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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난돌 Jan 09. 2019

기억하기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하는 이유

  언젠가 인터넷에서 ‘우울증 환자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안에는 “힘내, 주위 사람들을 생각해 봐.” 같은 말들이 번호 매겨져 나열되어 있었다. 본문 아래에 100개가 넘는 댓글들이 달려 엄청난 관심을 모았는데, “그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라는 거냐? 주위 사람들도 힘들다!”같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곤 깜짝 놀랐다. 한 때 지독한 우울감과 무기력에 시달렸던 내가 위 내용에 공감하고 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어땠는지 가물가물해 틈틈이 써 내린 메모장을 뒤지다가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기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내 감정에 관한 글을 쓰는 것도 관두고, 써 두었던 기록도 다 지워버다. 한 글자 한 글자 자기 연민이 담뿍 묻어나는 것이 스스로 꼴 뵈기 싫은 탓이었다. 내가 내 감정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꽤 오래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문장들을 다시 읽으며 그때 느낀 생생한 감정들이 떠오른 게 아니라 ‘그때 그랬었지’ 따위의 건조한 사실들만 생각난 걸 보면.



  그러니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이해하는 것조차 힘든데, 하물며 다른 사람은 어떠할까. 오카 마리는 그녀의 저서 『기억·서사』를 통해 말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던지는 질문이 “왜?”라고. 그리고 그것이 설명되지 않으면 공감하지 않는다고. 일면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 타당한 사고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서글프다. 결국 나의 아픔을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이해받을 수도, 공감받을 수도 없는 것이기에.

  개인적인 아픔도 이처럼 쓰라릴진대, 사회·제도적인 폭력에 휘말린 이들은 어떠할까.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은 사내아이 오스카다. 오스카는 아기장수 우투리처럼 비범한 인물로 세 살 때 스스로의 성장을 멈추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나치즘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독일 소시민들의 모습이 오스카의 눈을 거치면 당사자은 볼 수 없었던 부조리가 명확히 보인다. 문제는 어린 오스카는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부조리와 맞닥뜨릴 때마다 양철북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른다. 그것이 오스카가 항거하는 방식이었다.


  다시 오카 마리의 『기억·서사』로 되돌아가 보자.

  그곳에서는 일본말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에서 묘사된 것과 똑같이, 사건의 기억을 말로 재현하라고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중략) ‘언어’로 인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원더풀 라이프』를 차용하여 기억의 재현에 관해 오카 마리가 설명하는 대목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일본말을 사용할 줄 모르는 이에게 일본말을 사용하라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주류가 아닌 이에게 주류의 언어로 설명하라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사건의 당사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사건의 외부인은 공감할 수 없는, 결코 건널 수 없는 넓고 깊은 강 같은 그 간극 속에서 무언가를 함께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처럼 느껴진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왜 함께 기억해야 할까?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렇게 어려운 걸? 어떤 기억은 왜곡되는데? 사건의 당사자는 기억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르는데? 대체 왜?


  내가 찾은 소박한 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아직 러시안룰렛과 같다는 것이다. 총알이 들은 총은 던져졌고, 우리는 그것이 언제 발사될지 모른 채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그저 이번이 내 차례가 아니기를 바랄 뿐. 재수가 없어 총이 발포되면 맞은 사람만큼 쏜 사람도 억울해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가해자가 되었다고, 아이히만이 변명하였듯이. 젠더 문제가 그렇고,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고, 아직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그렇다. 총이 던져진 상황이 사회구조 혹은 환경이라면 서로를 겨누는 사람들은 개인이다. 왜 총이 던져졌는지, 누가 총을 쏘라고 명령했는지, 우리가 그것을 왜 따라야 하는지 따위의 질문은 생사가 걸린 지금, 너무나 거창하며 벅찬 데다 거추장스럽고 사치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없다면 개인은 사회의 꼭두각시로  남을 뿐이다. 함께 기억한다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과거를 진실되게 기억하고, 책임지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베트남으로 향하여 파편화된 기억의 한 조각만을 가져오는 것은 많은 선택이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작은 자유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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