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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난돌 Jan 13. 2019

향 세 개의 자격

붕따우 마을 위령비

  오늘은 푸옌 성의 성도(각 성의 중심지) 뚜이 호아의 남쪽과 북쪽 모두 아울러야 하기에 일찍 숙소를 나섰다. 먼저 남쪽으로 내려간다. 시내에서 뚜이 호아 공항을 지나쳐 더 내려가면 호아 히엡 사가 나온다. 목적지는 호아 히엡 사(Hoa hiep xa) 붕따우 마을에 세워진 위령비이다. 호아 히엡도 큰 마을의 단위이고, 그 안에 호아 히엡 박(Bac), 호아 히엡 남(Nam), 호아 히엡 쭝(Trung), 세 구역으로 더 자세히 나뉜다. 호안 히엡 박이 제일 가깝지만, 코이카가 호아 히엡 남을 지원했다고 해서 그 곳을 먼저 가기로 했다.



  왼쪽에 바다가 펼쳐진 29번 국도를 달리다 오른쪽 마을 안길로 들어서자 민가가 하나 둘씩 보였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길이 점점 좁아지고, 무엇보다 갈래길이 몇 번 나올 때마다 경로의 경우의 수가 늘어나 허둥지둥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좁은 길에 나무만 울창하고 이따금 집을 나서다 우리를 보고 호기심과 놀라움이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지도는 호아 히엡 사에 도착했다고 말해주지만, 실은 길 한가운데에 있으니 무작정 찾기보다는 고민을 해야 할 때였다.



   먼저 마을 입구로 돌아갔다. 슈퍼마켓으로 보이는 곳을 기웃거리니 환하게 웃으며 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씬 짜오. 한 꾸옥!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서툰 발음으로 인사하자 소리내어 웃으시며 손을 반갑게 흔드신다.

  “쫀 붕따우! 비아 뜨엉 니엠! (붕따우 마을 위령비를 찾고 있어요!)”

  아주머니가 알 듯 말 듯 하다는 표정을 짓자 우리는 온갖 발음을 다 시도해며 붕따우 마을을 찾고 있다고 알렸다.

  “쫀 Bung따우! 쫀 vung따우? 촌 융따우?”

  그러자 아주머니가 우리는 따라할 수 없는 발음으로 붕따우 마을을 찾고 있냐며,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을 안쪽을 가리킨다. 답변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집중력은 점점 흐려졌지만, 아주머니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세 가지는 확실히 알아들었다. 세 갈래길, 우회전, 위령비. 아무래도 세 갈래길이 나오는 곳에서 오른쪽 길로 가면 붕따우 마을로 들어서면서 위령비를 갈 수 있다는 것 같았다.

  “깜 언!(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하자 아주머니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알려주신 대로 가자 아까 지나쳤지만 헤매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길과 다시 마주했다. 우회전을 하려는 찰나 사당이라고 생각했던 건물 안에 비석 같은 것이 보였다. 위령비임을 직감했다. 베트남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나짱에서 실패했던 위령비를 드디어 찾은 것이다. 나와 친구는 서둘러 오토바이에서 내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Tham sat. 학살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단서처럼 갖고 갔던 사진과 주변부가 똑같이 생겼지반 비 자체는 다시 증축된 것처럼 보였다. 증축 이전의 사진을 갖고 찾아간다면, 지나칠 만도 했다. 이제야 여행의 한 매듭이 풀리는 듯했다.



  베트남에서는 애도의 뜻을 표할 때 세 번 허리를 숙인다고 한다. 물을 따르고,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위령비에 다가가니 향로 뒤쪽에 향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향을 피울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듯했다.

  언젠가 베트남에서는 향을 많이 피울수록 더 큰 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스쳐지나가듯이 본 기억에 뭉텅이를 쥐고 불을 붙이려고 했다. 바람이 거세 한 사람은 라이터를 켜고 한 사람은 손바닥을 모아 바람을 막아야 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도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향을 피울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 점점 손이 미끄러져 친구와 번갈아가며 라이터를 쥐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누군가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고 말을 꺼냈다. 나는 그에게 삶의 의미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향도 그렇다. 그냥 바람이 세게 부는 것이고, 내가 이렇고 저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다만 그것을 통해 분명해진 것은, 내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허무하고 화가 났다는 사실이었다.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처럼 왔지만, 실은 향을 하나 올리고, 사진을 찍고, 30분 남짓 머물다가 돌아와 글을 쓰는 것. 그 정도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생각에, 위령비를 찾았다는 안도감은 금세 증발해버리고 무력해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 개만을 다시 들었다. 불이 붙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향 세 개만큼의 무게, 향 세 개만큼의 자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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