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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Aug 24. 2024

경험하지 않을 자유

자극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야말로 쾌락 과잉의 시대다.

손만 뻗으면 닿을 자극들이 넘쳐난다.

새로운 자극은 짜릿하고 즐겁지만 때론 나를 구속하고 병들게도 한다.

 

도파미네이션이라는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쾌락과 고통은 뇌의 같은 영역(도파민)에서 처리하며 이는 대립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옛 말의 통찰력이 무섭다.

음식, SNS, 음악과 운동, 숏츠, 술 같은 일상의 자극들은 추를 쾌락 쪽으로 기울게 한다.

하지만 어떠한 쾌락이든 반복해서 노출되면 자극은 점점 약해지고 추는 고통 쪽으로 넘어간다.

같은 쾌락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쾌락을 필요로 하게 되고 결국은 아무리 자극을 받아들여도 추는 고통 쪽에서 올라오지 않게 된다.


우리는 좋은 자극을 채우면 그만큼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쾌락을 추구하다 나락으로 떨어진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보았다.

쾌락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은 늘 즐겁다.

나도 경험주의자로 살아왔다.

그 시절 유행은 꼭 따라 해봤고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초등학교 때는 몇 권의 우표를 모았고, 중학교 때는 힙합바지를 입었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했다.

대학교 때는 아르바이트와 배낭여행, 워킹홀리데이까지 다녀왔다.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직장과 직무가 6번 바뀌었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건 못 견뎠다.

늘 새로운 자극을 원했다.


하지만 모든 자극이 나를 성장시킨 것은 아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놀기 위해 수업을 땡땡이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저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 살았다.

결국 난 학사경고를 받았고 전공이 잘 안 맞는다는 이유로 그저 어영부영 졸업을 하고 말았다.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편입을 하거나 제대로 공부를 해봤어야 했다.

자극을 추가한 결과는 낮은 학점으로, 그리고 힘들었던 취준생의 시절로 이어졌다.


회사를 다니던 난 친구의 설득에 함께 사업을 하게 되었다.

지루한 회사생활을 벗어나고픈 마음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회사를 그만뒀다. 그 후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1년을 보내고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두 사례 모두 배운 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노력했다면 경험하지 않고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득 보다 실이 많은 경험이었다.

자극과 쾌락의 경험을 선택한 결과다.




자극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자극이 없으면 불편하고 우울하고 불행하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자극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반대로 그 자극을 경험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고 믿는다.

초등학생들도 결석을 하고 해외여행을 안 가면 개근거지, 이성친구가 없다면 모쏠이라고 놀림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모든 경험의 시기가 너무 빨라지고 있다. 경험이 늦어지면 무시받고 위축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안 좋은 경험은 안 하는 게 좋다고 믿는다.

극단적인 예지만 호기심에 마약을 한번 경험했다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뉴스에서 얼마나 많이 봤는가.

고딩엄빠란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자극을 절제하지 못한 현실의 무서움을 배울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경험이 나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한번 해봐. 아직도 안 해봤어? 인생 뭐 있어? 그냥 저지르는 거야.

악마의 속삭임이다.

우리에겐 경험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 자유를 포기하지 말자.

절대로 남들보다 뒤처지는 일이 아니다.


꼭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간접 정보들이 충분한 세상이다.

나쁜 경험은 나에게 독이 되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뿐이다.


자신을 지키고 아끼고 절제하는 그 순간들이 모여 더 소중하고 단단한 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 미혼인 어떤 사람의 이상형을 듣고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순수하고 성숙한 사람.


간단하지만 참 어려운 기준이다.

한 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이 떠오르는데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판단의 핵심에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좋은 경험은 많이 하고 나쁜 경험은 하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순수하면서 성숙할 만하지 않을까?


경험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자.

때로 경험하지 않음으로 우리는 순수하면서도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오직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 책임도 오롯이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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