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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환 Mar 30. 2017

떠나는 이의 변(辯)

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프롤로그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 Marcel Proust -



  전역을 삼 개월쯤 앞둔 가을이었다.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증명사진을 찍고 입사원서를 쓰고 아이큐테스트 같은 시험을 보는 날들이 이어졌다. 평범한 학창 시절과 별날 것 없는 대학생활을 보냈던 내게 전역신고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신입사원의 생활은 다음 관문이자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이다.


  한 번쯤 벗어나 보고 싶었다. 입시, 입대, 졸업, 취직으로 이어지는, 한 판을 깨고 나면 다음 판의 왕이 버티고 있는 스테이지의 게임을. 그 정해진 틀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과감하면서 즐겁게, 또 의미 있게 깰 수 있는 것은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겐 ‘지금’이어야 할 이유가 분명 있었다. 아직 이십 대였고 군생활 3년간 모아둔 돈이 꽤 있었으며 가장 중요한 직장이 없었다. 겨우겨우 직장에 들어가고 나면 결코 그만둘 용기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기에 ‘무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은 오히려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작용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써 퇴사를 하고 집을 팔아 여행을 떠났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출발점이 훨씬 더 앞서 있던 셈이다.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조건은 ‘떠나야 할’ 당위로 바뀌어 갔고 이따금 들리는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이라는 무시무시한 뉴스 속에서도 대책 없는 용기는 점점 더 자라났다. 떠나야 했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아지기 전에.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결심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 인터넷 카페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여행사도 두 번이나 방문해서 상담도 받았다. 심지어 여행 동호회에 나가 이미 다녀온 사람들에게 조언도 들었다. 그 전엔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 이렇게 멀리 오랫동안 떠났다 온 사람이 많았다니. 이렇게 떠나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니.

  

  여행 준비는 여행 기간에 비례하여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 건 아니었다. 어느 식당 가서 뭐 먹기, 어디 어디 가서 야경 보기,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 없으니 오히려 단기 여행보다 준비하기 더 수월했다. 대륙간 이동 스케줄과 굵직굵직한 관광일정 정도만 짜 놓고 나니 대략 루트가 완성됐다(이런 신속한 진행이 얼마나 큰 비효율을 초래하는지는 여행하면서 깨닫게 됐다). 


  아프리카를 첫 목적지로 결정하기까지는 별다른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일정에는 따뜻한 계절을 쫓아가야 한다는 여행계의 불문율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친근한 동남아나 유럽보다는 전혀 가보지 못한 곳, 낯선 대륙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세계일주’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걸맞을 거라는 나 나름대로의 포부(이자 허세)였다. 그래서 바로 가는 항공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프리카를 내 첫 목적지로 정했다.   

  

  휴대용 인화기와 1000장의 필름 역시 순전히 아프리카 여행을 좀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준비한 도구였다. 수많은 여행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정작 본인 사진 한 장 가져본 적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분명 초콜릿 같은 것보다는 더 의미 있는 선물이 될 테니까(서로 갖겠다고 싸울 리도 없고). 거기에서 살 수는 없어도 그들을 경험하고 그들과 교감해 보자는내 여행 모토에 제법 잘 부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준비가 제법 잘 되어가는 것 같다가도 문득 해야 할 일이 생각나면 허겁지겁 해치우는 시간들이 흘러 드디어 6월 24일. 떠나기 전날 밤이 되어서야 겨우 뚜껑을 닫은 배낭을 메고 나는 인천공항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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