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잠수 이별 이야기'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겠다고 예고해 놓고는 정작 이 글을 쓰기까지 거의 두 달이 걸렸다.
물론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기가 아직도 가슴이 절절해서는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지금 나는 치과위생사로 치과 진료실에서도 근무를 하고, 치과계 신문사에서도 근무를 하게 되어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변명으로 우선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지난 글에 이어서
원래도 내향형 인간이었기에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강의 진행, 아르바이트 임시 중단 등으로 집에서 내 맘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제야 일본 분위기를 만끽하게 된 점 등 변화한 일상 속에서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수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전 남자친구의 이별 방식은 나에게 꽤 큰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의 모든 상황을 알면서 '잠수 이별'을 택했다. 그것도 내 생일에.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헤어짐을 맞이하기 직전, 나는 그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지적했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짜증만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 '나도 우리 부모님의 소중한 자녀다. 이런 짜증을 다 받아주면서 만남을 유지하는 것을 부모님이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얼마나 죄송스러울지 상상도 안 된다'라고 '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라고 이야기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먼 사람에게도 갖추는 기본적인 예의를 가장 가까운 나에게 갖추라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도 쉬운 문제였기 때문에 이렇게나 오래 고민을 하는 그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하며 기다리던 찰나였다.
4월 10일.
나의 생일이 되었고 한국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나에게 단 한 마디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내 생일은 그의 친누나의 생일과 같았기에 까먹었다는 말은 변명으로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들어간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나와 관련된 모든 기록들이 삭제되어 있었다.
예의를 갖춰줄 수 있겠냐는 나의 요구에 대한 그의 답은 무시였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의 20대의 절반을 함께 보낸 사람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무례'라는 생각을 했다.
연인 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가 선택한 이별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헤어짐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나? 아니 적어도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수 이별을 택한 그는 나를 차단까지 해놓았다.
'나는 그에게 단지 스팸 메시지였다'
그 당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이었다.
어디에라도 나의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 곳이 없었다.
대학원 생활 중 친해진 누구와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외국어로 내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일본어도, 영어도 능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잠수이별'을 설명하는 것이 퍽 어려웠다.
게다가 일본인 친구들은 순조로운 연애 중에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 연락하는 것이 기본인 경우도 많았기에 겨우 하루 이틀 연락되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나를 설득하는 것이 과제였다.
어려운 순간에 공감받을 상대가 없다는 것이 그렇게나 괴로운 일인지 몰랐다.
그리고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이 은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으면 통증이 생긴다는 것을 느낀 나날이기도 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부정적인 생각들을 대체할 아르바이트 일이나 들을 강의, 해야 하는 과제가 없었기 때문에 나를 좀먹는 그런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들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20대의 시간들을 허비하는 것이 괴로워 얼른 떨쳐버려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새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결국 떨쳐내지 못했다는 무거움뿐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남자친구가 잠수 이별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지도교수님께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단된 아르바이트와 논문 작성을 위한 설문조사를 핑계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더 유리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다행히 '코로나'라는 큰 벽 덕분에 귀국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당시 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PCR 검사로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서류가 필요했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PCR 검사에 적게는 20만 원, 많게는 50만 원까지도 비용이 들었다. 그냥 일본에서 쭉 체류했더라면 쓰지 않아도 될 돈이었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런 비용을 들여서라도 나는 한국에 가서 숨을 쉴 구멍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에만 콕 박혀있던 덕에 코로나에 감염될 틈이 없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마무리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그가 나에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리 정성을 다했어도 그가 선택한 이별의 방식에는 그의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는 나에게 무례하고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기억될 뿐이다. 누군가 이별을 고려하고 있다면 '당신의 책임을 끝까지 다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게 연인 관계던, 교우 관계던. 하물며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직장에서 알게 된 모든 관계에 있어 책임감 있는 태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당신에 대한 기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무례한 상대로 인해 괴로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의 책임감을 안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면, 일방적인 노력으로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