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과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줄거리
아자타샤트루 라바쉬 파텔(이하 아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빨래를 하며 가정을 부양하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아자에게 언젠가는 파리에 가자고 말한다. 파리는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져야만 했던 아자의 아버지가 있는 곳이라며. 한편 병원에서 우연히 보게 된 가구 잡지를 통해 이케아를 알게 된 아자는 그 후로 이케아의 모든 컬렉션을 줄줄 욀 정도로 푹 빠진다. 그렇게 파리와 이케아는 어린 소년의 꿈이자 환상이 된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자신의 가정이 가난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환상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꿈을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 일찍이 생계에 뛰어든다.
그러나 아자가 파리에 가기 위한 돈을 다 모으기도 전에 어머니는 그의 곁을 떠난다. 함께 가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자는 위조된 100유로와 여권, 어머니의 유골함만을 가지고 파리로 떠난다. 꿈에 그리던 이케아 매장에서 아자는 마리를 만나 첫 눈에 반한다. 어떻게 말을 붙일까 고민한 아자가 좋은 가구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며 밑도 끝도 없이 터무니없는 상황극을 시도하자 마리는 당황하지만, 곧바로 한 수 위의 드립(?)으로 받아준다. 결국 에펠 탑 앞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는 잘 곳이 없어 이케아 매장의 한 옷장에서 잠들지만 웬 소란에 눈을 뜬다. 하필이면 그가 잠든 옷장이 영국으로 옮겨 가게 된 탓이다.
그러면서 영국에 밀입국하기 위해 숨어든 난민들과 만나고, 국경 수비대에게 잡히고, 강제로 스페인으로 보내지고, 공항을 탈출하기 위해 다시 옷장에 숨어들어가 세계적인 여배우와 함께 여행하는 등 아자의 여행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처럼 극적인 전개를 이어간다.
1.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은 아자와 옷장을 중심으로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영화다. 아자 그 자신부터 밥벌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마술을 부리고 인도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접근하며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일을 택한다. 또한, 아자가 그 동안 모은 돈을 빚쟁이에게 모두 뺏기며 겨우 건진 자금은 위조된 100유로짜리 지폐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유려한 손놀림으로 지폐를 건네는 척하고 다시 빼오며 창조경제(?)를 실현한다.
특별난 여행의 시발점이 되는 옷장 역시 그러하다. 잡지를 통해 그 자체로 아자의 환상이 된 이케아의 옷장으로 인해 아자는 강제로 프랑스에서 런던으로 이동한다. 그에게 뜻밖의 일확천금을 안겨주는 배우와의 만남 역시 공항 수하물 레이어에서 하필 아자가 숨어든 옷장이 그녀의 옷장인 탓에 성사된다. 그녀 덕분에 오로지 파리만을 꿈꿨던 그가 트레비 분수에서 소원을 빌고, 멀끔한 정장을 맞추고, 클럽의 주인공이 되고, 잘 나가는 예술가가 되었다가 순식간에 부패한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옷장에 초점을 맞추면 아무리 영화라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이어도 되나 싶다. 그러나 실제로 옷장이나 그보다 더한 곳에 숨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난민이다. 그들이 등장한 순간 끝없이 올라가는 열기구처럼 사람들을 붕 띄우던 영화는 순식간에 현실처럼 딱딱하기 그지없는 땅바닥으로 우리를 내동댕이친다.
