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비비언 고닉
뭔가 완전히 세상이 달라보였고, 원래 맑스주의의 특성이, 세상 전체를 이론적인 틀로 볼 수 있게 해준거여서, 그 잣대로 세상을 보니까, 일종의 신세계랄까요?
- KBS 다큐 인사이트 <모던 아카이브 : 우리의 소원은>
칼 마르크스의 이론은 혁명적이었다. 그 폭발력은 세계가 명멸해가던 그 때 하나의 구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과 파시즘의 폭풍을 버티고, 반 보씩 나아가 결국 자본과 파시즘을 잠재우고 새로운 세상을 꽃피울 비전에 헌신했다.
"공산주의"는 한국에서 참으로 많이 왜곡되고 오용되며 "빨갱이"라는 멸칭으로 치부된다. 사회주의라는 말조차 쓰기 어려운 분위기이니 오죽하겠는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 "자유민주주의" 외의 사상은 내용에 상관없이 "진보진영"에 욱여넣어진다.
한국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없지 않았다. 조선공산당의 박헌영, 중도좌파로 알려진 여운형이 있었다. 박헌영이 월북하고 여운형이 암살된 뒤 마지막 사회주의자 조봉암이 박정희 군부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하면서 80년대 학생운동에 의해 마르크스와 레닌이 호명될때까지 공산주의는 독재 하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 책의 숱한 공산주의자들과 한국 학생들이 만난 마르크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세상 전체를 이론적인 틀로 완벽하게 설명해낸다. 그건 새로운 세계였다." 새로운 눈을 뜬 이들은 말 그대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이, 동지들이 모인 조직이, 조직이 향할 현장이 있었다. 인간이 착취당하는 고된 노동의 현장과 조직이 연결됐다. 그 가운데 연결되는 감각과 오롯함(통합성)을 얻었다. 모든 것이 일목요연했고 목표와 비전은 분명했으며, 사방으로 연결된 굵은 선을 따라가며 자신의 영혼과 열정과 헌신을 쏟아부었다.
내가 이 책에 매료된 이유, 그리고 이렇게 리뷰를 남기는 이유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다. 이들에게서 나는 나 자신과,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싸우는 사람들 - 지금 이 시간에도 광장에서, 시민단체에서, 진보정당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는 시민들, 활동가들 - 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회 배경을 가진 이들에 대한 르포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이 책에는 단번에 빠져들었던 건 이 때문이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느꼈고, 정확히는 그들의 삶에 접속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이 책은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강렬하게 타올랐던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회고를 담고 있다. 1977년에 출간됐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사자들의 감정,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정동affect을 풍성하게 잡아 유려하게 펼쳐놓고 있다. (저자인 비비언 고닉이 엄청나게 유명한 에세이스트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공산주의자라고 하면 괴물 취급을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 "사람들"이 어떤 내면의 풍경을 가지고 살았는지 잘 보여준다.
아무 권력도, 지위도, 심지어 이름도 없던 이들이 공산주의를 만났을 때 터져나온 불꽃은 그 자체로 불꽃놀이라고 부를만 했다. 책에는 새로 만들어진 이름으로 동지들과 함께 노동자를 선동하고 조직하며 세상을 바꾼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 이야기를 눈으로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듯 강렬한 감정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들이 만난 오롯함, 연결되었다는 감각, 세상 그 무엇도 주지 못했던 강인한 정체성과 관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무너뜨렸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이니까. 그들은 스탈린의 독재행위가 만천하에 공개되자 분열하고 갈등했으며, 매카시즘 열풍을 피해 몇 년이고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없는 사람'으로 숨어지냈다. 비민주적인 조직은 그들에게 명령하고, 자아비판을 강요하고, 혁명을 위해 개인의 성향이나 재능은 무의미하게 취급했다.
마르크스로부터 시작된 비판이론은 여전히 세상을 변화시킬 유효한 도구다. 이 시지프스의 끝나지 않는 형벌과 같은 인생이 바뀌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오늘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싸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조직보위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으며, 갈등하는 상대편에게 낙인을 찍어 몰아내고, 비전이 아닌 금전에 굴복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한국의 진보진영 역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삶의 정동을 깊이 파고든 이 책이 귀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공산주의를 비롯한 좌파 및 진보적 흐름이 극우 파시즘과 신자유주의에 짓눌려버린 오늘의 현실 때문이다. 트럼프-푸틴-시진핑-윤석열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단번에 설명이 될 정도로 세계는 끊임없이 퇴보하고 있고, 한국의 내란우두머리가 내란-엘리트-기득권-카르텔인 검찰과 법원 세력에 의해 구속이 취소되는 초유의 비극을 목도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구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광장을 메운 이들의 구성 또한 다채로웠다. 그들의 이전 삶은 서로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렸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 국면의 광장에서만큼은 거대한 저항적 정체성, 변혁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 공산주의의 폭발적인 성장기로부터 백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미국 공산주의자들이라면 "개량/수정주의자"라고 불렀을) 버니 샌더스라는 정치인은 노구를 이끌고 미 전역의 민중들을 만나며 일어나 조직하며 싸우자고 독려하고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투쟁하는 민중 뿐이다!" 세계가 퇴보하면 퇴보할수록, 절망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 또한 커진다. 그런 열망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별히 광장의 시민들, 시민사회의 활동가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