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창업자들이 길거리의 흩어진 전단지를 모아 스마트폰에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화로 배달음식을 주문하던 시대는 배달앱의 시대로 이행했다. 현재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터치 몇 번이면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곳에서’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배달문화에는 없었던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가 생겨나면서 또 다른 pain-point가 발생해 전 국민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몇몇 스타트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들은 과연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 문제를 해결하여 진정한 ‘배달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까?
1.늘어나는 1인 가구, 커져가는 고통
배달앱은 내가 돈이 많거나, 함께 주문할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간편하고 유용한 앱이다.
그러나 1인 가구에겐 큰 허들이 있다.
바로 배달앱의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다.
적게는 1만 2000원, 많게는 1만 5000원을 장바구니에 담아야 주문이 가능한데,
한 끼 식비로는 1인 가구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게다가 ’최소주문금액‘이라는 허들을 넘으면
2000~4000원 ’배달비‘라는 두번째 허들이 나타나 ’결제‘ 버튼을 누르기 어렵게 한다.
( 자료 = 통계청 )
대한민국에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구의 인구는 5100만.
1인 가구는 970만에 도달하였고,
2023년에는 1000만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1인 가구가 1000만명이라니.. 놀랍다.
정말 엄청난 속도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이제 전 국민의 20%가 1인 가구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사진 = 통계청 블로그)
1인 가구의 한 달 지출 TOP3는 무엇일까.
2021년 기준
주거비가 19.5%
식비가 30.4%(16.7+13.7)를 차지했다.
한마디로 1인 가구는 먹고(eating) 사는(living)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따라서...
1인 가구가 한 번이라도 배달앱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때,
배달앱의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는 ‘작은 문제’가 아니라 국내 인구의 20%가 겪는 ‘큰 문제’이며 문제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다.
1000만명이 배달앱의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 때문에 손가락을 망설인다.
이 커다란 문제에 해결의 욕구를 느끼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2.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
고 깝쳤다.
어느 창업가가 말했다. 세상에 불편을 넘어 분노의 지점을 찾아 해결하라고.
나 역시 1인 가구였다.
어느 봄날, 방구석에서 배달앱을 쓰다가 불편을 넘어 분노를 느낀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거 쉽지 않다.
배달앱은 배달앱, 가게사장님, 배달대행업체, 라이더.
이렇게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공존하는 생태계였고, 각자의 이익이 첨예하게 맞물려 있었고, 구조적으로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는 필연적이었다.
근거리의 1인 가구끼리 배달앱의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를 함께 부담하고, 부가 기능으로 각종 OTT 서비스 구독료도 함께 n띵 할 수 있었다.
근거리의 2명이 매칭돼야 하기 때문에 당근마켓처럼 하이퍼로컬을 지향했고, ‘1인 가구를 위한 생활비 절감 플랫폼‘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고자 애썼다.
(중략..)
그러나.. 여러 이유로 우리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창업스토리는 나중에 써보겠다.)
3.또 다른 도전자들
2020년, 우리 팀이 이 문제를 해결할 때는 다른 플레이어가 없었다.
그런데 작년(2022)부터 동일한 문제를 푸는 팀이 여럿 생겼다.
같은 문제에 도전한다는 것이 반갑고 신기한 마음에 주의깊게 보고 있다.
다들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쿠팡과 배민의 새로운 기능 : 함께 주문하기
힝, 속았지?
우선 쿠팡이츠(22년 8월)와 배달의민족(22년 10월)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주문하기'라는 기능을 앱 내에 추가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기능. 내가 해결하고 싶었던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 부담을 절감시키고자 만든게 아니었다. 쿠팡이츠와 배민이 이걸 만든 기획의도는 같은 공간 안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각자 원하는 메뉴를 담을 때 하나의 폰을 돌려가며 장바구니에 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이 주문할 친구들에게 링크를 보내고 원하는 메뉴를 하나의 장바구니에 담는 기능이다. 익명의 사용자와 돈을 아끼기 위해서 사용하는 기능이 아니다. 드디어 거대 기업이 이 문제를 해결하나 싶었지만 잠시 반가웠던 마음이 이내 사그라 들었다.
(사진=구글플레이)
제한적 해결.
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예약방식'으로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를 없앤 두 서비스가 있다. 2017년 시작한 '배달긱'은 미리 예약주문을 받고 정해진 시간, 하나의 장소에 배달비 없이 일괄배송을 해주는 서비스다. 주로 대학 내 건물을 거점으로 사전에 단체주문을 받는다. 실시간 매칭방식으로 바로 저렴하게 배달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단체주문이나 미리 주문해도 되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유용해 보인다.
한편 2014년 시작한 '식권대장'은 모바일 식권으로 국내 기업의 식대를 관리해 주는 서비스이다. 식대 관리에 집중하던 식권대장은 2022년 2월, 배달대행 업체 부릉(메쉬코리아)과 손을 잡고 점심식사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전 9시 30분까지 주문을 하면, 각 기업마다 점심 시간 직전에 배달을 해준다. 점심시간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메뉴 고민을 안 해도 되고, 식비 절약이 된다는 측면에서 직원들에게 좋은 복지 서비스로 보인다.
(사진 = 구글플레이)
진짜가 나타났다.
