 쏟아내며 호스텔로 들어섰다. 현관 근처에서 우리를 맞이한 후안은 잔뜩 당황한 듯했다. 방 문 앞까지 따라온 그는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로 가까이에 놓여 있던 베개를 끌어 안고는 문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까 그 자식이 이 동네가 엄청 위험하다는 거야. 사람들이 다 범죄자라느니, 총을 조심해야 한다느니, 도둑이라느니.”

“지하철에서 만난 남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응. 뉴욕이 어쩌고 저쩌고하는 걸로 봐서는 미국 사람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튼 그 사람이 한 말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겁 먹었는지 알아?”

“다시, 다시 그러니까,”

“지하철에서 만난 그 남자가 우리 호스텔이 빠르께 베리오에 있다는 말만 듣고 대뜸 거기 엄청 깔리엔떼한 곳이라면서 당장 호스텔을 옮기라는 거야. 그러고는 자기만 쏙 내려버렸어!”

“그래서 역에서 여기까지 걸어 오는데 엄청 오래 걸린거라고? 경찰한테 일일이 길 물어보면서 오느라?”


출처: 페르난도 보테로, 보테로 미술관



당시 우리는 남자를 거짓말쟁이, 내지는 다른 지역에서 호스텔 사업을 하는 장사꾼 쯤으로 여겼다. 잠깐이나마 그의 말대로 이곳을 위험하고 무자비한 동네로 오해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의심하고 초조해했던 것이 억울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는 그저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호의를 베푼 사려 깊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이 동네는, 그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위험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메데인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카르텔’ 본거지로, 불과 30년 전만 해도 마약 밀매와 그로 인한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도시였으니 말이다. 


1960년대 질 낮은 마리화나를 미국과 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것에서 시작된 콜롬비아의 마약 밀매는 1985년, 마약 카르텔에 의해 눈에 띄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여기, 카르텔의 이야기를 꽤나 세세하고 충실하게 묘사한 드라마가 하나 있다. 세 시즌에 걸쳐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과 ‘힐베르토 로드리게스’, ‘미겔 로드리게스’ 형제가 이끄는 칼리 카르텔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나르코스> 시리즈가 그것이다. 


출처: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


“마술적 사실주의가 콜롬비아에서 탄생한 것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한 도시와 한 국가를 피와 범죄로 물들인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는 신화 내지 전설로 분류할 법한 사건들로 가득하다. 드라마 <나르코스>는 분명 사실임에도 믿기 어려운 에스코바르의 전설과도 같은 일화를 마술적 사실주의에 비유하는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 ‘스티브 머피’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늘어난 돈으로 멋대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은 마약 밀매가 가진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었다. 돈의 힘은 막강했다. 메데인 카르텔은 다발로 쌓인 지폐 더미를 보관할 곳이 없어 땅에 나눠 묻는 것으로 고민을 해결해야 할 정도로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에스코바르는 엄청난 부를 기반으로 정재계의 특권층이 되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손에 지폐를 쥐어주고 집을 선물하며 사랑하는 자신의 도시, 메데인 빈민촌의 ‘로빈 후드’를 자처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지지와 든든한 정재계 뒷배의 지원으로 강해진 에스코바르는 대범해졌다. 콜롬비아 정부는 에스코바르의 성장세를 방치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미국은 협조의 일환으로 콜롬비아에 마약 사범 인도 정책을 요구했고, 이를 수용한 정부는 카르텔과 충돌했다. 정부와 카르텔은 서로의 힘을 입증하기 위한 방식으로 협상이 아닌 전쟁을 택했다. 


출처: AS OTHER STATES DE-ESCALATE, FLORIDA DECLARES WAR ON DRUGS, Nick Fouriezo, 2017.05.19.
출처: History of Drug Trafficking, HISTORY, 2017.05.31.


이 과정에서 대범함을 넘어 악랄해지기까지 한 에스코바르는 부와 권력으로 아이들을, 노인들을, 군인들을, 경찰들을 우롱하고 위험에 빠뜨렸다. 


1993년 영원한 제왕일 것만 같았던 그는 콜롬비아 경찰에 의해 주택가 지붕 위에서 살해당했다. 초라한 행색을 한 도망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는 분명 죽었다. 그러나 마약 밀매는 죽지 않았다. 그 정도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마약과 공포는 또 다른 콜롬비아가 되어 지금까지도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마약을 둘러싼 전쟁의 중심에서 수많은 희생을 겪어야 했던 메데인의 올드 타운은 여전히 가난한 이들의 공간, 숨 쉬듯이 범죄가 발생하는 위험한 동네, 마약과 매춘이 삶의 구원이 되기도 하는 부조리의 낙원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걸어 잠근 철문을 사이로 안부 인사를 잊지 않는, 손바닥에 잔뜩 쌓인 동전의 셈을 대신 해주는, 조심스레 어제 사간 닭고기가 맛있었는지 물어오는 그런 동네이기도 했다. 삭막함과 위험이라는 단어만으로 묘사하기에는 아쉽고, 또 아쉬운 그런 동네. 


우리는 올드 타운에 머물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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