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메르세데스 소사
누에바 칸시온
193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통기타와 안데스 지역의 인디오 전통 악기들을 연주하고 군부와 미국 기업을 앞세운 미국 제국주의를 깊게 거부하고 항의하는 노래 부르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아타우알파 유판키, 칠레의 비올레타 파라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쿠바에서 했던 것처럼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국가에서 군부를 조종해 정치를 장악한 뒤 경제적으로 예속하고 저임금으로 노동을 착취하며 소비문화를 충동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사실상 새로운 방법의 침략으로 라틴아메리카 인디오들과 다양한 혼혈 민족의 삶을 착취했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들은 스페인 제국주의와 미국의 신제국주의를 분명히 거부하고 저항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억압받는 인디오 노동자, 농민의 문화와 의식을 반영하고 그들 삶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 주제를 확장했다. 아타우알파 유판키와 비올레타 파라가 시작한 ‘새로운 노래’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의 초창기 곡들은 차랑고나 께나, 식꾸, 차차스, 봄보스 같은 인디오들의 악기를 기타 같은 유럽 악기와 함께 연주해 안데스 토착 음악의 민속적 요소와 전통적인 표현을 유산 삼아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 냈다.
음악적 분위기는 안데스의 민속적 분위기를 강하게 풍겼고 가사는 정치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은유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하다 차츰 빈곤, 권리,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 같은 사회적인 주제로 나아갔다. 미국의 신제국주의는 2차 대전 이후 냉전 시대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앞세우고 더 노골적이었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국가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뒤로 라틴아메리카는 검열은 물론이고 추방, 고문, 죽음 또는 납치 실종 같은 사건이 만연했다. 195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국가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은 누에바 칸시온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에 직면한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묘사하면서 좌파 혁명운동이나 해방 신학과 연결되어 저항을 노래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63년에 메르세데스 소사와 아르만도 고메즈가 누에바 칸시온 운동을 주도했다. 정치적 이슈를 주제로 한 누에바 칸시온은 1960년대 미국 좌파 운동과 히피의 반문화 저항과 반전운동에 자극을 주었고 흑인 인권 운동으로 이어졌다. 누에바 칸시온은 1960년대 후반에는 국제적으로 확산하여 파시즘 독재에 반대하는 세력과 연대했고 특히 마르크스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프랑코 독재정권 시기에도 ‘새 노래’가 불렸다. 누에바 칸시온은 상업적이지도, 미국적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반미적인 음악이었으므로 자본주의 미국문화를 표준으로 삼았던 미국 미디어들은 누에바 칸시온 음악에 주목하지 않았다.
비올레타 파라는 칠레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누에바 칸시온 운동이 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시인이자 가수였다. 1940~50년대에 파라는 여러 해 동안 광산, 농장 같은 가난한 지역의 길거리를 여행하며 안데스의 무한한 자연의 힘을 경험하고 미국과 유럽의 자본과 백인들에게 착취당하는 인디오들의 광포한 삶의 현실을 직시했고 인디오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수백 가지 구전 민속 음악을 수집했다. 그는 여행에서 수집했던 시, 전설들을 기타의 포크 음악과 결합해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추상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시어를 버리고 안데스 원주민 인디오들의 민속 음악을 기타와 전통 악기들로 새롭게 해석해 칠레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칠레 누에바 칸시온 운동을 주도했던 빅토르 하라Victor Jara를 포함해 많은 칠레 예술가, 활동가와 국민에게 영향을 주었다. 비올레타 파라가 군사재판에서 체 게바라와 아옌데를 공개적으로 찬양했다는 죄목으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라틴아메리카 민중을 위로한 노래 <(내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고마워요Gracias a la Vida>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로 소메르세데스 소사수 독재자와 대지주, 미국의 이익이 아닌 노동자, 농민,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한 칠레의 반미 좌파 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의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수십만 명의 지지자들의 행진과 집회에서 불렀다. 아옌데 대통령은 ‘새 노래’ 없이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옌데 정권은 미국으로 유출되는 외화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칠레에서 허용되는 외국 음반의 양을 제한했다. 이 결과 미국 음악이 아닌 누에바 칸시온을 비롯한 칠레 지역 음악이 부흥했다. 누에바 칸시온 뮤지션들은 이 정책이 가져올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열광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아옌데가 부과한 새로운 조건에 맞는 음악만을 하게 되는 것이 마땅한지, 사회 진보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파라의 <삶에 고마워요>는 세계의 많은 가수가 다시 불렀고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라는 칭호를 받는 메르세데스 소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