2. 우연한 마주침을 긍정할 때 비로소 자유의지의 꽃은 핀다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을 찬찬히 보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기생충》이 어딘지 모르게 연상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아자를 보며 이상하게 끝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기생충》의 가족들이 생각난다. 계획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아자의 여정 때문에 괜히 무계획이 답이라던 송강호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소재도 마찬가지다. 《기생충》을 보고 나면 비극적인 참사의 원인이 개인의 노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에 태생적으로 심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에서도 아예 시작부터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 생득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나고 동등하게 고귀하다고 믿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인종, 국적, 성별, 종교 등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다양한 것들에 차등한 권리가 부여되고, 그 격차는 좀처럼 좁히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기생충》이 암울한 사회구조를 고발한다면, 본 영화는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메시지까지 몹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재밌는 점은,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여기저기 질겅질겅 씹혀 단물이 다 빠져버린 “노오력”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
“클리나멘”은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이 세상은 어떻게 탄생하였고 또 지금의 형태에 도달했는지, 그 자연관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기울어져 빗겨가거나 벗어남”이라는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클리나멘을 완벽히 이해하기엔 아직 아리송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클리나멘은 떨어지는 빗방울에 흔히 비유된다. 처음의 세상은 하늘에서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만약 모든 빗방울들이 평행선을 이루며 떨어진다면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그 평행선을 벗어나 원자끼리의 마주침이 일어나고 또 그 충돌의 여파로 다른 빗방울들이 흐트러지면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루크레티우스의 설명이다. 방점은 ‘우연’에 찍혀 있다. 즉, 우연한 원자들의 마주침에 의해 지금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세상과 마주한 것이고, 결국 정해진 것도 불변하는 것도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는 우연한 마주침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을 왜 긍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아자의 계획하지 않은 여정을 통해 잘 드러난다. 평소 우리가 떠나는 여행을 생각해보자. 패키지 상품은 말할 것도 없이,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계획을 빼곡이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쉬러가는 여행일지언정 편안한 리조트를 예약하고 맛집 정도는 찾아간다. 그마저 아니더라도 항공권을 왕복으로 끊어 여행의 종지부를 달력 한 칸에 새겨놓는다. 아자는 어떠한가. 이케아를 방문하고, 아버지를 찾겠다는 목표를 품었지만 파리에서의 첫 날밤부터 모든 것은 그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영화의 영상미 덕분에 모든 것이 환상적인 한 편의 동화 같지만, 세계적인 여배우 넬리를 만나 일확천금을 얻게 되지만, 그의 여정에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리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난민들과 함께 영국으로 강제 이송되질 않나 여권까지 잃고 바르셀로나 공항에 갇힌다. 넬리와 헤어진 이후 직후에는 부패한 경찰에게 목숨을 위협당하고, 열기구가 불시착륙한 배 위에서는 협박에 의해 돈까지 뺏긴다.
그럼에도 그는 짜증내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깜짝 마술로 경찰의 눈을 속여 다른 난민이 도망치도록 돕는다. 공항에서는 함께 갇힌 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배에서 빼앗긴 돈은 친구들과 힘을 합쳐 멋지게 탈환한다.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은 그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들과 마주할 때의 마음가짐만큼은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아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주친 불행을 외면하지 않고, 다가온 기회를 잡았다. 그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원망하는 대신,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런 아자의 태도 덕분에 그의 여행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행이 되었고, 삶의 의미가 되었다.
3. 바다가 된 빗방울, 아자
무슨 일이 있어도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는 아자의 이야기가 “노오력”하라는 충고 같지 않은 충고와 달라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실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경제력이 극빈층에 해당하거나, 부모 사이에 이혼, 별거 같은 불화가 있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을 약 200명을 ‘고위험군’으로 부르고 그들의 성장 과정을 관찰했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른 환경의 아이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사회로부터 일탈하고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중 1/3은 거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성공한 아이들도 있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나머지 2/3과 다르게 만든 것일까. 워너는 역경에 굴복하지 않은 아이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이해한 어른들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영화에서 아자의 어린 시절 모든 순간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한 가지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바로 아자가 감옥에 갇혀 바깥 세상과 단절되었을 때, 옆방의 현자로부터 창밖의 풍경을 전해들은 이야기다. 그가 묘사하는 세상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알기로, 아자의 옆방에 수감된 현자는 눈이 보이지 않는 걸인이었지만, 아자는 그를 현자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던 듯하다. 그리고 넬리의 옷장에 갇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그 순간 영감의 번개라도 맞은 듯 셔츠에 그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현자는 아자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세상의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또 기댈 수 있었던 어른이 되어주었다.
현자와 함께한 순간은 긍정적인 마주침이 되어 아자를 재탄생시킨다. 바로 받던 이에서, 주는 이로 말이다. 넬리에게서 받은 돈을 아자는 난민 캠프에서 만난 이들에게 나눠준다. 그들의 꿈을 증명할 서류도, 물증도 필요 없이 그 이야기만 듣고 꿈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도록 돈을 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교육자가 되어 감옥에 들어가기 직전의 아이들을 학교로 다시 데려온다. 비 한 방울이었던 아자가 현자와의 마주침으로 카르마의 관성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까지 품는 바다로 변한 것이다.
아자가 가난, 차별, 여행에서의 위험 등 온갖 역경들조차 긍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가 먼저 다른 이의 지지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염려하는 진심과 사랑을 담지 않은 충고나 조언은 현실과 유리된 허상일 뿐이다. 꿈 혹은 환상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은 행운을 잡은 이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행운으로 탈바꿈하는 때이다.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영화가 그것을 잘 알고, 관객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 한 구절을 옮기며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