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마,
하늘이 땅을 우러러 보고있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U턴; 사람은 물과 같고 물은 곧 하늘로 이어져

by MONORESQUE




세상 우주 아래 하늘이란 높이 멀리, 닿을 것 같으면서 닿지 않는 신비롭고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땅은 지상 가장 낮은 자리에 세상의 바닥으로 존재하고 있어 하늘과 대비되는 현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하늘과 땅만큼 천지차이. 하지만 그 땅과 하늘이란 건 사실 서로 상호 관계하는 개념인지라 신비로운 신의 세계라고도 비유되는 하늘에서 밑을 바라보면 여지없이 육지, 땅이 있고 바닥을 기다가도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너른 하늘이 화창하다. 곧 서로가 서로를 증명한다.

동시에 남반구와 북반구에서의 하늘과 땅은 그런 의미에서 위와 아래가 역전, 서로 반대의 자리에 위치한다. 그만큼 세상은 두 개의 태양과 달, 풍경, 하늘과 바다와 뭍로 이야기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의미가 서로 뒤바뀌는 위와 아래와 같이, 만물의 양면성을 입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산을 오르기 전에는 위를 올려다보고(얼마나 걸어야하는지), 정상에 올라서는 아래를 내다보는 건(얼마나 걸어왔는지) 단순히 등산의 힘듦을 확인하고 이내 해내고 말았다는 성취감을 누리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서로 다른 높이가 아마도 당연스레 그렇게 한다.

그러니까 위는 정말 위에 있고, 아래는 틀림없이 아래에 있는 걸까. 달리 말해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인 것일까. 그야말로 천지가 개별할 것 같은 소리인데.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마도 딱 그런 영화다.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마른 추운 겨울날, 영화는 그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善의 긍정은 아닌 이 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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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보면 이건 과연 어떤 시점의 관망이었을까. 영화가 시작하고 세상은 발 아래 있다. 봄여름 철엔 아마도 숲이 우거졌을 어느 산 위를 극도로 확대된 부감으로 아래서부터 위로, 앞에서 뒤로 천천히 훑어간다. 현과 건반 만으로 연주되는 미니멀한 선율처럼 모든 건 절제되어 있고,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의 일관된 바라봄만이 존재한다. 그야말로 정적이 가득하다.

심지어 이 대목은 한 번의 끊김없이 촬영되었는데, 중간 크레딧 화면이 두 차례 인서트되기는 하지만, 그래서 단절이라기 보다 그 정도로 계속 길게 지속되고 있음을 느끼게 할 뿐이다. 영화는 왜 하늘 높은 곳에서 시작할까. 때는 메마른 겨울철 세상은 잠시 멈추어있다.


하지만 영화 속 풍경을 느린 템포로 훑어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따라가 보면, 곧 바라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건 이상하게도 하늘이 아닌 땅의 그림이란 걸 뒤늦게 깨닫는다. 같은 앵글 속에 풍광만이 변하는 화면은 이상하게도 상하가 뒤바뀌는 이상한 착시를 일으킨다. 방금 전의 본 것들이 실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의 내려봄은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이전의 잔상을 한순간에 뒤집어버리는 효과를 발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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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하나 없이 가늘게 말라버린 가지들은 눈이 하얗게 쌓인 설산에 생겨난, 건조한 기후가 일으킨 가뭄의 흔적처럼 보이고 얼마 남지 않은 낙엽들은 작은 뭍짐승들의 발자국인 것만 같다. 영화의 무대가 된 장소는 하라자와 미즈키쵸,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 가공의 작은 군락지라지만, 영화 속 한 주민은 “여기는 건조해서 20년에 한 번 큰 화재가 발생해요”라 말하기도 했다. 즉 여기에서의 풍경은 땅에서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일관되게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 바라봄이 지속될 수록 전과 후에 발생한 보여짐의 결과들은, 자꾸만 풍광을 달리한다. 하늘에서의 땅과 땅에서의 하늘은 얼추 느슨하게 삽입되는 크레딧 장면을 기준으로 자리를 서로 뒤바꾼다. 이전의 올려다봄이 지금의 내려봄으로 대치되는 상황, 그래서 이 영화의 시작은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이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만물의 근원을 찾는 밀레투스학파의 창시자,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기도 한다)는 별을 관찰하기 위해 늦은 밤 길을 나선 적이 있다. 한참을 고개를 들고 하늘만 쳐다보는데, 한 노파가 지나가며 한 마디를 던진다. “탈레스여, 발 아래 있는 것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늘에 있을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생각하나?” 별이 하늘에 있으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뿐인데, 노파의 가르침은 발 아래 있는 것을 보아야 하늘 위의 별도 보임을 은연히 응시한다. 곧 하늘이기도 땅이기도 한, 말하자면 이 영화의 배경인 미즈키쵸와 같이 가공의 세계, 그곳으로부터의 이야기인 걸까.


