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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Apr 15. 2024

매다

7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 엄마는 언제나 씩씩하셨다.

무능한 남편 덕분에 늘 씩씩하셨고, 때론 거칠기까지 하셨다. 그런 엄마가 나이가 들면서 워커에 의지해서 걷게 되었고, 결국에는 휠체어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휠체어를 타면서 우리 엄마의 바람도 나의 바람도 무너지고 말았다. 기저귀만은 안 하고 두 다리로 화장실 가는 게 기도 제목이었는데... 

인생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ㅠㅠㅠ.


그나마 주일날 교회를 가실 수 있을 때, 기저귀를 하고 가라는 나의 말에 외면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너무 가련해서 콧날이 시큰해지곤 했다. 

결국 휠체어 생활을 하시게 되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엄마는 기저귀를 차게 되었다.


어느 목사님께서 “사람이 하늘나라 갈 때쯤 되면 기저귀를 차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우리가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기저귀를 차듯이 하늘나라 갈 때쯤이면 다시 아기가 되어 기저귀를 차게 되죠.”라고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기저귀를 갈아드릴 때마다 엄마의 복잡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가슴이 절절히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이 말씀으로 위로하면서 가능하면 엄마가 수치심을 덜 느끼도록 최선을 다해 상냥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 가는 거였다. 엄마도 어느 때부턴가 작은 거는 기저귀에 볼 일을 보셨는데, 큰 거만큼은 도저히 용납이 안 가셨던 모양이다. 신호가 오면 영락없이 엉덩이를 바닥에 질질 끌고 화장실에 가셔서 볼 일을 보시곤 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달려가 엄마를 도울라치면 엄마는 “괜찮아! 내가 할 수 있어! 너 힘들잖아.” 하시면서 애써 혼자서 그 큰일을 치르곤 하셨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밤이었다. 식구 모두 잠든 시간에 신호가 온다면 정말 큰일이다. 그래서 방안에 이동식 변기도 갖다 놓았다. 그런데 엄마는 그것도 용납이 가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긴 나라도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그 변기를 사용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엄마 방과 우리 부부 방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 방문을 닫고 자다 보면 엄마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자기 전에 엄마랑 내 발목에 긴 끈을 매어 놓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혹여 내가 잠들더라도 엄마가 움직이는 순간 끈으로 엄마의 움직임이 전달될 테고, 그때 벌떡 일어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실천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밤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아 다행이었다.


지난주,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이 끈 이야기를 하셨다.

“요즘 들어 주변에서 멀쩡하던 분들이 혼자 잠자다 갑자기 돌아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홀로 잠자는 것보다는 가능하면 함께 있는 게 좋아요.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서로의 팔목이나 발목에 끈을 매달아 놓고 잠자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우리 부부에게는 그 끈이 아직은 필요 없다. 

한 방에서 한 침대를 쓰기 때문이다. 

남편은 눕자마자 금세 코를 골고 깊게 잠들지만, 난 오래도록 뒤척이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든다. 그러다 잠깐 잠이라도 깨는 날에는 여지없이 남편의 손을 찾아 헤맨다. 깜깜한 중에 더듬더듬 남편의 손을 찾아 잡는 순간 남편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면서 왠지 모를 편안함과 안도감에 다시 잠들곤 한다. 잠이 들면 또 손을 놓을지라도 ㅎ.

끈이 없어도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단단하게 매고 있는 것 같다. 

어디 도망가지 못하도록, 내 곁에 꼭 붙어 있으라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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