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in Its Place.
살면서 우리는 많은 '자리'를 거쳐간다.
자리란 학교나 직장과 같은 '물리적 장소'일수도 있고,
직업이나 직급과 같은 '사회적 지위'일수도 있고,
누군가의 옆자리, 즉 '인연'일 수도 있다.
많은 경우, 현실의 고통은
내가 원하는 자리(=상황)에 놓여있지 않을 때,
즉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자리'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적어본다.
과거 인턴을 할 때 일이다.
인턴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
임원분께서 밥을 사주셨다.
쌓아온 커리어가 좋으신, 유명한 컨설팅 회사 출신의 유능한 분이셨다.
당시 내가 고민하던 질문을 꺼냈다.
"컨설팅 회사처럼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 안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사람은 무엇이 다르던가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요"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집단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은 무슨 능력을 가진걸까. 항상 궁금했다.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사람이 능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문제는 fit이예요.
그 사람의 능력은 입사과정에서 어느 정도 검증되었죠.
입사 후에 보여주는 역량은 개개인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그 사람과 회사가 얼마나 fit 하냐에 달려 있다고 봐요."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이 인정받더라~
이런 대답을 예상했던 나는 흠칫했고 이내 납득했다.
맞는 말이다.
나와 fit이 맞는 자리여야 잘할 수 있고, 오래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그런 것 같다.
딱히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서로 결이 안 맞아서 오는 충돌이 있고,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잘 맞는 관계가 있다.
일도 사람도
좋고 나쁨보다는
fit과 unfit이 있을 뿐이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다.
기우의 절친인 민혁은 오랜만에 기우의 집에 찾아와 선물을 전한다.
그 안에는 수석이 들어있었다.
반지하방에 수석이라니.
수석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자리하게 된다.
수석은 자연을 떠나 허름한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수석은 무서운 쓰임새(?)로 쓰이게 된다.
기우는 수석을 시냇가에 돌려다 놓는다.
수석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수석'이란 옷을 벗어던지고
자연 속의 시냇돌로 돌아갔다.
우리도 이 시냇돌과 같지 않을까?
잠시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잠시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지만
결국엔 많은 방황 끝에 나의 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에서는
주인공 에블린이 수많은 멀티버스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이,
피자집을 하는 우주,
팝스타로 사는 우주,
철판 요리사로 사는 우주,
쿵푸 마스터로 사는 우주,
심지어 돌멩이로 사는 우주.
저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에블린은 각각의 우주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각 우주의 에블린처럼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우주에서
나만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인생은 내 자리를 찾는 여정인 것 같다.
잠시 방황할 수 있지만, 결국 세상 모든 것은 적절한 곳에 자리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