그렇다면 이 쯤에서 영화의 제목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에서의 ‘악’이란 ‘선으로 바꿔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상대가 상대를 긍정하는, 곧 부정은 존재하지 않는 어느 의미에서의 공백. 우연일지 몰라도 영화의 영어판 타이틀을 본래의 어순이 아닌, Evil exist does not, 시차를 두어 적어두었다.


개발의 전과 후가 아닌,

세상의 여기와 저기


일본 열도에 실제 존재하지는 않는, 인구 약 6천명의 작은 마을. 영화는 히라사와시 미즈키쵸란 곳에서 시작한다. 숲속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해 이동도 편하지 않고 먹을 것도 그리고 물 조차도 수도가 아닌, 계곡이나 우물을 이용해야 할 정도이다. 곧 도시 문명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시라기보다 군락지에 더 가까워보이는 이곳에 그런데 어느날 도쿄에서 낯선 이들이 찾아온다. ‘플레이모드’, 이름부터가 수상한 데다 대비되는 회사의 직원 두 사람 타카하시(코사카 류지)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 깨끗하고 한적한 이곳에 글램핑 시설을 만들려고 한다. 개발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만큼 자연 풍부한 이곳이 휴향과 휴식을 위한, ‘매력적인 캠핑’ 글램핑 최적의 입지라 생각해서일 것이다. 개발로 인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고 일단은 이야기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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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 수보다 산짐승 수가 더 많을 이곳에 글램핑이 어울릴까라고 한다면, 일단 이곳은 한적하고 고요해 별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주인공 타쿠미는 아침에 일어나 나무를 베고 패 땔감을 마련하고 우물의 물을 길거나 딸의 유치원 배웅과 마중을 하는 정도로 하루를 보낸다. 미네무라 부부가 운영하는 우동집은 몇 안되는 마을의 가게라 해도 테이블이 서너개 정도이다. 대부분 중년을 넘은 주민들이고, 일을 하는 젊은 남자는 사카모토(토리이 유토)가 유일하다. 마을 회장 스루가 잇페이(타무라 타이지로)의 나이는 아마 일흔은 넘어보인다. 말하자면 작고 불편하지만 그걸로 충분한 곳. 그런데 글램핑 시설이라니. 주민들은 ‘플레이모드’ 직원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회관에 모대책 회의를 갖느라 분주해진다. 영화에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도시가 아닌 시골이라 할때, 그건 종종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거나 못한, 개발이 되어야 할 후보 지역인 것처럼 이야기된다. 실제 수많은 도시가 그와 같은 과정의 역사를 밟아온 것은 오늘의 현실이 증명하는 사실이다. 서울 한강의 기적, 독일 베를린의 나일 강에서의 개발, 그리고 영화 속에서라면 ‘시티 오브 갓’이나 찰리 채플린의 걸작 ‘황금광 시대’가,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 오브 뉴욕’과 같이.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일까. 서두에 언급했던 하늘과 땅과 같이 세상은 개발되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지않을까. 영화의 의문은 아마, 여기에 있다.


각자의 사정이거나

이유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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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VOGUE 등 10여 년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도쿄의 시간 기록자들',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 출간. 사람, 그리고 문화에 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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