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있다
어느덧 여름의 문턱 앞에 서 있지만 지난겨울을 돌아보면 유독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날씨도 추웠지만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무릎이 아파서 1년간 이어온 러닝이 중단되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골절된 왼팔은 아직도 완전히 붙지 않고 있다.
빙판길에 운전하다 미끄러져 접촉사고가 났다.
회사에선 조직 이동의 기회가 있었지만 부서장의 만류로 결국 실패했다.
인생은 평탄하지 않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불의의 사고로, 또는 아무 이유 없이 일시적으로 잘 나가던 인생은 수시로 막히곤 한다.
어렵게 해결되어 다시 정상궤도에 오르면 다행이지만, 끝끝내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있다.
나의 야심 찬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도전해 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다시 시도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빨리 러닝을 하고 싶어 퇴근 길이 설레기까지 할 때쯤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2km 정도만 뛰면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뛰면 더 이상 뛸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자세도 바로 잡아보고 충분한 휴식도 가져봤다. 병원 가서 진료도 받았다.
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고 뛸 때마다 증상은 반복됐다. 하프마라톤 대회에 신청한 직후였다. 눈물을 머금고 대회신청을 취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6개월 안에 하프, 1년 안에 풀코스를 완주하겠다는 내 야심 찬 목표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자전거에서 넘어지고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다.
그때도 다음 일을 생각하면서 급하게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순간 그 후의 모든 일정은 그대로 정지됐다.
팔에 깁스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자판을 제대로 칠 수 없어 일하기도 힘들었고 짐을 들거나 집안일을 할 수도 없었다.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지며 접촉사고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타이어가 터지고 보험사 직원을 2시간 기다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조직 이동의 기회가 생겼다.
이 나이에 조직 이동의 제안을 받은 것도 행운이었고 업무도 평소 희망하던 분야였다.
10년간 했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타이밍이었다. 매너리즘을 탈피하고 다시 열정의 불꽃을 되살려볼 기회라고 생각됐다. 상대 팀에선 모든 준비가 끝났었다. 내가 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상사는 대체 인력이 없다며 올해까지만 남아달라고 했다.
두 달간 고민하고 생각했던 내 계획은 끝났다.
탄탄대로 같던 인생길에 갑자기 큰 벽이 생기고 갑자기 길이 끊기고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지만 무릎이 아픈 것도, 자전거에서 넘어진 것도, 빙판길에 미끄러진 것도, 조직 이동을 못한 것도, 어찌 내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러닝 할 때 자세가 안 좋았을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탈 때 조금 더 집중했더라면, 빙판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조직의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리스크를 관리하고 통제하며 실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지 않을까.
그저 매 순간 내 선택을 믿고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문제와 난관들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그 모든 걸 해결해 낼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저 내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슈들도 있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들이 많아 도망치고 싶은 순간, 승승장구하며 스스로 자만심에 취해 앞만 보며 달려가는 순간, 정신없이 분주한 직장생활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지치고 힘든 순간에 신이 잠시 나의 인생을 멈추고 정비할 시간을 주고자 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면 인생이 막히는 일 앞에서 좌절하지 말자. 조급해하지 말자.
그건 내가 해결해야 될 일이 아닐 수 있다. 잠시 쉬어가거나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뜻대로 안 되는 사건들 앞에서 이런 마음을 갖기는 정말 쉽지 않다.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난다.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나고 세상을 향해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기억하자.
어떤 사건도 소중한 내 일상을 망치고 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아 이 길은 아니구나...
아 지금은 아닌가 보네...
아 뭔지 모르지만 문제가 있구나...
숨 한번 크게 들이켜고 그저 다시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