진짜 내가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스타트업들도 있다.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서비스는 '두잇(doeat)'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트업 유튜브 채널 EO를 통해 우연히 이 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찾아보니 대표님의 이력이 화려하고 팀원들도 면면이 화려한 어벤져스팀이다. 현재 서울시 관악구에 한하여 배달비 없는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결방식은 우리 팀이 만들었던 '반띵'과 차이가 있었다. '반띵'은 근거리의 2명이 모여 최소주문금액을 함께 채우고, 배달비도 절반씩 내는 방식이었지만, '두잇'은 근거리의 3명이 모여 최소주문금액을 채우면 배달비는 없는 방식이다. 배달비가 없다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놀라웠다. 아직 서울 전역으로 확장되지 못했지만 관악구 주민들에게는 꽤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사진=앱스토어)
후발주자.
최근 알게 된 두 번째 서비스도 있다. 이름은 '나노내'. 국내 대표 엑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primer)' 의 21기 클럽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아직 MVP 앱인 것 같고, 인천 송도 내에서 작게 테스트 중이다. 3명이 모여서 최소주문금액을 채우면 배달비가 없는 방식은 '두잇'과 동일한 것 같다. 프라이머 21기로 선정이 됐으니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부스팅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결국 '나노내'도 인천 송도 밖으로 확장하고, '두잇'도 서울시 관악구를 넘어 전국 서비스가 되고자 할 것이므로 잠재적 경쟁관계라 볼 수 있다.
4.기대, 우려, 변수
(사진=구글플레이)
배민을 넘어.
직접적으로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두잇'과 '나노내'를 주목해보자.
두 서비스가 앞으로 헤쳐나갈 과제는 3가지.
3인 매칭 방식이 전국적으로 확장되는 것.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만큼 라이더를 확보하는 것.
전국의 다양한 매장을 입점시키는 것.
전국 서비스 확장&라이더 확충&입점 매장 확대.
이 모든 것이 완성돼갈수록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에서 자유로운 '배달 유토피아'에 가까워진다.
외형적인 모습은 '묶음배송을 하는 배민'이 된다.
여기에 도달하기 까지는 라이더 확충, 입점 매장 확대도 어렵겠지만 3인 매칭 방식을 유지하면서 스케일업하는게 가장 관건으로 보인다.
서비스 지역 확장
(사진=서울시)
현재 '두잇'은 관악구를 넘어 인접 구인 동작구,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관악구에서는 어느정도 서비스 가설이 검증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용을 해봤을 때도 3인 매칭이 10분 이내로 이루어졌고, 심지어 너무 빨리 3명이 모여 결제 도중 다른 사람이 주문을 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다른 구에서 이를 검증해볼 차례다.
n명이 모여 음식을 주문하는 서비스 특성상, 특정 시간대에 많은 유저가 몰려 있어야 한다. 가설이 검증된 관악구의 경우 서울에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가설을 실험하기에 좋은 테스트베드였다. 그럼에도 서비스가 알려지고, n명이 원활하게 매칭되는 '네트워크 효과'가 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과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 그 속도는 얼마나 빠를지, 그리고 1인 가구 비율이 낮은 곳들에서도 매칭이 원활히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낮은 최소주문금액(9천원)과 배달비 0원
스케일업을 하는 과정에서 낮은 최소주문금액(9천원)과 배달비 0원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 배달비는 주문한 3명의 집이 가까워 동선이 효율적이고, 같은 행정동 안이라면 고객에게는 계속 0원을 유지할 것이다. 서비스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배달비 0원은 최대한 유지할 것이라 예상한다. 3명이 한 번에 주문하는 총액이 크기 때문에, 점주가 마진을 많이 남기는 대신 배달비 100%를 부담하는 걸 감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존 배달앱의 배달비는 고객과 점주가 약 50%씩 분담하는 구조이다.) 반면, 최소주문금액은 라이더 인건비 상승이나 다른 변수에 따라 9천원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레거시의 반격
근 시일은 아니겠지만, '두잇'과 '나노내'의 성장을 저지하려는 기존 배달앱 3강(배민, 요기요, 쿠팡이츠)의 반격이 있을 수 있다. 두잇과 나노내의 낮은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 무료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는 구독모델이다. 미국의 배달앱을 참고해보면, 시장점유율 1,2위인 도어대시(Door Dash)와 우버이츠(Uber Eats) 모두 월 10달러를 내면 음식값 할인과 배달비 무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요기요도 월구독 멤버십인 '요기패스'를 런칭하여 후발주자인 쿠팡이츠를 저지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과 쿠팡이츠가 구독모델을 도입하면 어떨까. 우선 배민은 상당한 점유율을 잃기 전까지는 특별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 같다. 반면 쿠팡이츠는 색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단건배달이 예상보다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지 못하는 지금, 자신들이 가진 타 서비스를 무기로 이용해 '쿠팡패스'를 시도해볼 수 있다. 월 1만원을 내면 쿠팡멤버십, 쿠팡플레이, 쿠팡이츠 배달비 무료 혜택을 모두 제공하는 것이다.
2023년 1월 기준
국내 배달앱 시장점유율 1위인 배달의 민족의 월간활성사용자(MAU)는 약 2000만명이다. 그야말로 국민 서비스라 할 수 있다. 배민이 이런 엄청난 유저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사람들의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배달앱의 조상으로서 선점효과를 얻은 배민은, '배달'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대명사가 되었다. '첫 번째로 떠오른다는 것' 이는 쉽게 무너질 수 없는 강력한 락인(Lock-in) 요소이다. 현재 쿠팡이츠의 단건배달과 빠른 배달속도는 ’습관‘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이 정도로 한 번 락인된 고객을 뺏어오기란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빠른 배달속도’는 ‘습관’을 이기지 못한다고 시장이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낮은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 무료는 '습관'을 이길 수 있을까. 골리앗에 맞설 다윗이 움직인다. 국내 배달앱의 구도는 재편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